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수필]대수롭지 않지만 어려운 인사들

in #busy6 years ago

몇 년 전에 번듯한 직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있는데, 그때 은근히 난해했던 것은 다름아닌 ‘월요일의 인사’였다. 아니, 대체 월요일에 하는 인사가 뭐 어떻다고 난해하단 말인가? 운동장에 집합한 뒤 회장님 훈화 말씀을 듣고 구령대에 올라가 한 명씩 개인기라도 선보였단 말인가? 물론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내가 난해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월요일에 다시 만난 동료들, 사원들이 하는 인사에 답하는 것이었다.

“주말에 뭐하셨어요?”

그중 유독 어려웠던 것은 바로 이 인사다. 대단한 뜻이 숨겨져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렇지 않은 사교 멘트인데 나는 매주 여기에 대답하는 것이 적잖이 스트레스였다. 질문하는 상대가 싫었던 것은 아니다. 단순히 당시 내가 주말을 보내는 방법이 아무래도 비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주말이면 동아리방에 놀러 가서 사람들과 보드게임을 하고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며 놀거나 소설, 수필을 쓰곤 했는데, 이것을 그대로 말했다간 상당히 복잡한 설명을 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의아하게 여길 요소가 좀 많지 않은가? 주말에 굳이 학교까지 가서 노는 이유가 무엇인지, 무슨 게임을 하고 무엇을 보는지, 이런 질문이 나올 확률이 높았다. 게다가 소설이나 수필을 쓰고 있다는 말까지 하면 어떤 글을 썼는지, 출판은 됐는지 하는 질문들까지 아주 나오게 된다. 딱히 사람들이 남의 사생활에 쓸데없이 관심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정도로 흔치만은 않은 경우라면 대강이라도 물어보는 것이 예의가 되기 때문이다. 주말에 뭐 했냐는 질문에 ‘여행 갔다 왔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는데 ‘아, 그래요?’ 하고 흘려 넘기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때는 매주 월요일 출근길에 ‘이번주는 뭘 했다고 말해야 한담’ 하고 그럴싸한 여가 일정을 만들어내곤 했다. 주말마다 악당들과 전쟁을 벌이는 슈퍼히어로라도 된 것처럼 나의 진짜 여가는 숨기고, 딱히 튀지 않는 평범한 사람의 일상이면서 너무 천편일률적이라 귀찮아하는 듯한 대답으로 들리지 않을 만한 답을 짜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역시 다들 딱히 내가 주말에 뭘 했는지 궁금해서 견디지 못한 나머지 벼르고 별러 질문한 게 아니니까, 적당히 집에서 영화 보고 쉬었다고 해도 상관 없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그렇게 아무래도 상관없는 질문이라면 아예 생략하는 게 피차 깔끔한 게 아닌가 싶지만.......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하는 인사인데 내가 그 용도에 영 적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식사 하셨어요?’도 있다. 30년이 넘도록 한국에서만 살았는데, 밥을 먹었냐는 질문으로 인사를 대신하는 한국 풍습에는 아직도 적응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적응하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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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의 해석 문제는 보통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날 때 일어나지만, 같은 사회에서도 여러 문화권이 존재한다)

물론 식사에 대한 질문은 그냥 ‘안녕하세요’ 하는 인사보다 더 부드럽고, 뒤가 열려있어서 썩 유용하다. 무엇을 먹었는지 가볍게 대화할 수도 있고, 새로 생긴 식당에 대해 얘기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같이 식사를 하러 간다는 선택지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뒤가 열려 있기 때문에 종종 무엇을 예상하고 받아야 할지 난해할 때가 있다. 회전 방향을 알 수 없는 탁구공을 받아치는 기분이랄까. 친한 사람이라면 대체로 상관없지만, 그다지 친하지 않거나 딱히 친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 그렇게 인사하면 마음속으로 일종의 대비 같은 것을 해야 한다. 대비를 한다고 해도 대단한 답변 리스트 따위를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것을 하지 않는다고 심각한 낭패를 겪는 것도 아니지만, 발화의 해석과 진행 방향 때문에 아무래도 한 순간 마음을 쓰게 된다. 아니, 그러고 보니 대답을 잘못했다가 별로 식사를 같이 하고 싶지 않은 사람과 밥을 같이 먹은 적은 몇 번 있는 것 같은데...... 아무튼 식사를 했느냐는 인사는 정말 난해하기 짝이 없다. 심지어 요즘도 10시쯤 집에 돌아왔을 때 부모님께 밥은 먹었냐는 질문을 듣곤 하는데, 여전히 그 질문의 명확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엄밀히 인사라고 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누가 재채기를 하면 ‘Bless you’라고 말해주는 문화가 영미권에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지? 나는 전혀 모르고 있다가 미국에서 오래 살고 온 친구가 동아리에 들어온 뒤로 알게 되었다. 그 기원을 찾아보니 흑사병이 유행하던 시기에 시작되었다는 설, 재채기를 영혼이 빠져나간다고 믿었기 때문에 시작되었다는 설 등등이 있는데, 아무튼 재채기에 아무런 감흥이 없는 한국인으로서는 신기한 풍습이다. 그런데 재채기란 보통 그냥 모른 척해줬으면 하는 행위인데 굳이 옆에서 축복한다고 말을 걸면 아무래도 민망하지 않을까? 비슷하게 내가 실수로 방귀를 뀔 때마다 옆에서 속이 빨리 편해지길 바란다고 빌어주면 결코 고맙지만은 않을 것 같다.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실제로 현지인 중에서도 이 문화를 꺼리는 사람들이 없지 않은 모양이다. 어딜 가나 관습적인 인사에 쓸데없는 의문을 품는 사람들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인사들을 아예 다 없애버리면 그건 그것대로 또 영화 ‘이퀼리브리엄’처럼 입맛이 달아날 정도로 오로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기만 한 사회가 되겠지만...... 아무튼 언어와 문화란 복잡하기 짝이 없다.

여담으로 ‘Bless you’는 한국에서는 ‘감기 조심해’로 번역되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다. 나야 일어 전공이니까 일로 접할 일이 없긴 한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블레스 유’와 ‘감기 조심해’ 사이에는 다소 무게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블레스 유’가 비교적 별뜻 없이 습관적으로 흘러가는 말인데 비해 ‘감기 조심해’는 진짜 걱정이 담긴 말에 더 가깝지 않을까? 아니, 애초에 한국에서는 재채기와 감기 사이에 밀접한 관련성을 두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 말은 다소 문어체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젠장’이 존재하는 욕이지만 현실 세계에서 사용되지 않는 것처럼. 나야 이런 문어체를 아주 좋아하니까 나올 때마다 실실 웃는데, ‘강의실에서 누군가 재채기를 해서 열댓 명은 되는 사람들이 동시에 Bless you라고 말해주는 장면’ 같은 것을 번역하는 사람은 골머리가 썩을 것 같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 사이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축복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