돈스코이-28 머구리
돈스코이-28 머구리
-서해 어느 곳
성윤은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밀짚모자를 쓰고 배위에서 조개와 섞여있는 도
자기들을 열심히정리하는 중이다.한편 배아래의 물속에선 잠수복을 입은 영
석이 나무 갈고리로 갯펄을 벅벅 긁어대고 있다. 때려죽여도 안 하겠다던 그
가 당삼채 도자기인지 뭔지를 캐기 위해 직접 물속으로 들어가 밥도 안먹고
벌써 여섯시간째 머구리질을 하고 있다. 힘에 겨운지 허리에 차고 있던 납덩
어리 하나를 빼버리고 한숨을 내쉰 후 쉬지않고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잡놈.
그의 머리속엔 오로지 먼저 먹어야겠단 생각밖엔 없었다.다른 여자들은 한
번달라고 할라치면 돈을 들이대도 소용없다.머리에 총을 들이대야 한번줄까
말까 였지만 김양은 현금만 있으면 준다. 그래서 경쟁도 치열하다. 다른놈들
이 김양의 냄비에 손을 댄다는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김양이 흘리는 국물은 내꺼야.내가 꼴깍꼴깍 다 마셔버릴꺼야.)
남자란 동물은 휴일에 귀찮아서 꼼짝 않고 세끼를 굶어가며 그냥 누워 있을
만큼 게으른 동물이지만 섹스의 가능성이 단1%라도 보이는 일에는 무한한
열정을 쏟는 법이다. 정열과 정액이 활활 불타오르는 영석은 미친듯이 갯펄
을 긁어댔다.
“...탁”
갈고리에 뭔가가 걸리자 영석은 집중적으로 그 부분을 파헤쳤다. 곧이어 말
모양의 당삼채 도자기가 모습을 드러내고 영석은 조심스레 집어 망속에 담
았다. 역시 성윤의 말대로 이곳은 희귀한 도자기가 넘쳐났다. 대여섯시간만
에 4~5여점의 물건을 캐냈으니 돈으로 따져도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생각
에도 거리라는게 있다. 너무 멀면 생각도 미치지 못하지만 이제 김양에 대한
영석의 생각은 피부에 와 닿을 만큼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에덴동산에서 사
과같은 엉덩이를 흔들며 제발 잡아먹어줘,하며 애원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사실 김양이 영석의 이상형은 결코 아니다.그러나 남자가 자신의 이
상형과 거리가 먼 여자에게 갑자기 빠져드는 일은 아주 흔하다.말은 잘해.
삐익..스피커를 통해 배위의 성윤에게 바다 속 영석의 들뜬 목소리가 그대로
전해졌다.
"말대가리 하나 추가요."
신이 난 성윤이 뭐라 대답하려는 순간 멀리 해경의 배가 보였다.성윤은 황급
히 마이크 전원을 끄고 도자기만 골라 바닷속으로 던졌다. 이런 일을하도 많
이 겪어봐서 이젠 아주 능숙하게 움직였다.
"풍덩풍덩.."
애써캐낸 도자기들이 허무하게 다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어느새 해경이 성
윤의 배에 접근했다.
"저기 아저씨 로프좀 잡아줘요."
해경이 던진 로프를 성윤이 잡아당기자 소형차 만한 해경의 배가 성윤이 타
고 있던 배에 맞닿았다. 해경은 처음엔 의심스런 눈으로 성윤을 바라보다가
곧 조개잡이 배임을 알고 의심을 풀었다.
"많이 잡으셨어요?"
"많이는 개뿔.중국 놈들이 바닥까지 아예 싹 쓸어갔네."
성윤이 배위의 큰돌맹이를 해경 보란듯이 일부러 신경질적으로 걷어찼다.떼
구르르르..우당탕탕..그 돌맹이가 물속으로 연결된 노란 산소호흡기 호스를
눌러서 막았다. 그러나 성윤은 이를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해경이 무안해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워낙넓고 또 인원도 부족하고 그러네요.근데 처음 뵈
는 얼굴이시네요?"
"아아 일 시작한지 얼마 안 되서. 커피 한 잔 하고 가."
"아니에요. 둘러볼 데가 많아요. 요즘 도굴꾼이 들끓어요."
물밑에선 숨이 가뿐 영석이 얼굴이 노랗게질려 노란줄을 필사적으로 잡아당
기고 있었다.배위의 줄이 당겨지면서 꺼내달라는 신호가 전해지지만 성윤은
해경과의 대화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러지 말고 한잔해.얼굴도 익힐 겸."
"정말 바쁘다니까요."
"젊은 양반이 뭘그렇게 야속하게."
"그럼 딱 커피 한잔만 할께요."
"그래 사람사는게 다 그런거야.우리가 앞으로 한두번 보게될 사이도 아닌것
같고 이게다 사람사는 정아니겠어."
"아네 죄송해요."
성윤은 뜨거운 물을 꺼내 컵에 인스턴트 커피를 타서 건너편 해경의 배로 건
너 갔다.
-잠시 후
성윤은 자기 배로 돌아와 있었다.둘이 금세 친해진 듯 해경이 성윤에게 무척
살갑게 대하고 있다.잠깐 얘기나눈다는 것이 집안얘기에 학교얘기에 여자친
구얘기까지 홀라당 까벌리고 만 해경이었다.
"잘 먹었습니다 형님."
"잘 먹긴 뭘.다음에 또 보자고.그리고 여자친구한테 꽃다발 택배보내 주는거
절대 잊지 말고."
"네 고마워요."
정작 자신은 진주한테 꽃다발은 커녕 실망다발만 안겨주고 있는 마당에 어
디서 감히 입을 다불대는건진 몰라도 잘난척 하느랴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가 자신을 잡을때까지만 그 여자를 뒤쫓는다.알지?"
"솔직히 기집애가 하도 튕겨서 여태 손도 못 잡았어요."
"1 년을 사귀었는데 여태 손도 못잡았다는게 말이되? 나같았으면 벌써 애도
몇명 낳아서 키우고 있겠다."
"워낙 보수적인 가정환경 탓에.."
"보수적이면 발기도 안 되나?"
"이제 다 때려칠라고요."
"목마른 사람은 함부로 침을 벹지 않는 법이야.물한방울의 소중함을 알고 있
기 때문이지. 자네 그 여자 사랑하나?"
"그럼요 사랑하죠."
"그럼 내말 들어봐.여자들은 말야 밀땅을 좋아해. 밋밋한거 싫어한다고.그만
큼 복잡한 동물이야. 카오스 알지?"
카오스란 단어가 꽤그럴듯해 보여서 해경은 귀를 쫑긋세우고 더욱 집중해서
성윤의 말을 경청했다.
"그게 뭔 말이냐면 꽃만 보내지 말고 그 속에 반지 하나 넣어보내란 말이지.
그러면 그녀가 애써 쌓아올린 아다의 견고한 벽은 와르르 무너지고 자네는
반지의 제왕이 되는거여.생각 할 수 없는것을 상상해.생각은 구속이지만 상
상은 해방이야."
"명심할께요."
"그랴 그럼 수고혀."
엉터리 선수한테 한수 제대로 배운 해경은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이젠 헤어
지기 직전으로 간당간당하던 여자친구를 다시침대에 눕힌후 노콘(노콘돔)으
로 해보고 싶은거 다해 볼 수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착각이야.
"형님 오늘 여러모로 고마웠어요. 특히 카오스는 압권이었어요."
(미친새끼..카오스 좋아하네.. 라오스나 가라 새꺄.존나게 어리버리하네.)
성윤은 속으로 이렇게 비웃으면서 해경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려 카오스 세탁기처럼 여친을 마구마구 빨아줘야 혀."
"어딜요? 카카카..수고하세요."
멀어져 가는 해경의 배를 보고 성윤은 입술이 펄럭이도록 비웃었다. 한편 물
속 영석의 신호는 이미 멎은지 오래였다. 그런지도 모르고 성윤은 기분 좋게
휘파람을 불며 배위에 어질러져 있는 돌덩이들을 치웠다. 아까 자신이 발로
차버린 커다란돌덩이가 노란 산소줄을 여태 누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서
야 알아차리고는 아연질색했다.
“여,영석아!영석아 이개새꺄!”
워낙 다급하니까 자신도 모르게 욕부터 튀어나왔다.성윤은 이미 산소가 바닥
난지 오래된, 산소가 부족해 산소에 묻히게 된 영석의 산소 줄을 잡아 당겼다.
그러나 때는 이미 너무 늦고 말았다. 삶이란 근본적인 오류를 논하기 앞서 죽
음이라는 저질스런 이벤트가 더욱 사람을 절망시키곤 한다.회한의 늪에 깊숙
히 침잠해 있는 성윤의 귀에 마치 꿈인듯 경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 잘못이 아냐.그건 사고였잖냐."
"내 인생에서 가장 추웠던 여름이었어.이제 보물은 그만 쫓아다닐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