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팀] 제임스 글릭의 『인포메이션』 한국어판 짧은 논평

in #booksteem7 years ago

이번 포스팅에서는 제임스 글릭의 『인포메이션』을 읽으면서 정리했던 메모를, 당시의 날짜별로 3편으로 묶어 모아보았습니다. 아직 읽지 않은 분들께 길잡이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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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할 책:
제임스 글릭, 『인포메이션 - 인간과 우주에 담긴 정보의 빅히스토리』, 박래선, 김태훈 옮김, 김상욱 감수, 동아시아 2017-01-18. 원제 : The Information: A History, A Theory, A Flood (2011년)




  1. 읽을 때 유의사항 (1~5장까지 : 2017.1.15)

제임스 글릭의 『인포메이션』은 많은 영감을 주는 책이다. 어제 낮에 책을 받아 읽기 시작했고, 절반 조금 못 미치게 읽은 상태.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을 때 유의해야 할 사항 하나를 미리 언급하겠다.

좋지 않은 점을 먼저 전하게 되어 유감스럽지만, '오역'에 관한 것부터 짚고 가야겠다. 이 책에는 word라는 낱말이 무척 많이 사용되며, 중요한 역할을 한다. word는 대부분 spoken language(구어)에 대립하는 written language(문어)를 지칭한다. 사전에 등장하는 단어, 낱말 정도의 뜻이다. 물론 이를 '말'이라고 옮길 수도 있지만, '말'은 language, speech, word를 모두 포괄하는 (이 책이 강조하려는 대립을 고려하면) 좋지 않은 번역어이다.

가령 2장의 제목은 '말의 지속성'이라고 되어 있는데, 영어 제목은 'The Persistence of the Word'이다. 여기서 word란 '기록된 말'을 뜻한다. 따라서 입말(oral language, speech)에 대립하는 '글자', '단어'를 가리킨다. 입말은 휘발성이 강하고 이내 사라지지만 기록되고 쓰여진 말은 오래 간다는 게 2장의 논점이다. 그래서 정작 '말은 지속적이지 않고, 글이 지속적이다'라고 해야 한다. 이럴 때 적절한 번역은 '단어의 지속성'이어야 하리라.

3장으로 가면 'Two Wordbooks'라는 제목으로 '사전' 얘기를 하게 된다. 이 제목도 '두 개의 단어집'보다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두 개의 단어사전'이라고 했으면 어떨까 싶다. 3장은 이렇게 기록된 '단어'마저도 불확실하고 비일관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처럼 2장과 3장은 서로 엮여서 정보 전달의 정확성과 효율성 사이의 대립이라는 핵심 논점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 아무튼 본문을 읽어가다 보면 '말'과 '단어'가 대립해서 등장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word의 번역어이고, 이 가운데 '말'로 번역된 word는 문장과 문맥의 의미를 거꾸로 만들어버기 십상이다.

이번엔 5장의 한 대목.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라는 시로 유명한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책에 인용된 시구 하나를 보자(212쪽). 전기 전신을 주고받는 전선과 관련된 시이다. "The Line-Gang" (1920)

하늘에 기구를 길게 늘어놓았다
거기서 말들이, 송신기로 친 것이든 말로 한 것이든
생각이었을 때처럼 조용히 지날 것이다.

They string an instrument against the sky
Wherein words whether beaten out or spoken
Will run as hushed as when they were a thought.

이 시구도 거칠지만 이렇게 옮겼으면 낫지 않았을까?

"그들은 공중에 도구를 끈처럼 달아놓았다
거기서 단어들이, 송신기로 친 것이건 말로 한 것이건,
생각이었을 때처럼 조용히 달려가리라."


2. 정보는 정보가 아니다. (6~7장 : 2017.1.15)

글릭의 『인포메이션』의 7장은 "정보이론"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내 생각에 이 책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 아닐까 한다. 왜냐하면 괴델, 튜링, 섀넌 삼인방이 총출연하기 때문이다. 단지 출연할 뿐 아니라 (6장에서 7장에 이르기까지) 이 셋의 이론을 요약해서 설명하기까지 한다! 다 이해하면서 따라가려 하다간 이 지점쯤에서 책을 덮기 쉽다. 그래서 길잡이를 위한 도움말을 적고 가려 한다.

섀넌이 말하는 information은 우리가 통상 사용하는 '정보'가 전혀 아니다. 그러니까, 정보는 정보가 아니다! 이걸 이해하지 못하면 미궁에 빠진다. 섀넌은 information, message, meaning을 정확하게 구별한다. 그런데 통상 우리가 말하는 '정보'는 사실은 '메시지'를, 또는 더 정확히는 메시지의 '의미'를 가리킨다. 여기에서부터 혼란이 생기는데, 이 혼란은 한국인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섀넌은 정보를 자기 식으로 재정의하며, 이 작업은 수학과 논리학 그리고 공학을 위해서는 대단히 정확하면서도 유용하기까지 하다.

섀넌에게 "정보는 불확실성(uncertainty), 의외성(surprise), 어려움(difficulty), 엔트로피(entropy)", 그리고 '낮은 확률'이다(298쪽). 우리는 정보를 메시지나 메시지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뭔가 전달되는 내용이 많은 때 정보량이 많다고 말한다. 반면 섀넌에게 정보는 메시지와 아무 상관이 없으며, 심지어 '의미'를 제거해야 했다. "메시지의 '의미'는 대체로 아무 상관이 없다."(298쪽에 인용된 섀넌) 그리고 섀넌은 통신의 근본 문제를 이렇게 규정한다. "The fundamental problem of communication is that of reproducing at one point either exactly or approximately a message selected at another point."(통신의 근본 문제는 한 지점에서 선택된 메시지를 다른 지점에 정확하게 혹은 비슷하게 재현하는 데 있다. - 번역본 301쪽) 나는 이 문장을 조금 달리 옮겨야 한다고 본다. "통신의 근본 문제는 한 지점에서 선택된 메시지를 정확하게건 비슷하게건 다른 지점에서 재생산하는 문제이다."

섀넌은 정보 개념과 메시지의 전달 문제를 구분하고 있다. 또한 섀넌은 말한다. "흔히 그 메시지는 '의미'를 갖는다. 말하자면 메시지는 어떤 체계에 따라 특정한 물리적 혹은 개념적 실체를 나타내거나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통신의 이러한 의미론적 측면은 공학적 문제와 무관하다."(302쪽에 인용된 섀넌) 섀넌은 정보, 메시지, 메시지의 의미를 각각 별개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컨대 "메시지의 엔트로피 혹은 섀넌 엔트로피"가 바로 "정보"이다(310쪽).

이 정도 구분이라도 미리 알고 있으면, 7장을 읽는 데 어려움이 조금은 줄어들 수 있으리라 본다. (또는 후반부로 건너뛸 수 있게 된다.)


3. 글릭의 『인포메이션』과 우주적 기억 (후반부 : 2017.1.18)

글릭의 책은 전형적인 아메리칸 스타일 책이다. 너무도 방대해서 부럽기까지 한 영어권 참고문헌들과 그 안에 녹아든 비영어권 문헌들 약간, 이 둘이 저자의 사고의 자원이며, 그 바깥 자원은 잘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전형적인 아메리칸 스타일이다.

책의 거의 끝부분에 등장하는 다음의 생각은 무척 흥미롭다. 우주를 연산기계 또는 컴퓨터로 이해하는 방식.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예측 가능성이다.

"다른 사람들이 도서관 혹은 앨범이라고 부르는 우주는, 따라서 컴퓨터를 닮게 된다. 여기에 가장 처음 주목한 사람이 앨런 튜링일 것이다. 튜링은 컴퓨터를 우주처럼 상태의 집합으로 보는 것이 최선이고, 모든 순간의 기계의 상태는 다음 순간의 상태로 이어지며, 따라서 기계의 모든 미래는 최초의 상태와 입력 신호로부터 예측 가능해야 한다고 보았다. / 우주는 자신의 운명을 연산하고 있는 것이다."(인포메이션, 512쪽)

"양자컴퓨터의 이론가이자 설계자인 로이드는 우주가 존재함으로써 정보를 기록한다고 말한다. 우주는 시간 속에서 진화함으로써 정보를 처리한다. 그 양은 얼마나 될까? 로이드는 그 수치를 파악하기 위하여 이 우주라는 '컴퓨터'가 얼마나 빨리 작동하고 얼마나 오래 작동했는지를 고려한다. 속도의 근본적 한계(...)와 엔트로피에 의해 (...) 제한된 메모리 용량의 근본적인 한계, 그리고 빛의 속도와 빅뱅 이후 우주의 나이를 고려하여 우주가 전체 역사에서 10^120회 정도의 규모로 "연산"을 실행한 것으로 계산한다. "우주에서 모든 입자가 갖는 모든 수준의 자유"를 감안할 때 우주는 현재 10^90비트 정도를 담을 수 있다. 지금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인포메이션, 538~539쪽)

물론 글릭의 이런 견해는 책 중반부에 심혈을 기울여 설명한 불확실성(하이젠베르크), 불완전성(괴델), 결정불가능성(튜링)이라는 테제와 상충하지만, 글릭 본인은 자각하고 있지 못하는 듯하다. (이 대목이 오역 때문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글릭은 『카오스』의 저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내용을 다루는 정점을 지나 생명과 밈을 얘기하는 10장과 11장은 개인적으로 지루했고, 이어 위에 인용한 내용을 다루는 후반부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특히 이 부근에서 글릭은 '정보'와 '의미'를 혼동하고 있는 것 같기까지 하다. '의미의 귀환'을 말하는 에필로그도 주장이 모호하다. 아무튼,

베르그손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대해 비판을 제기하는데, 시간을 공간으로 이해하는 방식에, 말하자면 4차원 시공간 연속체로 시간을 환원하는 문제데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그리고 그 논쟁(?)의 의의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철학자가 들뢰즈이다. 나는 내 박사논문에서 이 문제를 다룬 적이 있으며, 글릭의 진술("모든 미래는 최초의 상태와 입력 신호로부터 예측 가능해야 한다")과 대비했을 때 핵심은 '모든 미래는 ... 예측 불가능하며, 우연과 우발과 무작위에 의해 만들어진다'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이것이 베르그손의 '생명의 약동'이란 표현의 물리적 의미이다). 자세한 내용은 내 논문의 99~115쪽, 베르그손을 논하는 대목을 참고하기 바란다. 아래는 그 중 우주를 기억으로 이해하는 베르그손의 통찰을 서술한 대목이다.

"자기 자신과 차이나는 실체로서의 지속은 과거를 자기 안에 포함하고 있는 현재이며, 이런 특성은 플라톤 이래로 ‘기억’이라 지칭되어 왔다. “우리는 존재로, 즉자적 존재로, 과거라는 즉자적 존재로 현실적으로 도약한다. 문제는 심리학에서 떠나는 일이다. 태곳적 기억 또는 존재론적 기억이 문제이다.”(B 52) 여기서 존재론적 기억이라고 했을 때, 그것이 지칭하는 바는 “우주의 앙상블(l’ensemble de l’univers)”이다. “마치 우주(l’univers)가 하나의 엄청난 기억이기라도 한 양 모든 일이 일어난다.”(B 76) 이는 “우주적 기억(Mémoire cosmique)”(B 117)이라고 묘사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우주 전체 또는 우주적 기억은 ‘전체(tout)’라고 불린다. “전체는 에너지의 변화, 긴장의 변화이며, 그 밖의 다른 무엇도 아니다.”(ID 40) 또, “베르그손의 철학은, 전체는 긴장 및 에너지의 변화이지 결코 다른 무엇이 아니라는 우주론에서 완성된다.”(ID 67) 사실이지, 앞에서 베르그손이 ‘하나의 실체’를 언급했을 때, 그것은 우주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이해할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해서 차이나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과 차이나는 것, 스스로 변질되면서도 하나의 실체로서 머무를 수 있는 것은 오직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존속하는 우주 전체 말고는 떠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김재인, 『들뢰즈의 비인간주의 존재론』, 서울대학교박사학위논문, 2013, 103~104쪽)


이상은 @armdown ('아름다운'으로 읽습니다) 철학자였습니다. (상단의 구분선을 만들어주신 @yani98 님께 고마움을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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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책 중간까지 보다가 잠시 접어 두었는데, 번역때문에 진도가 참 안나갑니다. 문단마다 몇 번을 다시 읽어서야 의미를 깨달았는지 모릅니다. 제가 해당 분야의 소양이 없어 더욱 그렇겠지만, 문맥 자체가 어색하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내용은 무척 유익하고 재미있는데 이 점이 좀 아쉽습니다.

좀 장황한 서술도 난감하지요.

작년에 사서 읽다가 만 책이었는데, 리뷰쓰신 걸 보고 펼쳐보니 딱 6장에서 멈춰있어서 놀랬어요. 내용은 흥미롭고 좋았는데, 역시나 많고 어려운 내용이 한꺼번에 쏟아지다보니 그걸 한장한장 넘기는데 인내심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멈춘 것 같네요. 오역도 한몫했던거군요.

<우리는 정보를 메시지나 메시지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뭔가 전달되는 내용이 많은 때 정보량이 많다고 말한다. 반면 섀넌에게 정보는 메시지와 아무 상관이 없으며, 심지어 '의미'를 제거해야 했다.>

요거 참, 어려운 이야기군요.
정보에서 의미를 제거하면, 뭐가 남는거죠?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존속하는 우주 전체 '를 정보로 보고 해석은 하지 않는 걸 말하는가요?

참 어렵지만, 한 번 정복해 보고 싶은 책이군요.. ㅎㅎ

그 대목이 가장 어렵습니다.
직관적으로 와 닿질 않으니까요.

근데 통신에서 정보를 생각해 보면 '내용'이나 '의미'를 제거해야 할 겁니다.
디지털 정보로 전송한다는 게 010111000 이런 숫자들로 일단 옮긴다는 뜻이니까요.
내용이나 의미는 그 다음에 복원하는 거죠.
그러니 공학적으로는 정보에 내용이나 의미가 포함되면 곤란하지요.

아~~ 정보의 의미가 통신의 2진수 bite를 예기하는 군요..
그러면 조금 이해갑니다.. ㅎㅎ

선보팅 후리딩!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섹션 나누는 라인이 깔끔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