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지금의 나이키를 만들어낸 3가지

in #business7 years ago (edited)

첫번째 브랜드 나이키 공를 해보겠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꾸준히 기록할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할수 있는 대까지 해봐야죠.

나 누구랑 이야기하는지...에헴.

나이키: 위대한 브랜드를 만들게 한 3가 필수요소


미친생각으로 시작된 배낭여행, 일본 오니츠카 신발 판매권을 따오다!

기업가 정신의 첫번째가 아닐까 싶다. 바로 ‘실행력' ‘들판의 백합을 보라, 그들은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슈독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구절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합리적인 판단을 할수 없기 때문에 가끔은 그냥 저질러야 할때도 있나봅니다. 들판의 백합도 자라듯, 저질러도 살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오리곤에 살았던 필은 스탠포드 MBA재학 시절, 수업과제로 신발 산업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육상선수 출신으로써 신발에 관심이 많았던 필은 일본의 러닝화가 미국 시장을 장악할것이라고 예측하고, 본인이 일본 러닝화를 수입해서 사업을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필은 이를 ‘미친생각'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설득해 여행비를 지원받고, 회사설립을 위해 무작정 배낭여행을 떠납니다.  하와이,일본, 홍콩, 필리핀, 방콕, 베트남, 인도, 케냐, 이집트, 예루살렘, 이스탄불,로마, 베니스, 파리, 뮌헨, 빈, 런던, 그리고 그리스에서 승리nike를 전해주는 아테나 여신을 보고 다시 오리건으로 돌아옵니다. 이때가 1962년인데..세계여행이라니..이때부터 필은 남다릅니다. 필의 아버지는 ‘오리건 저널' 발행인이었다고 합니다. 금수저까진 아니지만 은수저정도의 가정이었다고..

배낭여행당시 무작정 일본의 오니츠카 타이거를 방문에 오니츠카 타이거의 미국 판매권을 따냅니다. 필의 실행력이 발휘되는 순간인듯.. 당시 필은 사업체도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일본의 오니츠카 타이거를 찾아가서 미팅 중에 블루리본이라는 사업체를 만들어 버린것이죠. 여기서 필의 실행력을 보고 놀라지 않을수가 없습니다.블루리본을 통해 일본의 뛰어난 기능성 신발을 수입해서 미국에서 판매합니다. 배낭여행을 마치고 오리건으로 돌아가 필은 육상선수시절을 함께 하던 빌바우먼 코치에게 찾아갑니다. 빌에게 일본에서 온 신발 샘플을 보여주고, 그와 함께 자본금 각 50달러씩 출자해 100달러로 블루리본 사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렇게 나이키 브랜드의 긴 여정이 시작됩니다.

버트페이스, 팀문화가 브랜드로 표출

기업 성장의 가장 중요한 부분중에 하나인것 같습니다. 좋은 파트너와 좋은 팀구성은 무엇보다 중요. Company는 Com(함께)+ Pany(빵) 의 조합어다. companion 에서 시작된 단어로 one who eats bread [pane] with you 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밥을 합께 먹는다' 우리말 식구와 같은것이죠. 한마음으로 같이 기나긴 여정을 함께 할 식구가 중요하다는 것인가 봅니다. 


버트페이스는 나이키의 핵심멤버들 헤이즈, 스트라세, 우델, 존슨이 하는 회의를 말합니다. 일종의 친목모임이자, 나이키 핵심의제를 다루는 나이키 의사결정자들의 모임이죠. 이들은 이 모임에서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고, 이후에 올빼미 둥지라고 부르는 술집에 가서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이 모임에서 나이키의 정신, 미션, 기질이 만들어졌다고 할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야단법석을 떨고 온갖 기행을 다 저지르고 신체적으로도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나는 우리가 막강한 팀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1호 직원인 제프 존슨의 역할을 주목할만합니다. 필과 스탠포드 MBA시절에 알게 된 제프. 제프 역시 육상선수였습니다. 필과 우연히 로스엔젤레스 육상경기자에서 만나  나이키에 합류하게 됩니다. 그는 당시 동부지역에서 블루리본의 판매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많은 고객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줌으로써 블루리본이  나이키 브랜드를 선보였을때 영업맨들의 지지를 얻습니다. ‘우리는 블루리본과 수년간 함께 일해왔습니다. 우리는 블루리본 사람들이 진실만을 말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곳에서는 허튼소리를 하지만, 블루리본은 항상 정직합니다. 블루리본이 이번 신제품, 나이키에 기대를 걸었다면, 우리는 그 결정을 믿습니다.’
이래서 인사가 만사라고..존슨은 동부에서 블루리본 판매 당시 그 지역 고객들과 편지를 주고 받으며성실하게 판매를 담당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 성실이 사람들을 감동시켜 나이키에 대한 신뢰를 만들게 됩니다.부지런히 일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반성의 시간을 가져봅니다.

 

나이키 1호 직원 제프존슨..존잘..


필수 요소는 아니지만..브랜드 디자인의 탄생 이야기도 있습니다.

블루리본은 오니츠카에게서 독립을 준비해야했습니다.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야 할 시점에 필은 ‘디멘션식스'라는 브랜드명을 떠올립니다. 팀원 모두가 디멘션식스는 반대했다고 합니다..필이 브랜드 네임을 결정해야 하기 바로 직전 존슨은 자기 꿈에 이름이 나왔다며 제안합니다. 여기서도 존슨 존재감.. 그가 제안한 이름이 NIKE입니다. 필은 ‘K’가 들어가서 센소리가 나면 오래 기억될거란 생각에 좋았고, ‘승리의 여신' 이라는 의미가 있어 그 이름을 택합니다. 찰나에 브랜드 이름을 결정해버리는 놀라운 순발력을 발휘합니다.
또한 로고를 제작해야할 시점, 포틀랜드주립대학교에서 시간강사를 하던 시절에 만난 젊은 화가 캐럴린 데이빗슨에게 필은 로고를 맡깁니다. 동적인 느낌이 나는 로고를 주문했고, 캐럴린은 2번째 시안제안에서 ‘스우시'를 만들어 냅니다. 당시 필은 그녀에게 35달러를 디자인비용으로 지불했다고 합니다. 훗날 1983년 필은 캐럴린에게 금으로 만든 스우시 반지와 함께 나이키 주식을 선물로 줬다고 하네요.나이키 로고가 이렇게 탄생했을거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몇개 디자인 회사에 제안을 받고 수십번의 회의와 투표를 통해 로고를 정했을거라 생각했지만,정작 필은 브랜드 디자인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나이키라는 브랜드 정신을 만드는데 모든것을 쏟아부었던것 같습니다. 


나이키 첫 로고 시안 


영혼과 진정성, 가장 담기 어려운

꽤 오래전부터 브랜드에 대한 개념을 잡을때 꼭 등장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영혼. 가장 실행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나 위대한 기업을 만들수 없는것인가 봅니다. 브랜드의 영혼은 창업자와 창립멤버들이 만듭니다. 필과 나이키이 창립멤버 대부분은 육상선수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운동선수 DNA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지금의 나이키 생명력의 씨앗이라고 생각합니다. 


필나이트는 슈독에서 말합니다. 본인은 한번도 돈을 위해 사업을 한 적은 없다고.‘어떤 이는 사업의 목적은 이윤추구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이 피를 만드는데만 있지 않듯, 사업의 목적이 돈을 버는데만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략...모든 위대한 기업들이 그랬듯, 우리도 창의성을 발휘해 세상에 기여하고 싶고, 이런 포부를 크게 외치고 싶었다.’


결론 

창업자의 실행력과 그 과정에서 만나는 좋은 팀, 행운, 누군가를 위해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혹은 대의. 이런것들이 지금의 나이키를 만든것 같습니다. 특히나 나이키 창립멤버는 대부분이 오리건의 육상선수출신들이라는점도 나이키의 정신을 만드는데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도 눈여겨 봐야할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자리잡고 있는 영역에서 사업을 시작하는게 성공확률이 높지 않나 싶습니다.
글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다음부턴 짧고 굵게 ! 스팀은 글쓰고, 수정하기가 좀 어렵군요..

다음 브랜드는 블루보틀. 공부한번 해보겠습니다. 블루보틀 또한 일본에 영향을 받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