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학과 진화생물학의 역사 1-1 : 생명다양성과 종 문제, 다윈이전

in #darwin7 years ago (edited)

오래 전부터 저는 저의 지적 조상을 찾고 그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어떤 일 때문에 더 이상 이 일을 미룰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우리는 보통 교과서로 공부합니다. 그런데 교과서의 세련된 설명방식은 치명적인 약점을 하나 품고 있습니다. 어떤 이론을 발견한 과학자가 어쩌다가 그 이론에 이르게 되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갈루아는 5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찾다가 Galois Theory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현대대수학을 공부할 때는 Galois Theory를 먼저 배운 후 그에 따른 따름 정리로서 5차방정식 문제를 다룹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과정을 거쳐 Galois Theory를 얻게 됐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는 문제가 생깁니다 (Galois Theory -> 5차방정식 근의 공식 문제라는 흐름은 실제로 Artin의 Algebra 이후에 채택된 구성입니다).

이는 실제 연구를 시작하는 입장에서 많은 혼란을 가져옵니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내용들은 엄청나게 세련되고 정리가 잘 되어있는데 나도 처음부터 저런 이론을 고안해야하는가? 라는 고민이 드는 거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 머리로는 그런 세련되고 아름다운 내용을 처음부터 떠올리는 건 불가능해보입니다. 그러면 저걸 떠올린 사람은 정말로 처음부터 저걸 다 알았던 걸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과서처럼 할 수 없는 건, 물론 우리가 천재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아무도 교과서의 논리대로 새로운 발견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과서의 세련된 흐름은 그 이론들이 발견되고 충분한 시간이 흘러 우리가 그 이론들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된 후에 나타난 것입니다. 따라서 과학이론이 탄생한 과정을 알고 내 연구에 참고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과학자들이 어떤 동기로부터 출발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에서는 이 문헌 저 문헌을 뒤지면서 제가 공부하고 있는 유전학의 이론들이 어디서 출발하는 것인지, 그 과학자들이 무엇을 보고 그런 생각을 떠올렸는지 한 번 알아보려고 합니다. 갈루아는 5차방정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Galois Theory를 고안했고, de Rham은 미적분학에서 출발하는 미분방정식을 쳐다보다가 Cohomology를 떠올렸죠. Galois Theory도 Cohomology도 추상적이고 어렵기 그지 없는 것들이지만 그들이 이 이론들을 떠올렸던 실제 예시들을 쳐다보면 왜 이런 이론들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습니다. 교과서는 멋진 이론을 먼저 소개하고 구체적인 예시들을 제시하지만 실제 역사는 구체적인 예시로부터 멋진 이론을 떠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됐죠. 그렇다면 우리의 조상 다윈은 대체 왜 진화, 나아가서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을 떠올렸던 것일까요? 오늘은 위대한 분류철학자이자 과학사가인 David Hull의 명저, "Science as a Process" (1988)을 읽으며 그에 대한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여담인데, 이 분은 본인 스스로 게이인 동시에 학계의 성소수자/젠더 문제 해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던 실천적인 지식인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윈이 진화를 떠올리게 된 가장 큰 동기는 다름 아닌 종 문제(Species Problem) 였습니다.

1831년, 여러 어려움 끝에 비글호가 마침내 출항했을 때 다윈은 이미 마음 속에 한 가지 의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종 문제(Species Problem) 라는 것이었습니다. 종 문제란 '자연계에 존재하는 생명다양성을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가리킵니다. 이 문제는 이미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시대 때부터 아주 중.요.한. 문제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의 사다리(Ladder of Beings)라는 개념을 이용해 생명다양성을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그림 1. 존재의 사다리. 자연계에 존재하는 위계 최상부에는 인간이, 최하부에는 식물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존재의 사다리에 따르면, 자연계에는 특정 형태의 유형(Type)들이 존재하며 각 유형 사이에는 위계가 있어서 위 그림과 같이 나열할 수 있습니다. 그 위계 최상부에는 인간이 위치하며 최하부에는 해면이나 식물같은 직관적으로 보기에 별 거 없는(?) 생물들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유형은 고정불변하는 것이며 한 유형이 다른 유형으로 바뀌는 일 역시 일어나지 않습니다. 당연히 이러한 설명에는 '진화' 라는 현상은 존재하지 않았죠. 특히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고정불변의 유형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물리법칙이 전자(electron)가 존재한다고 얘기하는 것처럼 인간이라는 종의 형태가 선험적으로 존재한다고 본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를 유형론(Idealism)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더욱 더 주목해야할 사실은, 놀랍게도, 유형론 그 자체는 진화론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럼 뒤이어 그 사례들에 대해 하나씩 알아봅시다.

칼 린네(Carl von Linné) 역시 종 문제 해결에 뛰어들었던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린네식 분류체계로 유명하죠.



그림 2. 칼 폰 린네(1707-1778)의 초상

린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했던 유형론을 죽을 때까지 지지했던 사람이었으나 원시적인 형태의 진화를 주장했다는 점에서 조금 달랐습니다. 린네는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신이 식물을 만들 때 여러 종류의 씨앗을 만들었으며 (요즘으로 보면 정자와 난자와 비슷한 개념) 그 씨앗들이 서로 다른 경우의 수로 조합된 것이 지금 우리가 보는 다양한 식물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럼 이 주장이 왜 유형론과 진화를 동시에 내포하는지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씨앗의 종류가 최초에 신에 의해 정해졌고, 이것들이 유한 번 조합되어 다양한 종이 나타나므로 이미 존재할 수 있는 식물의 종류는 이들의 조합에 의해 이미 선험적으로 정해져있습니다. 따라서 유형론을 내포하며, 동시에 세대가 바뀜에 따라 새로운 조합의 식물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진화 역시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류의 주장은 린네 이후에도 여러 자연 철학자들에 의해 반복됩니다.

그런 점에서 용불용설로 유명한 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라마르크의 이론에 따르면 개별 개체가 유형 A에서 유형 B로 건너뛸 수는 있으나 하나의 유형이 변형되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했습니다. 즉, 불변하는 유형이라는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 때와 똑같았던 것입니다. 아래 그림에서 나타난 그의 '고정불변하는' 분류체계는 이를 잘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림 3. <동물철학>(1809)에 제시된 라마르크의 분류체계

이 외에도 리처드 오웬(Richard Owen), 조르주 퀴비에(Georges Cuvier) 등의 당시 저명했던 자연 철학자들 역시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진화를 인정하면서도 유형론만큼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유형론을 최초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부정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너무 뻔한 질문인가... 바로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었습니다. 그러면 다음 글에서는 다윈의 진화론과 그를 둘러싼 정치지형에 대해 면밀히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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