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폴 발레리 - 드가.춤.데생steemCreated with Sketch.

in #edgardegas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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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를 선호하게 된 것은 그의 선과 시선이 제시하는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고집 때문이었다. 상냥함과 따뜻함을 미덕으로 보는 일반적 견해에서는, 그런 완고함이 으레 아둔함이나 부덕으로 오역되고, 그런 성격의 소유자는 쉽게 환영받지 못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들의 삶을 꾸준히 관찰하면 예상치 못하게 감동하는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들의 무뚝뚝함, 불친절함이 사실, 깨지기 쉬운 내적 수련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음을 알게 되고, 더 나아가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한 성과임을 발견할 때다. 이러한 사람들은 타협이 초래하는 위험성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그 위협에 몹시 예민하게 반응한다. 거친 말과 행동, 종종 수반되는 폭력은 이들을 기인이자 정신병자로 취급하도록 내몰고, 아이러니하게도 사후에 발견되는 성과는 그 기벽들이 하나의 신화 내지는 성공담처럼 여겨지도록 만든다. 어느 쪽도 이들을 이해하는 방법은 아니다.

‘춤’을 사랑하는 주제로 다루었던 드가가 실은 현실에서 괴팍하며 심지어 다소 난폭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나는 그 역시 오염되기 쉬운 것들을 순수하게 간직하기 위해 성나게 군 것이 아닌가 추측하게 된다.

이 책이 무척이나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이 꼭 드가를 좋아해서만은 아니다. 그를 부분적으로나마 진실하게 이해하던 작가 폴 발레리의 문장 역시 무척이나 정제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드가로서는 이러한 친구-비록 나이 차이는 클지라도-가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라고 여겨질 정도이다. 깊은 인식과 사유에서 나오는 글이 얼마나 과학적이며 동시에 감성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그의 평론은 예술가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리라 생각한다.

다만, 이미 고인이 되신 번역가 김현 선생님의 작업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다소 옛날에 이루어진 작업이다 보니 이해를 방해하는 번역체와 긴 문장이 많아 읽는 도중에 불편함이 컸다. 열화당 측에서 손 보았다고는 하나, 미진함이 진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금언처럼 남는 문장이 있어 붙인다.

“대단해요. 하지만 이 잎을 그리느라고 얼마나 한심해했을까요. ... 정말 지겨운 일이었을 거예요” 내가 말했다.

“조용히 있게.” 드가가 나에게 말했다. “지겹지 않다면, 즐겁지 않을 테니까.”

사실인즉 사람들은 이제는 이런 유의 근면성을 즐기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아주 나이브하게 단조로운 외양의 모든 작업, 혹은 오랫동안 되풀이되는 별로 다를 것 없는 동작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 모든 작업에 대한 사람들의 혐오가 커 가고 있는 것을 드러낸 것이었다. 기계는 인내를 압살했다.

정치, 경제, 삶의 방법, 오락 방법, 움직임의 방법이 문제될 때, 나는 현대성의 모습이 정신적 중독의 그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관찰한다. 우리로선 양을 늘리거나 다른 독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게 법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