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하면 쉽게 깨져요
단단하면 쉽게 깨져요
매사 줏대 없이 살았다. 상대를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조금 더 끌리고 조금 덜 끌리는 것을 몽땅 숨겨냈다. 인품은 오르고, 연락 오는 이는 늘었는데 정작 내가 그들을 만날 때마다 에너지가 소진됐다. 슬픔과 기쁨을 나누고 더하는 게 친구 관계라는데 어찌 된 게 카페에서 수다를 떠는 일마저 모두 나를 닦기 위한 일처럼 느껴졌으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이 정도까지는 어떻게 어떻게 모든 사람이 그럴 거라며 넘길 수 있어도, 낯선 이에게 웃음을 주고 상냥한 단어를 골라 건네는 작업은 내가 열과 성을 들이는 만큼 돌려받을 수 없었다. 세상은 좋은 쪽이든 아니든 살아남기로 결정한 사람이 모인 곳이라 한없는 친절함은 얕잡혔다.
마침 『미움받을 용기』가 여기저기서 흥하는 소식이 들렸고, 흥행에 질투 나 읽지는 않았지만 '이 책이 난리인 이유는 사람들이 나처럼 미움받기 싫어서 잘하고 다녀서 인가 봐'라는 생각을 했다. 그 후부터 미움받을 용기를 장착하고, 좋은 걸 구분하며 싫은 걸 짚어내는 오지랖 넓은 사람으로 변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말을 하려는 낌새를 눈치채면 당장 휴대폰을 꺼내 '저렇게는 되지 말자'라는 제목의 메모를 하며 딴짓을 했다. 친구가 싫어하는 행동을 열 번 이상 반복하면 장문의 메시지와 함께 절교를 권했다. 20대라면 대개 갑보다 을이 많은 현실, 미래를 위해 가시를 받으며 배려하는 친구들이 많아 자연스레 나는 이중 단단한 사람으로 우뚝 섰다.
어린이에게 못된 말을 하는 가게 주인을 만나면 나오자마자 온갖 아이디로 별점을 깎고, 자신은 다독하는 사람이라며 매사 책 내용을 운운하며 감정 조절 못 하는 사람을 만날 때면 울든 말든 그러지 마시라며 바른 소리를 했다. 못난 이와 대화해야 하는 친구를 만나면 무료로 독이 담긴 친절한 말을 대본에 적어 주었다. 어느덧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단단하고 튼튼한 사람이 되었다.
무릎이 절로 굽혀질 만큼 고된 상황에도 단단함은 아픔을 지탱했다. 감정적인 마음을 빨리 가라앉히고 도움이 될 해결법을 찾는 능력, 나도 힘들지만 상대를 위로할 수 있는 능력, 동생을 잃어도 털고 일주일 만에 회사에 복귀하는 능력. 그런데 말이다. 단단하다는 말을 들을수록 어깨는 올라가는데 왠지 모르게 가슴 안쪽이 깎이는 기분이었다.
저마다 가슴 안에 동그란 물체가 있다면 나는 반의 반의 반으로 깎인 기분이었다. 아마 커다란 부피를 깎고 깎아 더욱 단단하고 작게 만들어내서가 아닐까. 그 동그란 물체는 작은 대신 매우 무거워 가끔은 숨을 고르게 쉬는 법을 잊게 만들고는 한다.
존경하는 작가님과 세 시간가량 얘기를 나누었다. 작가님은 지나가는 말로 제목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요아 씨는 너무 단단해서 쉽게 깨질까 봐 그게 가장 걱정이에요." 예전 같으면 눈물을 펑펑 흘렸을 텐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았다. 대신 동그라미가 다시 깎이며 따끔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제야 동그라미의 존재를 깨우쳤다. 단단하다는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아픈 이유, 심장이 무거운 이유, 칭찬을 좋아하면서 막상 들으면 알 수 없이 찝찝한 이유.
이제는 슬슬 소신을 내려놓으려 한다. 동그라미가 다시 커질 수 있도록. 감정이 풍성해질 수 있도록. 아프면 소리 내어 마음껏 울 수 있도록. 기쁘면 소리 내어 마음껏 웃을 수 있도록.
단단하다는 말... 다들 잘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고 있네요.
글을 읽고 드는 느낌은 참 여리신 분이라는 생각입니다.
단단하다니 몰라도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죠^^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 많고,
제 말도 상처가 되실까 조심스럽지만
위로하고 위로받고, 토닥이고 사랑하고,
뭐 인생이 그러면서 살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슬슬 소신을 내려놓으려 하신다니 다행입니다.
너무 많은 고민을 너무 적은 고민보다 쬐끔 나빠요.
무료로 주셨다는 독이 담긴 친절한 말들이 참 궁금해지네요.
저도 주변에 못난 이들이 좀 있어서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