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가을에...
가을에...
heroic123
이른 아침을 먹고 산책을 갔다.
어제 오후에 나들이를 하고 오느라 나가보지 못해서 궁금했다.
발걸음은 부지런히 뜰로 나섰다.
논들은 휑하니 다 강도짓 당하여 털린 듯 보였다.
멀리 한쪽 끝에 논 한배미에 벼가 그 개로 있고 콤바인도 서있다.
오늘이면 그것도 이슬 걷히면 바로 베어질 거 같았다.
한 시간 이상을 걸으며 지켜보아도 꿈쩍 않는다.
해가 떠서 한참 된지라 이슬도 어지간히 말랐을 거 같은데 벼를 수확하지 않는다.
그냥 갈까 생각하다 아니야 오늘이면 이거 그냥 다 없어질 거 같은데 그래도 벼베기를 하는 거 보고 가자며 주변을 마냥 배회하듯 걸으며 지켜봤다.
얼마 만에 콤바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까이 가 구경을 하며 아쉬움을 달래며 올 가을 모습을 남기려 사진도 찍었다.
이제 몇 번만 빙빙 돌며 왔다 갔다 하면 머리를 삭발하듯 논도 그렇게 삭발되어 버릴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벼 이삭 몇 개를 주어 왔다.
그리고 가지런히 해서 고무줄로 묶었다.
벼이삭과 주어온 실한 알밤 하나를 가지고 어머니 옆으로 갔다.
“이게 벼예요, 만져보세요. 벼 베기가 다 끝나가네요.”
그리고 “이건 알밤,” 하면서 어머니 손에 쥐어 드렸다.
가을이 농익어 지나가도 가을을 느끼기 어려운 어머니다.
이제는 바깥출입도 못하시고 보는 것도 잘 못 보신다.
보시는 게 그냥 흐릿하게 보인다고 하신다.
그러나 벼를 보시면서 “내가 보기에는 아직 잎새가 파랗다”고 말씀하신다.
어머니의 그 말씀이 반갑게 들려온다.
사실 벼 잎새는 살짝 파랗다.
예전에는 벼를 베어 논에서 말리고 뒤집고 모아 묶어서 마당으로 끌어들여 산처럼 쌓아 놓고 동네잔치 벌여 가며 타작이란 걸 했다.
그래야 잘 털리고 타작 후에 벼를 말리는 수고를 덜 수 있어 그리 했다.
그러나 요즘은 벼가 옛날 기준으로 보면 살짝 이른 수확을 한다.
그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수확하는 과정에서 허실을 막는 게 첫 번째다.
두 번째는 건조기가 도입되어 적당한 함수율이 되도록 건조를 하여 너무 물러지거나 말라 도정 과정에서 생기는 싸라기를 줄이며 밥맛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예전에 벼 수확 시기보다는 한 주일에서 보름 정도는 빨라진 것이 아닌가 싶고, 더 심한 말로는 예전에는 얼음이 언 논에 가서 벼도 베었고 베어서 깔아놓은 벼가 눈을 맞아서 눈이 녹은 다음에 뒤집어 말리기도 했다.
그런 걸 모두 알고 계신 어머니는 감사하게도 내가 오늘 가져다 드린 벼이삭의 잎이 살짝 푸른 기운이 도는 걸 보신 것이다.
어머니가 올 가을을 느끼시며 웃으시니 좋았다.
봄에 모내기도 보았고 여름내 자라는 벼도 보았다.
이제 가을이 영글어 벼를 수확하는 것도 보았다.
그렇지만 예전처럼 논두렁에서 참을 먹거나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막걸리 한잔 대접하는 그런 모습은 영영 없어졌다.
모내기도 그렇고 벼베기도 도깨비 장난과 다를 바 없이 변하며 그런 아름다운 그림자는 안 보인다.
그래 그런지, 모내기도 뚝딱 벼 베기도 뚝딱, 세월도 그렇게 뚝딱 가버리는 것 같다.
다행인 건 어느 날 갑자기 벼가 사라져 휑해진 논을 바라보며 강도짓 당한 것 같은 마음에 애통해하는 것이 아닌 이렇게 벼 베는 모습을 보니 한편 마음이 안정되기는 한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니, 수확하는 농부의 풍성한 마음을 응원하는 게 나의 가을이지 생각하며 덕분에 봄, 여름, 가을이 행복했다고 이 가을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감사합니다.
2024년 9월 28일
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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