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에 시 읽기> 이런, 뭣 같은/유지소
저는 시를 좋아해요.
좋아는하는데 시가 어려워요.
되풀이 읽어봐도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시들이 정말 많아요.
아니,한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어야하는거 아닌가요?
볼멘 소리를 하면서도 꾸역꾸역 읽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제게 한 편의 시가 선물처럼 다가왔습니다.
유지소라는 시인의 "이런, 뭣 같은"이라는 제목을 가진 시에요. 같이 한번 읽어보실래요?
이런, 뭣 같은/유지소
막걸리 사러 오복슈퍼 가는 길
검은 슬리퍼가 찰싹
찰싹 세상의 따귀를 때리며 걸어간다
직장도 찰싹
애인도 찰싹
약속도 찰싹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카펫처럼 찰싹 애도처럼 찰싹 끝없이 정중하게
이렇게 눈부신 찰싹 이렇게 고요한 찰싹
이 세상의 따귀를 찰싹
찰싹 후려치며 걸어간다
이런바퀴벌레절편같은이런똥걸레구절판같은
이런시궁쥐통조림같은
모닝헤어디자인 모퉁이 돌아갈 때 찰싹
<무료로!!!행복을 커트해드립니다> 찰싹
바람벽에 막 내걸리고
있
었
다 찰싹
오복 중의 복 하나가 또 죽어 나가겠군 찰싹
다 그런거지 뭐 찰싹
승리기원 멸치 대가리만 한 쪽창 속으로 찰싹
희멀건 태양이
막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런개뼈다귀댄스같은
이런알쭈꾸미안경같은이런똥궁둥이고약같은
오복 슈퍼에 막걸리 사러 가는 길 얼씨구
검은 슬리퍼가 내 발바닥을 찰싹
찰싹 후려치며 웃는다
눈물도 찰싹
웃음도 찰싹
희망도 찰싹
하룻밤 한잔 술에 다 말아먹은
너는 누구냐? 찰싹
티눈처럼 찰싹 얼룩처럼 찰싹
발바닥에 몰래 숨겨 놓은 나의 낯바닥을 얼씨구
찰싹찰싹 후려치며 웃는다
이런썩은동태가운데토막같은이런돼지발싸개같은
이런
너같은
시가 다소 길지만 입에 착착 감기면서 가락이 붙어 신명이 나더라구요. 시에서는 '슬리퍼'라고 쓰지만 저는 읽으면서 그 흔한 삼선 슬리퍼보다는 "쪼리'가 떠올랐어요. 엄지발가락 하나를 간신히 걸칠 뿐 무방비 상태로 발 전체가 노출되는 그 쪼리 말이에요. 조선김처럼 얇고 뒷굽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발바닥 전체가 바닥에 닿아 온몸의 무게를 다 받아내는 그야말로 "바퀴벌레 절편"같은 그 쪼리요.
신발의 종류는 참 많지요. 부츠, 구두, 운동화, 스니커즈, 슬립온, 등산화, 런닝화, 하이힐......
신발의 종류도 용도도 디자인도 다 다른 이런 신발들 중에 슬리퍼를 소재로 했는데, 걸을 때마다 땅바닥과 발다닥에 번갈아가며 착착 달라붙는 모습에서 '찰싹'이라는 소리를 연상하고 그 소리에서 '따귀'를 연상하고 쓴 것 같아요. 그리곤 자신이 따귀를 올려붙이고 싶은 것들을 고르지 않았을까요? 그 따귀는 직장도, 애인도, 약속도 없는 자신이었다가 그런 것들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였다가 결국에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와 발바닥을 찰싹찰싹 올려붙이죠. 통쾌하기도 유쾌하기도 했는데 "이런/너같은" 이라는 마지막 연에 오자 갑자기 싸해 집니다.
찰싹 따귀를 올려붙이고 싶은 것들을 마구 찾아냈는데 결국엔 그것이 자기 자신으로 귀결되는...
어렵지도 않으면서 심지어 재미까지 있으면서 끝내는 성찰에까지 이르는 ...오랜만에 만난 좋은 시였어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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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저는 흑백챌린지가 뭔지도 모르는 완전초짜에요.ㅠㅠ mhjeon님 블로그에서 찾아보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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