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학과 진화생물학의 역사 1-2 : 생명다양성과 종 문제, 다윈 그리고 양적사고

in #darwin7 years ago (edited)

이전 글: https://steemit.com/darwin/@hanbin973/1-1

이전 글에서는 '종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다윈 이전의 학자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봤었습니다. 드디어 오늘, 우리의 주인공인 다윈이 어떤 식으로 종 문제를 해결했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그림 1.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초상

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제가 이 글에서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지 한 번 더 말씀드리고 가겠습니다. 진화론, 구체적으로는 자연선택을 주장함으로써 유명해진 다윈은 대체 어떤 이유로 진화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요? 저는 다윈이 진화론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던 그 이유를 말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진화는 (적어도 그 당시에는) 눈으로 직접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윈은 눈으로 진화를 직접 목격하고 그것을 떠올린 건 아닐 겁니다. 다윈으로 하여금 진화를 생각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던 '눈에 보이는' 문제는 바로 종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종 문제라는 것은 이미 2천년 전, 아리스토텔레스 시대 때부터 인간이 눈으로 관찰해 온 생명계의 다양성이었습니다.

이전 글에서 살펴보았듯이 다윈 이전의 학자들은 유형론(Idealism)을 믿어왔습니다. 즉, 생명이 가지는 형태는 이미 선험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각 개체로부터 채취한 시료를 바탕으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형태적 특징을 발굴하는데 몰두했습니다. 그리고 그 관찰을 통해 얻은 해당 개체의 특징을 바탕으로 그 개체가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 알아내려고 했습니다. 문제는, 같은 생물이라고 하더라도 각 학자들이 서로 다른 기관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았고 때문에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단히 비슷해보이는 개체라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상당한 수준의 변이(Variation)가 있다는 것을 관찰합니다. 때로는 이 변이가 너무 커서 서로 다른 두 종(Species)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기도 했죠.

비글호 위에서 긴 항해를 끝내고 돌아온 다윈도 이 문제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항해 중에 모은 수 많은 시료를 관찰한 그 역시 다른 학자들이 맞딱뜨렸던 문제들을 똑같이 마주하고 있었죠. 그의 관찰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 종 내 변이(Intraspecies Variation)가 종 간 변이(Interspecies Variation)보다 더 클 수도 있다' 였습니다. 한편, 다윈은 진화가 실제로 일어났었음을 강하게 확신하고 있었는데 바로 진화가 우리가 관찰하고 있는 생명다양성의 근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 다윈의 진화이론은 그 이전의 진화이론과 완전히 다른 무언가가 되고 맙니다.

다윈에 따르면 진화를 통해 종 문제에 접근하는 순간 우리를 가로막고 있던 문제들은 쉽게 해결됩니다. 다윈에 따르면 서로 다른 종은 엄밀히 말해서 서로 다른 형태적/생물학적 특징을 가진 집단들이 아니라 진화 역사 속에서 서로 다른 역사를 걸어온 집단을 말합니다. 밑의 그림을 바탕으로 설명하면 서로 다른 가지(Branch)에 해당하는 집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 가지가 서로 다른 가지로 갈라지는 일의 원인이 바로 진화라는 것이지요.



그림 2. 생물을 크게 3개의 역으로 나누고 있는 현대적인 계통도

그러면 '종 내 변이가 종 간 변이보다 큰' 상황은 전혀 이상할 게 없습니다. 서로 큰 차이가 있는 두 개체라고 하더라도 진화적으로 같은 역사를 밟아오기만 했다면 같은 종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동시에 서로 다른 두 종 사이의 경계가 희미한 것 역시 쉽게 설명됩니다. 진화가 충분히 느린 속도로 진행된다면 하나의 가지에서 갈라져 나오고 있는 두 종은 형태적으로는 상당히 비슷할테니까요. 반면 이전의 유형론적 종개념은 관찰된 현상을 설명하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왜냐하면 이상적인 유형(Idealistic Type)이 정해져 있다면 같은 종에 속하는 개체들은 큰 차이가 없어야하며 서로 다른 두 종은 서로 다른 유형이기 때문에 쉽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유형론을 견지하려던 시도들은 때문에 많은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영국 자연사 박물관에는 British Bramble(블랙베리가 여기에 속합니다) 시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유형론자는 이 시료들이 최소한 서로 다른 50가지 종으로부터 왔다고 주장했습니다. 유형론이 맞다면 두 개체의 차이가 조금이라도 다르다는 건 두 개체가 다른 종에 속한다는 뜻일테니까요. 그러다보니 새로운 시료가 들어올 때마다 수십 수백개의 새로운 종이 양산되고 있었습니다. 유형론은 어느샌가 이미 삐그덕거리고 있었던 셈이지요.

다윈의 주장은 결국 종이 어떤 유형(Type)이 아니라 계보(Lineage)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윈적 세계관에서는 진화의 위치 역시 이전과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미 종이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유형론적 사고에 입각하면 진화란 이미 존재하는 종 사이를 오고가는 일에 불과합니다. 반면, 다윈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진화는 종이라는 고정된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정적인 현상이 아니라 애초에 종을 만들어내는 원인으로서 작동하니까요. 라마르크, 린네 등을 떠올려 봅시다. 그들은 모두 진화가 이미 정해져 있는 종 사이를 오고가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윈은 거꾸로 진화가 서로 다른 종을 발생시키는 원인이라고 봤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윈과 다윈 이전의 학자들 그리고 다윈 진화론과 그 이전의 진화론을 구분짓는 핵심적인 요소였던 것입니다. 단순히 자연선택 때문이 아니라요.

그 시절 다윈과 맞붙었던 학자들을 보더라도 다윈이 공격받았던 가장 큰 이유가 자연선택이 아닌 유형론 부정이었다는 증거는 많이 있습니다. 퀴비에나 오웬 등은 모두 유형론자였으며(Hull, 1989) 심지어 다윈을 변호하며 다윈의 불독이라는 별명으로까지 불렸던 했던 토머스 헉슬리 역시 유형론자였습니다(Mayr, 2004).

한 가지 더 주목해야할 점은 다윈의 주장에 입각하면 진화가 개체 단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집단 단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된다는 점입니다. 진화론이 개별 개체가 어떤 유형에 속하냐 마냐를 다루는 학문이 아니라 아니라 같은 역사를 가진 '집단'이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추적하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즉, 진화가 개별 개체의 변화가 아니라 개체들이 모인 집단의 통계량이 변하는 현상이라는 것이죠. 이는 결국 Karl Pearson(상관계수의 그 피어슨이 맞습니다), Francis Galton 등이 원시적인 형태의 통계학을 발견하는 계기를 마련해줍니다. 그리고 1859년 <종의 기원>이 출판된지 60년 가량이 지난 시점에서 현대적인 통계학이 등장하게 되는 단초가 됩니다. 물론 Mayr 등에 따르면 다윈이 본인 이론이 양적 사고의 기반이 된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다윈이 명확한 유전이론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요.

아마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제가 궁극적으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눈치채신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 페이지를 쭉 봐오신 분들은 알겠지만 저는 수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양적 유전학/사회과학에 큰 관심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다윈주의에서 출발하여 집단유전학을 거쳐 유전체에 대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그게 바로 제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분야의 역사니까요. 다음 글에서 등장할 주인공들은 이미 다 정해진 것 같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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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상당히 깊이가 있는 길이네요! 학부시절에 관심있게 보았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ㅠㅠ 나중에 굴드 이야기도 나오나요?ㅎㅎ 기대하겠습니다~

ㅎㅎ 포스팅 잘 보았습니다. 참고로 태그 앞부분에 "kr-"을 추가시켜 주시면 한글 스티머들에게 접근성이 늘어납니다. (ex: kr-evolution kr-bio kr-science kr-history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