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내식으로 유대교 코셔밀을 먹어본 리뷰

in #meal8 years ago (edited)

모든 발단은 프랑스 여행을 거의 마치고, 귀국 비행기의 웹 체크인을 하던 때였다.

좌석도 적당히 선택하고, 뭐 없나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식사 메뉴도 선택이 가능하다는 메뉴를 보았다.

"음.. 이거 메뉴 고를 수 있구만"

나는 호기롭게 메뉴를 보다가, 유대교식 식사도 제공된다는 것을 보았다.

"오. 유대교식이라. 한번 해볼까"

그리고 잠깐 검색을 통해 코셔밀에 간략한 정보를 얻었다.

유대인의 율법에 따라 만든 정갈한 음식.

유대인에, 유대인에 의한, 유대인을 위한

마치 게티즈버그 연설처럼 정리되는 이 정결하고 아름다운 코셔밀!

육류와 유제품을 섞어쓰지 않고 돼지고기와 갑각류도 쓰지 않는단다.

그리고 각 음식을 개별포장해야하기에 단가도 높고 그만큼 정성이 들어간다고 한다.

나는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것을 대단히 좋아하는 사람이었기에

한번의 기내식쯤은 유대교 식으로 먹어볼만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내 선택에 행복해 하며 코셔밀 신청 버튼을 눌렀다.

파리에서 하네다로 가는 비행기 안.

탑승하자마자 내 좌석에 코셔밀이라 적혀있는 스티커를 붙여주곤 생글생글 웃는 승무원 분을 보며

역시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음을 깨닫고 그에게 방긋 웃어보였다.

이윽고, 카트를 끌고오는 승무원중 한명이 가장 먼저 내게 와서 말했다.

"미스터 킴! 코셔밀 주문하신거 맞으시죠?"

"네 맞아요 얼른 주세요 ㅎㅎㅎㅎ"

으레 특수 식사를 선택하면 가장 먼저 그 사람에게 서빙을 한다.

내 좌석은 꽤나 뒤에 있었음에도 그 열, 그 줄에서 가장 먼저 식사를 받았다.

나는 이 기가막힌 아이디어에 싱글벙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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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 선택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걸 알아차리기까지 그다지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맛있어 보이는 고기를 입에 넣었다.

그리고 복잡 미묘한 그 맛 처럼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실화인가..'

나는 진심으로 내가 처한 상황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자라고 부르기 대단히 미안한 매쉬드 포테이토와 담백하게 삶아낸 브로콜리 비슷한거

그리고 무슨 맛인지 표현할 수 없던 고기 요리에

냉동실에서 갓 꺼내온 빵인지 찰떡인지 그 중간의 미묘한 경계선에 서있던 정체불명의 빵

그리고 설탕으로 만든 케이크와 카레 야채 샐러드인줄 알았던 아무맛도 안나던 샐러드까지

그나마 좀 괜찮았던 사과 퓨레

아마 저녁메뉴라서 이런걸꺼야 ^^ 하며 긍정적인 생각을 갖기로 했다.

그렇게, 반도 안 먹은 기내식을 물리며 내일 아침 기내식으론 좀 더 맛난게 나오리라 희망찬 생각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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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법처럼 나는 좌절했다.

아침 기내식으로 나온

키친타올로 만든듯한 모닝빵과 크로아상

적당한 맛을 내주던 사과 퓨레

오렌지 향이 나던 맹물

그리고 제일 맛있었던 냅킨까지.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이라면 왜 내가 가장 왼쪽에 있는 음식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지 궁금해 할텐데

저 음식에 대해 설명하기에 차마 여백이 부족하여 적지 않는다.

나는 페르마로 빙의하여 저 음식에 대해 적당한 정리를 이끌어내고 싶었으나

저 음식은 내 지식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었기에 저걸 진정 지구의 음식으로 불러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만약 페르마가 저 음식을 먹었다면, 그도 나와 같은 의견이었을거라는데 올인을 할 수 있다.

어쩐지. 저 기내식을 건네줄 때 승무원은 떨리는 손으로 몇번이나 확인하며 내게 주었다.

그땐 그 의미를 잘 몰랐던 나는 이쯤 되어서야 그의 의중을 알아차렸다.

아마 속으로 그랬겠지

' 저 사람.. 혼모노다... '

어지간히 열렬한 유대교 신자가 아니고서야 저런걸 먹는건 여간한 일이 아니었다.

마치 인도에서 스스로에게 고행을 가하던 고승들 처럼

흑사병이 돌던 중부 유럽에서 스스로에게 채찍을 치던 그들처럼

이 승무원의 눈에도 내가 그런 부류중에 하나였을까.

이미 내 라이프 게이지는 0에 가까웠지만

나에겐 아직 한번 더 식사가 남아있었다.

하네다-김포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한국 승무원분이 오시더니 스티커를 붙인다.

그는 나를 쓱 보더니 혼란한 표정을 지었다.

"손님 유대교식 코셔밀 신청하셨어요?" (동공지진)

"네...네....네...맞아요."

"아........" (깊은 탄식)

나는 남은 힘을 짜내어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기..승무원님"

"네...?"

"기내식..변경 안될까요..."(애절)

내 목소리를 장발장이 들었다면 눈물을 흘리면서 나에게 빵을 나눠줬을정도로 애절했다.

승무원님은 나에게 측은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저.. 죄송하지만 이게 이미 다 신청된거라서요..."

그리고 그는 소말리아의 난민들을 애써 무시하는듯한 걸음새로 뒷걸음질쳤다.

나는 좌절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속 엄석대에게 굴종하는 한병태의 모습이 이보다 더 비참하진 않았을것이다.

선고를 기다리는 죄수의 모습처럼, 감옥의 작은 창을 바라보듯이 좌석에서 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하아.... 그 날도 하늘은 무척 맑고 파랬다.

이윽고, 이 불쌍한 죄수에게 알록달록 옷을 입은 승무원이 와서 알맞은 형량을 선고했다.

"손님, 주.문.하.신. 코.셔.밀.나.왔.습.니.다. 맛.있.게.드.세.요 ^^"

승무원은 내게 끝까지 생글생글 웃으며 내 기분을 풀어주려 노력했다.

차라리 죽으려면 빨리 죽는게 낫겠다 싶었다.

곱게 밀봉된 기내식을 뜯으며, 비록 유대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진심으로 이번 식사는 맛이라고 불릴만한게 있기를 야훼께 기도드렸다.

그러나, 야훼는 야매 신자를 바로 알아보고 더 가혹한 조치를 해놓으신듯 했다.

모닝빵은 젖은 키친타올을 뜯어먹는 느낌이었고

디저트는 아예 손을 대지도 않았으며

무언가 맛이라고 부를 수 있던건 저 샐러드였다.

그나마도 포크로 2번 휘저어 먹으니 위장에서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알려왔기에

부득이 포크질을 멈출수 밖에 없었다.

이제 주 요리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볼수밖에.

나는 주 요리의 은박 포장지를 투탕카멘 미-이라를 꺼내듯 조심스레 벗겨내었다.

나는 그 순간 인디아나 죤-스의 모습으로 빙의했다.

오 하느님 제발!

여기서 잠깐 토막 퀴즈.

사진 속 은박지 통에 들어있는 허여멀건한 덩어리의 정체는? (5점)IMG_1952-HklsT+9De.JPG

정답은 60초 후에 공개됩니다!

그 물체의 정체는 바로 생선이었다.

나는 뚜껑을 열고, 혹시나 싶어 냄새를 살짝 맡아보았다.

홍어냄새 비슷하게 올라오며 정신이 아찔해졌다.

전 세계 영화 역사상 최고의 명작, 클레멘타인의

"아빠 일어나!" 라는 대사가 내 귓가에 맴도는듯 했다.

내가 아까 투탕카멘의 미-이라 라고 했던가?

적어도 투탕카멘의 미이라 냄새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진심 저 덩어리와 비슷했을것이다.

처음엔 상한게 아닌가 깊은 의심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 이것이 사형선고의 다른말임을 깨닫고 왜 그가 동공지진을 일으켰는지 또한 이해가 갔다.

그랬다.

상황은 내 생각보다 더 비참했던것이었다.

'하아.........'

깊은 한숨이 절로 나오며, 이제 이 홍어 덩어리하고 남은 비행시간을 함께할 생각에 머리가 아찔했다.

그리고 그 아찔해진 머리 속으로, 파라오가 이스라엘 노예들에게 채찍질을 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무더운날 채찍질을 하던 이스라엘 노예들에게 저런 음식을 던져줬다면 나라도 이집트를 떠나고 싶었을것이다.

비로소 출애굽기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 발견을 고고학계에 알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나는 오랜 장고끝에, 이 음식에 대해 이름을 붙이기로 결심했다.

" 투탕카멘이 인증한 뒤틀린 이집트의 히브리 정식 "

정말이지, 완벽하게 멋진 이름이었다.

때마침 나는 카트를 끌고오는 또 다른 승무원을 발견하여 손짓했다.

그는 내가 아직 먹지도 않은 음식을 반납하려 하자 점짓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모든것을 해탈한 표정을 지으며 짧은 영어로 그에게 말했다.

"이거 치워주시고, 혹시라도 절대 냄새는 맡지 마세요. 그리고 맥주 한 캔만 부탁합니다 제발...."

정말이지, 취하지 않으면 더 이상 맨정신으로 있을 수 없을것 같았다.

만약 석가모니께서 이 음식을 보셨다면 분명 보리수 아래서 짹-다니엘 한잔 거하게 하셨을꺼다.

그리곤 깨달음을 얻으셨겠지.

아니, 어쩌면 먼 미래에 이런 음식이 나올까봐 육식을 하지 말라신건가.

나는 석가모니의 혜안에 무릎을 탁 쳤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그 열 두 시간의 비행은

페르마, 고고학자, 장발장, 파라오, 석가모니, 하느님

그리고 3만피트 상공에서 날고있던 보잉 787 비행기까지.

마치 인류 지혜의 정수가 한자리에 모인 한편의 우아한 무도회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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