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의 원초적 가치를 다시 생각해본다(자발적 봉사주의).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나는 공학도가 아니다. 비트코인의 코딩적인 기술을 보고 감탄한 사람이 아니다. 고등학생 때 부터 화폐경제학에 관심이 많았고, 대학에 들어와서도 철학과 경제학을 공부하며 화폐는 무엇이며 가장 “건전한” 돈은 무엇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생각을 하다가 운이 좋게 남들보다 비교적으로 빠른 시기에 비트코인을 투자한 사람일 뿐이다.
스팀잇에 들어온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회귀이론으로 비트코인이 교환의 매개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오스트리아 학파 경제학자 월터 블록(Walter Block)의 논문도 번역했었고, 내가 속한 칼럼사인 @keepit에서 비트코인의 원초적인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도 하였다.
뭐, 이정도만 생각하면 됐지, 뭘 더 생각하냐는 거냐고? 그러게 말이다. 이놈의 비트코인, 맨 처음엔 돈 좀 벌어볼까 하다가 이제는 알 면 알 수록 참 머리 아프게 하는 친구다.
공부하면 할 수록 비트코인이 가지는 가치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그만큼 참 복잡한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에 한국에서 기술을 다루는 컨퍼런스는 많이 나오고들 있다. 블록체인의 확장성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들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고, Mass Adoption 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두고 이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들도 보인다. 나도 물론 이러한 시도들이 굉장히 가치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이해한 블록체인은 기술만 있어서는 성공할 수 없다. 아니, 적어도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는 블록체인의 기술은 굉장히 많은 철학과 경제학적 이론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블록체인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블록체인으로 구현할 수 있는 모습이 중요한 것이다. 사토시는 블록체인을 만드는게 목표가 아니었다. 블록체인을 이용해서 중앙화 되어있는 시스템의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사토시 정신” 따위의 이상한 독트린을 이야기 하려함이 아니다. 난 사토시 정신 같은 걸 정의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의 뒤에는 이 것들을 가능하게 한 사토시의 생각이 있고, 난 이 생각을 분해해보려 한다. 이것이 진정으로 가치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토큰 이코노미(Token Economy)
그런 점에서 토큰 이코노미는 블록체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과소평가 되어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탈 중앙성(de-centralization)”과 검열저항성(censorship-resistance)에 집중하느라 토큰 이코노미를 놓치는 것 같다.
잘 생각해보자. 만약에 인간이 모두 선해서 각자의 데이터를 자발적으로 관리하고 검증해준다면, 애초에 비트코인은 나올 수 없었다. 갑자기 뜬금없지만, 난 이 점에서 댄 라리머의 기본 전제가 틀렸다고 본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하지 않다. 그렇다고 악하지도 않다. 인간은 각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행동할 뿐이다(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행동은 다 행복을 위함이라고 했지만, 그 행복이라는 것의 가치도 주관적이기 때문에 ‘목적’으로 대체해야 할 것이다)그것이 불행인지, 행복인지는 각자의 주관에 달려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어떠한 사람도 자신의 돈을 들여서 네트워크에서 이루어지는 거래 내역들을 검증하고 관리해주지 않는다. 이에 대한 효용이 있어야만 해준다. 이게 인간이다 어쩔 수 없다. 인간의 목적을 또 다른 말로 해석하면 “동기”다. 결국 비트코인은 “동기”를 마련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만약에 동기가 없다면 탈 중앙화도 없고, 검열 저항도 없다.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개인들을 끌어모아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관리하고 검증하게 해야하는데 이에 대한 동기가 없기 때문이다. 동기가 없다면, ‘협박’을 통해서 해야한다.
이것이 지금 국가가 우리에게 하고있는 짓거리다. 다수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박봉으로) 국방을 하지 않을테니 법으로 정해서 “너네 군대 안가면 감옥가” 라고 하는 것이고. 다수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재산을 받쳐서 공공의 이익으로 써주기를 바라지 않을테니 “돈 안내면 감옥가”라고 협박을 하는 것이다.
이것을 자발적 상호작용과 강제적 상호작용이라고 하는데:
자발적 상호작용: 양측이 모두 동의하는 경우. 양측은 이 상호작용을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상호작용을 통해 얻는 이점을 기대하기 때문에 상호작용 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강제적 상호작용: 양측 중 한 쪽이 동의하지 않는 경우. 이러한 상호작용은 동의하지 않은 측 (강제당한 측) 이 물리적인 힘의 사용 또는 위협으로 인해 상호 작용을 피할 수 없을 때 발생한다.
바로 이 자발적 상호작용을 발전시킨 것이 비트코인이라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비트코인은, 전 세계의 다양한 개인들로 하여금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래들을 검증하고 관리하게 만든, 인류 최초의 자발적 동기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이전에는 반드시 인센티브를 주는 사람, 또는 내가 돈을 강탈할 사람이 존재해야했다. 예를 들어서 시장에선 소비자고, 국가에선 세금을 낼 국민들 말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최초로 누군가의 돈을 빼앗지 않고도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네트워크에 참여해 비트코인 네트워크 전체에 이익이 되는 행동을 유발했다.
이것은 나 같은 자발적 봉사주의(Voluntaryism)을 지지하는 사람에게 굉장히 큰 진전이다. 공익을 위해 행동하는 개인들이 강제나 강탈 없이 만들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비트코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고,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서 검증하고 관리하기 때문에 탈 중앙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누구의 강요나, 강제, 또는 협박이 없이도 말이다.
이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내가 보기에 비트코인의 원초적 가치는 이러한 자발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데에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을 얼마가 적절한가? 그건 나도 모른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알면 알 수록 그 가치가 귀해진다는 것은 사실이다.
나의 주장이 뜬금없다고 할 수도 있고, 헛소리라고 할 수도 있다. 한국에 이러한 가치를 믿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하건데 이러한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면 ICO고 나발이고 성공할 수 없다. 퍼블릭 블록체인이 기존 DB와 다른 이유, 비트코인이 기존 화폐들과 다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면 기존 서비스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세계를 위한 첫발일지도 모른다는 설레발을 쳐봅니다 ㅎㅎㅎ
비트코인이 문제점이 많은 건 사실이죠. 그런데 그것이 중요하겠습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비트코인이 블록체인이라는 하나의 기술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의미가 있는 것이죠. 인간은 원래 “최초”에 의미를 많이 부여하잖아요. ㅎㅎ
어지러운 세상에선 본질을 보는 눈이 중요하죠. 좋은 통찰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지러운 세상에 본질을 보게하는 것이 철학자의 업이라고 배웠습니다. 철학자는 아니지만, 철학을 배운 사람으로써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새로운 가치는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기존 가치로 평가를 내리고 그 평가가 떨어졌다고 '이건 사기다'라고 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죠.
아직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ㅎㅎ
정확한 말씀이십니다!
도대체 이런 지식과 생각들은 어디서 나오는 것임미까;;ㅎㄷㄷ
글쎄 ㅠ 이게 가치있는 생각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로서는 배울 점이 참 많은 글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