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외설 그리고 패러디의 경계 <이명박 - 작품명 미상作 > <박근혜- 더러운잠 作> 그리고 1896년 <모네의 올랭피아>
<이명박 作- 작품명 미상>
<박근혜- 더러운잠 作>
#1. 패러디의 인정과 불인정
첫 번째 그림은 이번 이명박 집회에서 볼 수 있었던 그림이다. 둘의 차이점은 <이명박 - 작품명 미상作>은 길거리 집회에서 사용되었고(내가 아는 정보에 한하면..) <박근혜- 더러운잠 作> 작업은 국회의원회관 공간에서 전시되었다는 점이다. 전자는 논란이 되지 않았고, 후자는 논란이 되었다.
그럼 어디까지 패러디가 인정될 수 있고, 어디까지 예술의 범주에 있을 수 있을까. 예술과 외설의 논란은 사실 유럽 사회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논란이 되어 왔고 논쟁을 해왔다. 여전히 이 부분에 의견이 분분하며 논쟁을 하고 있다. 물론 거의 정리가 되어가는 분위기는 하지만, 사회적인 문제가 생길 때마다 어김없이 그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패러디의 사명은 그런 것이다. 패러디는 과장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패러디는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웃거나 낯을 붉히지 않고 태연하고 단호하고 진지하게 행할 것을 미리 보여 줄 뿐이다. - 움베르트 에코 parody wrriten by Umberto Eco]
[패러디(parody)의 어원인 'paradia'는 "다른 것에 대한 반대의 입장에서 불려진 노래"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이보다 더 오래된 낱말로 추정되는 'paradio'는 "모방하는 것, 모방하는 가수"의 의미를 지녔다. 따라서 이 두 상반된 어원적 의미로 보면 패러디란 '반대'와 '모방' 또는 '적대감'과 '친밀감'이라는 상호모순의 양면성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모방과 변용이 패러디를 구성하는 기본개념인 것.
일반적으로 패러디는 '원전의 풍자적 모방'이거나 '원전의 희극적 개작'으로 정의한다. 모방과 변용, 골계는 패러디의 3대 요소다. 패러디가 성립하는 필요충분조건은 패러디 '된' 작품(원전)과 패러디 '한' 작품의 이중구조다. 이것은 패러디스트가 원전의 독자이자 패러디 한 작품의 작자라는 이중적 지위와 상응한다. 그래서 패러디는 원전에 대한 모방의 형식이면서 해석의 형식이고 비평의 형식이기도 하다. 이 이중구조가 다름아닌 상호텍스트성이다. 즉, 패러디적 사고는 그대로 상호텍스트적 사고이며, 바흐친은 '모든 작품의 언어에서 반쯤은 작자의 언어이고 나머지 반은 타인의 언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패러디는 문맥 옮겨놓기 현상이며, 초문맥(transcental contexts)이다. 출처 : 나무위키 ]
#2. 두 작품이 패러디한 원작
이 두 작품이 패러디 한 원작 <마네의 올랭피아-1896> 역시 외설과 예술의 논란의 중심에 섰던 작품이다. 여성의 나체를 미화하거나 여신으로 신화화 하지 않고 그려서 당시 사회적으로 파문이 일었다. 게다가 그 주인공은 신화 속의 비현실 인물이 아닌 현실속의 매춘부였다. 매춘부인데다가 화면밖을 큰 위축없이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어 그 시선이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여성인권의 목소리가 크지 않을 때이기 때문에 더 논란이 되었는데 이 그림속의 태도 또한 사회속에서 축적된 사고 프레임-기저 속에 사람들에게 용납이 될 수 없었다.
예술과 외설의 논란이 국내는 최소 100여 년 이상이 늦다. 그만큼 문화예술의 환경이 척박하고, 관련한 정보가 매우 한정되어 있으며 사회가 경직되어 있고 미디어가 편향되어 있어 실질적으로 그 논란에 비해 건강한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3. 성적 대상화 문제의 복잡성
성적 대상화가 실제로 열악한 환경의 나라에서 여성은 물론 특히 어린아이들을 통해 악용이 되고 있고, 미디어의 발달로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일의 경계가 흐릿해져 판단과 인식이 점점 어려워지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성적 대상화의 문제는 개인 SNS 발달로 예전만큼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개개인들을 이 성적대상화의 객관적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이 성적 대상화의 범주를 넘어설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이 문제는 중요한 문제임은 틀림이 없다. 사람들에게 자각되고 인지되어야 하는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절대적 시각으로 재단하는 방법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그 방식으로만 문제를 풀려한다면 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는 것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다층적인 시각에서 풀어내야 하는 숙제가 남았다. 또한 1990년대 들어서 패션에서 남성의 성적 대상화를 마케팅적으로 활용하면서 이 문제가 비단 여성의 문제만으로 끝나지 않게 되었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대상화의 대립은 그런 면에서 복잡한 문제들을 갖고 있다. 얼마만큼을 허용할지, 허용하지 않을지의 문제를 정확하게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4. (성적)대상화가 함의하는 아이러니성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사회 문제의 여러 복잡한 일들이 이런 (성적)대상화를 통해서 미디어에 집중되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며 그것으로 상당히 많은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상적인 방법으로만 지속적으로 악한 존재들을 상대해왔다면, 과연 현실에서 이상이 살아남을 자리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분명히 위험성을 가진 대목이라 복잡한 생각이 든다. 여러모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다.
***English version will be written when it is ready. no dead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