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막바지

in #kr7 years ago (edited)

서른 막바지

나이

삼십대 초반까지는 나이를 세며 살았는데 그 이후엔 나이를 말할 때가 되면 출생년도를 가지고 계산해봐야 나이를 말할 수 있었다. (시간의 흐름에 둔감하게 살았다) 그러다가 작년 초 2017년에 내 나이를 인식한 뒤, 충격을 받았다. 이유는 인생을 80년으로 친다면 절반을 낭비했다는 생각에 우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죽음

사람은 언젠간 죽는다. 이 사실을 가끔씩 상기하곤 하지만 매 순간 그러기는 쉽지 않다. 매초 죽음을 상기한다해도 계속 살아있다면 그렇게 죽음을 망각하게 되는게 큰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대략적인 수명의 절반을 소비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조바심이 났다. 절반을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지 못했기에 낭비라는 단어를 썼고 낭비했기에 조바심이 났다. 40년을 보내봤더니 너무 짧았기 때문에 나머지 40년도 이렇게 낭비되지 않으리란 법은 없었고 변화가 없다면 별반 차이는 없을거란 결론에 도달하자 “변하고 싶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변화

사실 변화를 원하던 시기는 몇차례 있었다. 하지만 젖은 땔감 마냥 불이 붙은적은 한번도 없었다. 열등감 가득하고 냉소가득한 나에게 변화를 지속할 애정은 없었고 세상만 원망하며 살았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딸이 생기고 난 뒤, 나의 무능이 가족의 고통이란 사실을 알고 난 뒤 세상을 원망하는건 시간 낭비란걸 알고 나 자신을 바꾸기로 마음을 바꾸곤 20년 넘게 피우던 담배를 끊었다.
사실 딸아이는 감기를 달고 살았었다. 딸아이가 첫 감기 때 내가 병원은 안가도 된다고 고집을 부렸고 결국 패렴 전단계까지 진행되서 딸아이가 무척 고생을 했었다. 그래서인지 감기만 걸리면 늘 폐쪽에 염증이 생겼고 나 때문인 것 같아 늘 미안했었다. 거기에 더해 첫 신혼집은 1969년에 지은 낡은 아파트였고 겨울엔 시맨트벽에서 물을 뿜어내곤 했다. 그 때문에 곰팡이가 벽지를 검게 물들였지만 돈이 없어 그 집에서 4년을 살고는 이사를 했다. 새롭게 이사한 곳에서도 감기가 계속 걸려 병원에 가곤 했는데 의사선생님이 “유독 감기가 안낫네요. 혹시 담배 태우세요?”라고 물었고 내 대답을 듣고는 “아이를 위해서 끊으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곤 담배를 끊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방법

담배를 끊고 손톱 물어뜯는 버릇을 고쳤다. 사십 가까운 사람이 긴장하거나 불안할 때면 여지없이 손톱을 물어뜯곤 했고 이는 거의 삼십년 넘은 버릇이었다. 그렇게 무작정 이것저것을 했다. 고등학교 때 포기했던 스케이트보드를 다시 타기 시작했다. 한여름 땡볕아래서 점심 시간 마다 타기를 여름 내내 했더니 검게 그을린 피부와 함께 스케이트 보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알리ollie”를 어설프게나마 흉내 낼 수 있게 됐다.
변하고 싶어졌지만 어떻게 해야 변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기에 내 나름대로의 시도를 했다.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학창시절에도 했다. 다만 답변은 “성공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한다.” 뿐이었다. 난 공부를 잘해 본 적도 없고 열심히 해 본적도 없으니 방법을 몰랐다. 그러다 성인이 됐고 방법을 알려는 열망은 사라지고 그럭저럭 살았다. 이십대 후반에 한차례 열병이 왔다. 우울증이 왔다. 술과 유흥으로 열병을 흘려보내고는 또 그렇게 살았다. 그랬더니 서른 후반이 되더라.
고민하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변할 수 있을까. 누구에게 물으면 답변을 얻을 수 있을까. 워랜버핏을 만나려면 돈을 내야 한다던데. 그러다 책에 답이 있을거란 생각에 무작정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결심하고 읽은 책이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이었고 혁명에 가슴이 두근거리다가도 내가 청년인가라는 물음을 계속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그렇게 한권을 다 읽고 나서 “4050 후기청년”이란 책을 읽었다. 청년이 뭔지 알고 싶었기 때문에 읽기 시작했는데 중년의 두려움을 없앨 수 있었다. 그리고 두달 동안 3일에 한권 정도를 꾸준히 읽고 있다. 그리고 변화하는 방법을 하나둘 알게 됐다.

행동

그렇게 책을 읽으며 사색하며 얻은 결심으로 새벽 4시 반에서 5시 사이에 일어나기를 습관화하고 아침에 일기(모닝페이지)를 쓰기 시작했고 아침마다 요가와 명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주머니에 들어가는 작은 수첩을 사서 닥치는대로 기록을 하고 있다.
기껏해야 3개월을 지속했다. 아직 변화를 실감하는 것도 없다. 성공을 하지도 못했다. 그런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새로운 습관으로 결심한게 하루에 두
페이지의 글을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냥 그게 다다. 독서를 통해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고 글쓰기와 그림그리기란 결론에 도달했고 열듬감에 포기했던 글쓰기에 대해 하루에 두페이지 쓰기란 습관을 만들기로 했기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하루에 그림 한장 그리기도 곧 시작할 생각이다.

결과

이런 미미한 변화의 결과를 나는 모르겠다. 그냥 10년을 지속해도 20년을 지속해도 지금처럼 별볼일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이런 초라한 변화를 시작한 이유는 딸과 아내 때문이다. 무능력한 남편, 가난한 아빠로 더 이상은 살고 싶지 않았기에 간절한 마음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나하나 해나가고 있다. 지식도 없고 능력도 없는 나는 아직은 투자를 통해 자산을 불려본적도 없고 부동산을 소유해본적도 없으며 좋은 회사에서 높은 연봉을 받지도 못하는 한심한 신세지만 더이상은 그렇게 살고 싶지 않기에 발버둥 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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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뭐 비슷한..ㅎ
그래도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ㅎ

행복이 결론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