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2권(13)

in #avle3 months ago

제2항 전투경과의 개요(부도 제8 참조)

(一) 포천지구 전투

6월 25일 03:00 적 제3사단의 주력은 40대의 전차부대를 선두로 유력한 포 지원하에 양문리에 배치된 아 제9연대 제2대대 제1중대를 일축(一蹴), 03:30경 적은 동지점을 완전히 점령 동 중대로 하여금 만세교리 서방 진지로 이동케 하였다. 가양리의 제2대대 제2중대는 04:00 적 일부 병력의 침공을 받아 후퇴하고 있었다. 일방 적 대거 침입의 급보에 접한 금오리 아 제9연대 본부에서는 09:00 포천 제2대대의 잔여 병력과 금오리의 제1대대 및 제3대대를 급거 만세교리로 출동시켰으나, 적은 이미 만세교리를 점령, 계속 남하 중이므로 연대는 전 병력을 탄장(炭場) 일대에 배치하여 적의 진공을 저지케 하였다.

이에 앞서 적 전차의 전진을 저지하기 위하여 포천으로부터 급거 출동한 제9연대 대전차포 중대는 만세교리를 향하여 진출 중 탄장 북각에서 적 전차의 급습을 받아 후퇴하는 등의 혼란이 야기되었다. 제9연대는 전 병력을 동원하여 적의 전진을 저지하려 하였으나 적의 맹렬한 포화는 아 군의 화력을 제압하고 적 전차 2대가 탄장 전면 1킬로 지점까지 출현하였다. 아 군 대전차포 중대는 포탄 결핍으로 기능을 상실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또한 적의 일부 병력으로 강력한 포 지원하에 가양리를 점령, 자단리(紫葮里) 남방을 우회하여 아군 주력을 포위하려 하였으므로 아군은 전력을 다하여 진격하여 오는 적과 접촉을 계속하면서 경원가도 부근의 고지능선을 이용하여 후퇴하였으나 이때는 이미 도로 서측 고지를 이용, 남하하는 적이 아군 주력의 저항을 제거하며 전진, 일부는 포천에 이르는 아군의 퇴로를 차단하였으므로 아군은 부득이 대열을 정리할 여유조차 없이 분산되어 부근 고지를 이용 서울로 후퇴를 개시하였다. 한편 일부 포천에 집결된 아군 병력은 송우리(松隅里)에서 증원된 포병학교의 1개 중대와 합세하여 적침에 대항하려 하였으나 결국 이루지 못하고 11:30 포천은 완전히 적 수중에 들어가세 되었다.

16:00 육군 작명 제85호(부록 제12 참조)에 의거 수도경비사령부로부터 제7사단에 배속된 제3연대가 송우리 남방에 도착, 배속 중이던 제9연대의 잔여 병력 및 포병학교 1개 중대와 합세 진지를 강화, 남하하는 적 전차를 공격하여 적 주력의 침공을 저지하려 하였으나, 미약한 아군의 대전차 장비로서는 적 전차의 파괴는 불능하였을뿐더러 도리어 적의 강력한 집중 포화로 인하여 아군은 고전에 빠졌다. 17:00 적은 송우리를 점령, 남하를 계속 21:00 우측배 고지로부터의 적 보병의 공격으로 아군은 전선을 정비하면서 22:00 의정부로 후퇴를 개시하였다.

(二) 동두천 지구 전투(부도 제9 참조)

적은 포천지구에 침공한 적 제3사단의 후방 제대인 제4사단으로서 제3사단의 우익을 저지하여 04:00 동두천 지구로 침공을 개시하였다.

전차 30대를 선두로 한 적 제4사단의 주력은 06:00 초성(哨城)의 아 전초부대를 격파하고 계속 남진하였으며 일부 유력한 부대는 전차 10대를 선두로 화방촌(花房村) 선양원리(先兩遠里)를 연하는 산간도로로 전진하여 하봉암리(下鳳岩里) 부근에 출현하였다. 이에 앞서 아군은 삼리에 주둔하고 있었던 제1연대의 대전차포 중대를 즉시 상봉암리(上鳳岩里)에 급파하여 양 고지 간의 산간도로에 배치하였던 바 적 전차의 출현에 일제 집중사격을 가한 결과 그 중 8대를 격파하였음에 적의 잔여 전차는 일단 후퇴하였다. 그러나 적은 재차 공격을 개시, 주력은 아군이 진지를 구축 중이던 마우산을 우회하여 왔으므로 아군은 즉시 삼리에 배치하고 있던 제1연대 제3대대의 제9, 제10중대를 급파하여 마우산(磨又山)과 소요산(逍遙山) 양 고지의 방비를 우선 강화하고 잔여병력으로 경원가도와 경원선 철로의 양측 고지 간의 협곡을 확보하려고 기도하였다.

이 일대는 비교적 자연적 장애물이 많은 지대이며 더구나 적은 봉암리 부근에서 다수의 전차가 파괴되었고 또 이 협곡 좌우 양 고지에 있는 아군의 완강한 저항이 있었으므로 포천지구에 비하여 적의 진격을 장시간 저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적은 소요산을 우회, 아군을 포위하려고 기도, 재차 동두천을 배후에서 포위 공격하기 위하여 금동리로 진출한 부대가 능동으로 전진하여 왔으므로 아군은 즉시 예비 병력으로서 능동 방면을 우회 남진한 적 부대를 요격(邀擊)하여 이를 격퇴하고 계속 진지를 확보하였다. 한편 서측의 적 부대는 화방촌, 양원리를 경유, 남진하여 극력 진지를 확보하려고 하였으나 드디어 돌파되어 마우산의 아군은 완전히 적의 포위에 함입(陷入)하였다.

15:00 적은 우세한 포 지원하에 소요산 자락 일대에서 아군과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었는데 아군은 탄약 보급이 중단되어 일방적인 적 포화에 제압을 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두천을 정면으로 압박하여 오는 적 전차에 의하여 부득이 15:30 동두천을 포기, 삼리로 후퇴를 개시하였다. 한편 마우산, 소요산의 좌우 양 고지의 아군도 또한 적의 포위망을 돌파 지연전을 감행하면서 삼리선에 후퇴하여 남진하는 적의 진출을 저지하고자 도요산(道樂山) 북 자락에 급속히 진지를 구축, 야간에 이르러 방어전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포천지구 송우리 부근에 있던 적 포진지로부터의 포격과 도요산 서쪽 자락을 우회하여 온 적의 공격으로 인하여 21:00 또다시 삼리선을 포기, 의정부선으로 후퇴를 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