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베끼기 : 보이지 않는 범죄 (plagiarism is crime)

in #kr7 years ago

안녕하세요. @armdown ('아름다운') 철학자입니다. 오늘 피드를 보다 보니, 스팀잇에서의 '표절' 즉 '글 베끼기'가 문제더군요. 그래서 문득 전에 이 문제를 고찰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특히 스팀잇처럼 '생각의 가치' 또는 '창작자의 권리'가 보호되어야 할 곳에서는 함께 공유해 볼 생각이 아닌가 합니다.


보고서 베끼기 ― 보이지 않는 범죄

​ ― 양심의 문제가 아니라 학문하는 양식의 문제다

언제부터인가 대학생들 사이에서 보고서를 베끼는 일이 일상화가 되었다. 보고서를 보여주고 아니고는 종종 친구 사이의 ‘의리’ 문제로 비화되기도 한다. 실제 공간은 물론 인터넷에서는 보고서를 쓰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가 거래되고 있는데(장사꾼도 이용자도 다 문제다), 실제로 그 자료의 태반은 비슷한 주제에 대해 남이 쓴 보고서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런 현상에 무감각하다. 이미 보고서 베끼기는 관행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하지만 이는 대학과 사회의 존립 자체를 뒤흔들 정도로 심각한 문제이다. 아니 그것은 이미 뿌리부터 뒤흔들리고 있는 대학과 사회의 한 단면이자 징후이다. 이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사실 학문 내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베끼기는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까지는 불가피하다. 특히 기존의 지식을 얼마나 잘 숙지해서 소화하고 정리하느냐를 보는 학부 수준의 보고서는 더더욱 그렇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이지만, 해당 분야의 선배들이 했던 작업이 완전히 무시해도 좋을 만큼 사소한 것은 전혀 아니다. 그래서 선생은 학생에게 참고가 될 만한 책들 몇 권을 ‘참조’해서 글을 써오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수준의 베끼기는 나중에 공부가 계속될 때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을 펼쳐 가기 위한 자양분이 된다. 여기에서는 창조적으로 잘 베끼는 것이 문제가 될 뿐이다.

그러나 지금 문제가 되는 베끼기는 이런 베끼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헌데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과거에도 경우에 따라 보고서 베끼기가 묵인되던 시절이 있었다. 과거 내가 아는 한 교수는 '진짜로 베끼는 것’을 내놓고 용인해 주기도 했다. 그 교수만 그랬던 건 아니고 당시로서는 그것은 상당히 일반적인 일이었다. 그 교수의 주장에 의하면, 남이 쓴 것을 그대로 베끼더라도 그 많은 분량을 일일이 손으로 베껴 쓰다 보면 내용을 좀 알게 되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공부가 된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당시에는 대학의 공부 환경이 지금과 아주 판이하게 달랐다. 1980년대 후반만 해도 컴퓨터를 가지고 있는 학생은 인문 사회 계열뿐 아니라 이공계에서도 과를 통틀어 몇 명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지금은 게임기로도 쓰기 어려운 사양을 갖춘 컴퓨터가 전부였다. 이런 이유로 모든 보고서를 원고지나 보고서 용지에 손으로 써서 내야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더 근본적으로 보자면 이런 방식의 베끼기까지도 결코 용인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이제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어 아무런 노력 없이도, 심지어는 한번 읽어보지도 않고서도, 보고서를 쓸 수 있게 되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더 중요하게는 모든 베끼기는 학문 행위의 본질을 왜곡하고 나쁜 삶의 방식을 몸에 배게 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이것을 몇 가지 차원에서 살펴보자.

우리는 보고서 쓰기를 너무 가볍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보고서를 고등학교 때까지 하던 하기 싫은 숙제 정도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학부에서 쓰는 보고서는 일종의 훈련 절차이다. 그것은 자기만의 생각을 펼쳐 가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보고서를 쓰는 일은 기존 지식의 정리를 의미할 뿐 아니라 나아가 기존 지식을 자기 힘으로 정리하는 학습 과정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말해 그것은 자기 관점의 배양이자 논문 쓰는 연습이다. 그러니 첫 단계부터 베끼는 습관이 밴다면 나중에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게 되고 말 것이다. 남이 잡은 물고기만 먹다 보면 스스로는 물고기를 잡지 못하게 되는 법이다.

또한 한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보고서를 베끼는 습관도 잘못된 것이다. 보고서 베끼기는 명백한 표절이다. 단순히 남의 것을 베끼는 것을 표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자기만 볼 습작 노트에 베껴쓰는 일 같은 것), 베낀 것을 자기가 직접 한 것으로 속이면서 뭔가 이득을 볼 때 표절이 된다. 보고서의 경우 거기에는 학점이 걸려 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고, 보고서 베끼기는 나중에 남의 논문을 베끼는 행위로 발전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외국 논문이나 책을 베껴서 자기 논문이나 책인 양 발표한 많은 중견 학자라든지 심지어 제자의 논문을 베꼈다는 사례를 접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단지 부끄러운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둑질이고 사기이며 명백한 범죄 행위이다. 처음에는 학점이 문제였겠지만 나중에는 학문적 명예와 돈과 지위가 걸린 문제가 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남의 돈을 빼앗는 것보다 눈에 잘 안 보이는 남의 생각을 훔치는 일이 더 잘못된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모든 표절은 학문 발전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막대한 장애가 된다. 표절이 만연하면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며 나아가 성실하게 노력하려는 자세를 꺾고 허무감을 보편화시킨다. 베끼면 되는데 굳이 뭘 노력하느냐는 자포자기 의식이 확산되고, 베끼기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안이하고 나태한 학문 풍토를 낳게 된다. 그것이 한국 학문 수준의 천박함을 낳았다. 일례로 1980년대 유행했던 마르크스주의나 1990년대 유행했던 포스트모더니즘 연구는 외국의 논의를 베끼는 차원에서 거의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었는데, 그러면서도 그 논의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은 그걸 기회로 대학과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하게 할 수가 있었다. 후학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으르고 무능력한 사람이 교수랍시고 있는 것은 얼마나 소모적으로 보이는지 모른다. 그러니 공부는 하지 않고 연줄 만들기를 위한 노력에 몰두하는 것도 당연하다. 노벨상을 타지 못하는 것에 대한 푸념과 반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아직도 노벨상이 요원하게만 보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노벨상을 반드시 타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성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원인의 뿌리는 이미 대학 초년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베끼기 문제는 결코 개인의 양심의 문제가 아니다. 베끼기와 표절은 문화 현상이다. 그것은 한국의 대학 사회, 지식 사회, 더 나아가 사회 전체의 맥락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그것은 드라마나 대중가요 등 사회 곳곳에 만연한 표절 문화의 일부이며, 베끼기를 용인하는 문화 속에서 더욱 번성한다. 보고서 베끼기가 사회 전체가 공범이 되어 저지르고 있는 범죄 행위라는 것을 자각하지 않는 한 어떠한 학문과 사회 발전도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뭐든 스스로 노력하고 길러내고 만들어내려고 하기보다는 모든 것을 쉽게만 하려는 태도가 만연해 있다. 대학의 위기를 말하기 이전에 사회 풍토의 위기를 말해야 한다. 나쁜 것을 나쁜 것이라 깨닫지 못하는 것이 가장 나쁜 것인데, 우리 사회는 바로 그 가장 나쁜 상태에 있다. 보고서 좀 베끼는 것 갖고 말이 너무 지나쳤다고 얘기할 사람도 있겠지만, 어느 시인의 말을 잘 베껴서 말하자면, 그 경우 그 사람은 이미 아무도 욕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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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거나 습작하다보면 멋진 표현의 시어를 만나게 되죠!! 그걸 분명 인용하기는 해야 하는데 표절의 문제 때문에 인용하기도 그렇고.. 어디까지가 표절이고 어디까지 허용이 되는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리라 봅니다.. 멋진 표현은 그 시인만의 시어로 남아야 하는지도요..

다른 문제는 몰라도 '시어'는 고유하게 남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보면, 가끔 '직접인용'하면서 출처를 밝히고,
자기 시에 써먹는 시인도 있더군요.
이런 건 찬성입니다. '오마주'죠.
(남발하면 더 이상 시인이 아니겠지요.)

이런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 해본적이 없었는데, 고찰하게 되네요. 지금은 하고 있지 않지만 그러한 행위들을 했던 제 자신을 반성합니다. 나를 위해서 앞으로도 그런 행위는 하지 않으려 합니다. 글 써주셔서 많은 걸 느끼고 가네요. 감사합니다.

근본부터 생각해야 하는 문제인데, 사실 학교에서도 잘 지도하지 않지요.
교수들부터 떳떳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서 그런 듯요.
암튼 도움이 되었다니, 고맙습니다.

팔로우랑 보팅 완료했습니다! 예전에 스티브 잡스가 모방은 범죄가 아닌 창작 활동의 일부이고, 모방을 적극적으로 이용할것이라고 한게 기억이 나네요.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게되는 글이네요. 저도 고등학교 때 리포트 쓸때 구글 웹사이트들 많이 이용하여서..

모방을 모방으로 가져다 쓰면 곤란하고, 자기 것을 덧붙이고 원작자에게 사례를 해야겠지요.
특히 금전이 관련되었을 경우 '특허'와 '저작권'이 결부되니까 더 유의해야겠지요.
잡스의 취지를 잘 이해해야 할 겁니다(애플이 툭하면 특허 분쟁에 휘말리는데, 다른 대기업들과 별다를 바 없지요)...

인터넷의 발달로 베끼는 것이 많이 늘어났지요.
그렇지만 모방해서 완전히 새로운 나의것으로 만든다면 괜찮지 않을까요.

완전히 새로운 것을 바랄 수는 없을 겁니다.
창작자가 얼마간 새로운 점을 보태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그 사람만의 독창성이 드러날 수 있다면 괜찮겠지요.

관련논문 한박스 쌓아놓고 발췌인용연결로 논문 쓰던 기억나네요
다 지식의 부족 때문이겠죠
든게 많아야 그저 술술 쓸텐데요

출처를 밝히면 얼마간은 용인되지요(너무 인용만 가득하면 곤란하겠지만).
처음에는 그런 식으로 남의 것을 가져다 쓰면서 커가는 거니까요.
(지도)교수나 심사위원이 잘 걸러내면 된다고 봅니다.
학생 시절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게 어려우니까요.

특정한 날 특정한 책리뷰 조회수가 올라가요.
분명 어느 선생님이 숙제 내준 거겠죠. ㅡ.ㅡ

ㅋ.
심지어 제 글을 인용해서(짜깁기) 보고서 내는 학생도 있어요 ㅠㅠ

동의합니다. 한국에서는 이 문제가 너무 가볍게 생각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잠깐 드는 생각인데,
스팀잇이 그런 풍토에 경종을 울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네. 그렇습니다. 걱정되기도 하는 부분인데요.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해서 올린글 때문에 법적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까요. 저작권 관련해서는 홍보를 가끔씩 하고 있는데 열심히 홍보해도 잘 고쳐지지 않는 부분인 것 같아요.

아마 한 번쯤 '크게'(?) 사건이 터지고 나면
함께 자각하는 계기가 생기리라 봅니다.
어차피 거쳐 갈 과정이라고 봐요.
그걸 계기로 이 사회가 한 번 더 거듭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고요.
학교와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선회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지요.

생각을 모방한다.. 흠..
스티브잡스의 말처럼 모방을 적극 활용해서 더 나은 생각과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조차도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모방으로만 끝난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스스로 범죄인지 노력인지 깨닫고 행동해야 할 것같아요...
잘 보고 갑니다~! 팔로우할게요~

잡스의 취지도 그저 베껴라가 아니라 창의적인 면을 덧붙여라일 텐데,
잡스의 말을 그냥 베끼다 보니 오독이 생겨나는 것 같아요. ㅠㅠ

표절, 가볍게 생각한다는 거에서 문제가 많이 있지요.
이제는 원저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좀더 성숙한 문화를 만드는게 중요한거 같아요.

문화가 문제이지요.
이 사회 전체가 바뀌어야 하고,
지금이 그걸 할 수 있을 계기라고 봐요.

"유능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피카소의 명언 중 가장 유명한 말이죠

생각이 없으면 그저 베끼기에 그치지만

그걸 자신의 생각을 넣어 새로 만들면 ᆢ

많이 읽다보면 그속에서 1Steem정도는

건질수 있지않을까요?

요즘은 인터넷으로 정보를 쉽게 접하고

눈이 많고 표절방지프로그램이 많아서

쉽게 걸립니다

저처럼 얕은 지식의 사이비들은 쉽게 발각되죠

ㅋㅋ

마지막 말은 좀 그렇고요... ㅋㅋ
표절과 창조는 한끗 차이죠.
그걸 구별하는 안목이^^

그럼요 종이한장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