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일기] 한겨레 동료가 찾아와 내 페북에 악플을 달았다
2018년 6월5일 (화) 마약일기
곳곳에서 전화나 문자메시지가 온다. 어떤 것은 받겠고, 어떤 것은 못받겠다. 대학 동창에게 전화가 왔다. 이건 못받겠길래 안받았다. 전화를 안받으니 “재현아. 한번 놀러오너라.” 라는 짧은 문자메시지가 왔다. 강원도에 사는 녀석이다.
놀러오라고? 나를 위로하려는 건 알겠지만, 갑자기 화가 난다. 이 녀석은 하필이면 단어 선택을 왜 이렇게 했을까? 내가 지금 놀고싶은 마음이겠니? 친구의 고마운 관심이, 내 감정의 상태에 따라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가슴을 찌른다. 지난 한달 간 하도 많은 가시가 박혀서 이젠 꽂힐 자리도 없는 줄 알았는데.
역시 대학 때 알고 지내던 형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건 받을까말까 하다가 받았다. “지들이나 잘하라 그래.” 형은 화를 내주었다. 나와 관련한 뉴스에 달린 댓글을 보면서 화가 났다고 한다. 나는 무서워서 나와 관련한 뉴스를 일체 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어떤 댓글들이 달리고 있을지 대충 짐작이 된다.
“지들이나 잘 하라 그래. 남이사 마약을 하건 말건 무슨 상관이라고 그렇게 악플을 다냐?”
옳거니! 이건 위로가 된다. 그래. “힘내라”는 말보다 지금은 같이 화를 내주는 사람들이 더 힘이 된다. 내가 뭘 그렇게 잘 못했다고 나를 못죽여서 난리인가. 당신들은 살면서 한번도 실수 안하나?!!
POP(약물중독연구 모임)에서 나의 해고와 관련한 유감과 비판 성명서를 냈다. 한겨레에서 벌어지는 일은 우리 사회 진보의 고민과 궤를 같이 한다. 절대 허재현 개인의 문제로만 볼수는 없다고 이들은 판단했다고 한다. 국제 사회 인권 선진국들의 마약 정책과는 정반대의 결정을 한 한겨레에 적절한 쓴소리를 담았다.
좀 고민해보다가 내 페이스북에 적절한 심경을 담아 POP의 성명서 내용을 공유했다. 그리고 내 입장글을 덧붙였다.
“저의 엄격하지 못한 행동에 대한 반성과 속죄의 기간이어야 하기에 지금껏 아무런 말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저에 대한 사법적 판단과 죗값을 스스로 치른 뒤 모든 것을 자세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다만, 외부에서 인식된 것처럼 제가 기자의 본분을 잃고 일탈의 막장을 달리다가 입건된 것은 아니란 말씀만 오늘 드리겠습니다. 그간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와 조직내에서의 노동소외와 인간소외의 오랜 과정을 거치며 생긴 우울증을 제때 치유하지 못해 벌어진 일입니다. 제 경험을 통해 많은 약물 범죄 입건자들이 악마같은 별도의 존재들이 아니라 실제로는 ‘아픈 사람’들임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입건 순간부터 사회적으로 사형당한 느낌으로 살고 있습니다. 부끄럽게도 전 이전에 약물 범죄자의 인권 문제를 고민하는 이런 단체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사형수에게도 인권이란 게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일깨워준 POP에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낍니다. 더불어 한겨레 신문에도 황망할 정도로 죄송함을 표합니다. 속죄하고 반성하겠습니다.”
댓글이 달린다. 읽어서는 안되는데, 그래도 눈길이 간다.
“약쟁이가 말이 많다.”
욱하고 화가 난다. 잠시 심호흡을 한다. 대체 어떤 사라이 글을 남겼나 싶어 그의 페이스북을 타고 가보았다.
‘행동하는 양심. 타고난 저항 정신. 은근히 까다로운 캐발랄 40.5세.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 뛰어야 하니, 오늘은 걷고 내일 뛰자.’
그렇구나. ‘행동하는 양심을 갖고 있는 나보다 한 살 많은 어떤 분’은 ‘약쟁이는 말이 많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구나. 가슴이 아프다. 가슴의 시계가 멎는 것 같다. 아니, 그 말로도 부족하고, 가슴의 시계에 담겨진 부품 하나하나가 닳고 빠져서 몸 곳곳을 돌아다니며 할퀴는 것 같다.
우리 회사 동료로 보이는 어떤 사람의 비난 댓글도 달렸다. 나 때문에 회사가 얼마나 큰 피해를 보고 있는데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공유하느냐는 내용이다.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지만 알 수 없었다. 악플을 달려고 익명의 계정으로 만든 페이스북 계정인 듯 보였다.
그렇구나. 나를 비난하고 싶어 익명으로 페북 계정까지 만들어서 찾아 들어오는구나. 나도 회사에 미안한 마음이 큰데, 당신도 참 대단하다. 내가 무슨 회사를 원망하거나 복직 소송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아닌데. 꼭 이렇게 나를 찾아와 칼로 찌르고 가야겠나? 안그래도 길바닥에 쓰러져 숨만 겨우 쉬고 있는 사람한테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하지만 화가 나는 것도 잠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약쟁이가 말이 많으면 안되는 거지?’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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