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커 리뷰: 조커의 웃음 뒤에 감춰진 진실

in #aaa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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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milleviaaad0 / Warner Bros.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입니다.

DC코믹스의 빌런으로서의 조커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조커를 그려낸 영화 '조커'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배트맨 시리즈는 물론이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 트릴로지와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의 수어사이드스쿼드 에서의 조커는 광기에 휩싸인 악당으로만 그려져왔다. 그동안 그 누구도 그가 왜 악당이 됐는지 궁금해하지 않았고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토드 필립스의 영화 조커는 어쩌면 누군가는 궁금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인 인간, 혹은 인간이었던 조커를 훌륭하게 그려냈다. 광기 넘치는 악당으로서도 완벽하다고 생각되던 조커라는 캐릭터에 생기를 한 번 더 불어넣은 영화, 조커. 그 이야기를 시작한다.

암울하고 비참한 현실속의 사회적 약자

범죄와 악의 도시 고담, 그 도시에 사는 아서 플렉은 홀 어머니인 페니 플렉을 모시고 사는 남자다. 항상 웃으며 남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그에게, 세상은 너무 가혹하기만 했다. 그건 바로 그가 정신질환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언제나 웃었다. 기쁠 때는 물론이고, 슬플 때와 화가 날 때도 웃었다. 자신의 감정을 웃음으로 밖에 드러낼 수 없는 그에게 세상은 너무나도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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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rner Bros.

그런 그에게도 딱 맞는 직업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항상 웃으며 남들에게 웃음을 주는 '광대'였다. 하지만 그의 광대놀음에도 위기가 찾아오게 된다. 광대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에게 몰매를 맞고 돌아온 그에게 동료 '배리'가 위기가 올 때 사용하라며 총을 건네준다. 며칠 뒤 아동 병실에서 일을 하던 조커가 자신의 총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사건이 발생했고, 그 일은 사장의 귀에도 들어가게 된다. 자신의 광대짓에 필요한 소품이라고 변명하던 그 때, 사장은 배리가 이미 증언했다며 그를 해고한다. 유일한 안식처라고 생각해왔던 그 무리에서조차 배신당했다. 왜냐하면 그는 항상 웃기만 하는 소름끼치고 불편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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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존재하는가?

남들과 다르지만 다르다는것을 숨기고 살아야했던 그는, 언제나 세상에서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다른 누군가로 살아야만 했다. 누구도 그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도 꿈이 있었다. 바로 코미디언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꿈이었다. 무대위의 긴장감을 비롯한 다양한 감정이 웃음으로 터져나오기 때문이었다. 쉴 새 없이 터져나오는 웃음 때문에 자신의 조크를 남에게 전달하는 것 조차 힘들었다. 관중은 그가 웃을때는 침묵했고, 그가 웃지 않을 때는 웃었다. 아무 감정 없이 담담한 진실을 이야기할때 터져나오는 관중의 웃음은 바로 비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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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rner Bros.

아서의 어머니는 토마스 웨인에게 계속해서 편지를 보냈다. 지난 날, 자신이 일했던 웨인 가에서 이렇게 비참하게 살고있는 자신과 아들을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서는 어머니의 부탁대로 언제나 우편함을 확인했다. 하지만 수 십년동안 단 한통의 답장도 오지 않았다. 어느 날, 어머니의 편지를 열어본 그가 발견한 것은, 자신이 바로 시장 후보이자 억만장자인 토마스 웨인의 사생아라는 것이었다.

존재의 이유

광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느날, 지하철 안에서 고급진 양복을 입은 세 명의 취객이 나타났다. 여인을 희롱하는 그들을 보며 아서가 웃기 시작했다. 사실 그는 웃지 않았다, 웃은 것은 그의 질환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약자로서의 자신을 비웃듯이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멈추지 않는 웃음은 그들을 자극했고, 그들은 먹잇감을 변경했다. 몰매를 맞던 아서가 동료가 건네줬던 총으로 세명을 살해했다.
총이 광대짓에 필요한 소품이 되기 시작했다.

죄책감과 두려움에 휩싸인 그는 현장을 벗어나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고 달려서 그가 도착한 곳은 어느 화장실이었다. 가쁘던 숨이 안정되며 평화가 찾아왔다. 아서는 거울을 바라보며 머릿속에서 들리는 첼로 음악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동안 그는 웃지 않았다. 기쁨을 제외한 모든 감정을 잃어버린 듯이, 더 없이 평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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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살인은 토마스를 비롯한 부유층에 대한 반감을 폭발하게 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됐다. 그들은 광대 살인마를 지지하며 광대 가면을 쓰고 다니기 시작했다. 배척받고 인식받지 못하던 세상에서 인간 아서 플렉이 아닌, 광대 살인마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택시 승객이 쓴 광대 가면을 보며 아서가 옅은 미소를 짙는다. 살아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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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rner Bros.

사회와 환경이 낳은 악

아서에게는 머레이 프랭클린이라는 우상이 있었다. 그는 우상을 넘어 정신적인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그는 유명한 코미디언으로 자신의 쇼를 진행하는 스타였다. 언젠간 자신도 그의 쇼에 출연하겠다는 꿈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원하지 않는 방식과 의도로 그 쇼에 출연하게 됐다. 그가 공연했던 클럽에서 누군가 아서의 쇼를 촬영했고, 그 비디오를 쇼에서 틀었던 것이다. 머레이는 비디오를 보며 비웃었고 아서를 웃음거리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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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으로 병원에 수감된 적이 있던 아서는 복지기관에서 주기적으로 상담을 받고 약을 처방받아왔다. 모두가 그러했듯이 사회복지사도 아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도 좋았다. 그 곳이 덕분에 조금이나마 '인간 아서'로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약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공간도 결국 복지 삭감이라는 정책의 영향을 받아 문을 닫게 된다.

유일한 일자리에서도 해고당하고 정신을 유지하게 해줄 약의 공급처도 막혔다. 정신적인 아버지이자 우상에게 조차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없었다.

악의 탄생

토마스를 만난 뒤, 아서는 그의 말을 듣고 어머니가 수감되었던 아캄 정신병원에 찾아갔다. 그곳에서 자신의 어머니라고 생각했던 존재가 사실은 자신을 입양했고,정신질환자였으며, 자신을 학대해서 뇌에 손상을 줬다는 정보를 발견했다. 그 정보에 따르면 자신이 이 세상에서 배척받은 이유가 바로 그녀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아서는 페니를 죽임으로써 자신의 잘못된 탄생을 지우기 시작했다. 그날 밤, 아서는 냉장고를 비우고는 차갑고 어두운 냉장고 속으로 웅크려 들어갔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머레이 프랭클린의 쇼에서 아서에게 전화를 했다. 그의 동영상을 틀었던 방송의 시청률이 좋았기 때문에 아서 본인의 출연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그 요청을 받아들였고, 자신의 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초록색으로 물들이고 광대 분장을 하고 우스꽝스러운 색깔의 옷을 입었다. 광대일이 끝나면 지친 몸을 겨우 가누며 무기력하게 오르던 계단을, 춤을 추며 내려갔다. 이 계단을 다시 오를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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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rner Bros.

대기실에서 준비하고 있던 조커가 머레이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자신을 '조커' 라고 불러달라는 것이었다. 무대 뒤 커튼에서 아서가 춤을 춘다. 커튼이 열리며 조커가 춤을 추며 입장한다. 이제 쇼는 시작됐다. 아서는 사라지고 오직 조커만이 존재 할 뿐이다. 그렇게 조커가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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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rner Bros.

마치며

영화를 보고나서 이 어두운 영화의 여운이 계속 몸에서 씻겨나가지 못하게 한참동안 사운드트랙을 반복해서 들었다. 아서의 인생도 계속 이처럼 어두웠으리라. 그리고 나서 밝음 음악을 들으며 영화에서 깨어나 현실을 마주했다. '다행이다. 내 삶은 그래도 밝구나.' 라고 느끼며 감사했다. 여운이 오래가는 잘 만든 영화였다.

광기와 웃음만으로도 존재감이 넘쳤던 다크나이트의 조커를 연기했던 히스레져가 사망한 후, 호아킨 피닉스가 인간 조커의 이야기와 함께 더 완벽해진 조커로 등장했다. 그동안 지울 수 없던 히스레져의 이미지가 점점 호아킨에게 녹아들었다. 두 배우는 연기를 통해 조커로 다시 태어났고, 삶을 불어넣었다. 조커란 나에게 있어서 DC 코믹스의 그 어떤 캐릭터보다도 가장 인간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가 됐다.

영화는 하나지만, 그 해석은 다양하다. 비판적인 수용 없이 영화를 받아들인 다는것은 위험한 행위이다. 그러한 면에서 볼 때, 이 영화는 아서라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이용해서 조커의 탄생을 미화했다고 볼 수 있다. 악의 탄생에 이유와 근거를 붙여가며 악을 정당화 한다고 비판받을 수 있는 영화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이런 시도를 통해 더 좋은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 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시 보고 싶지만, 다시 보기가 꺼려지는 영화였다.
물론 그래도 다시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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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의 리뷰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