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kr-fiction_검은 고양이_1
“죽일 수 있어.”
“개소리 마.”
“죽이면 어쩔래?”
“만원 준다.”
“진짜?”
“어차피 못 죽여. 잡지도 못할 걸?”
우경은 친구들과 어울려 당구장이니 PC방이니 가서 시간을 보내다, 마지막으로 꼭 들리는 아지트가 있다. 우경이 사는 달동네 어귀의 작은 놀이터다. 늦은 시각에 오면 오가는 사람도 거의 없어 교복을 입은 채로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거나 해도 눈에 띄지 않았다. 어쩌다 지나치는 이가 있더라도 못 본 척할 뿐이다. 간혹 대담하게 본드를 부는 녀석도 있었는데 우경은 아직 본드에까지 손을 대진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놀이터에 나타나 꼬박꼬박 눈도장을 찍는 녀석이 있었다. 털빛이 새까만, 어느 한 군데 다른 빛깔을 찾아볼 수 없는 말 그대로 검은 고양이였다. 기름이라도 바른 듯 털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는 데다 사람을 보고도 그리 두려워하지 않고, 곧잘 다가오는 것이 아무래도 사람의 손을 탔던 녀석인 것 같았다. 아침마다 녀석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이 있다는 말도 있었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우경이 한창 미끄럼틀 아래서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데, 그 검은 고양이 녀석이 놀이터 뒤편에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유유자적 걸어 나왔다.
“깜짝이야!”
명철이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검은 고양이를 보곤 화들짝 놀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럴 만도 했다. 원체 털빛이 검다 보니 어둠 속에 있는 모습을 얼핏 보자면, 푸르스름한 불을 뿜는 한 쌍의 눈동자만 둥둥 떠다니는 듯 보이니 말이다. 우경이 뒤를 홱 돌아보더니 고양이를 발견하곤 킥킥대며 웃었다.
“븅신, 쫄았냐?”
뒤이어 발끈한 명철과 우경의 대화는 난잡한 욕설에 더해 의례 혈기왕성한 또래 소년들의 무모하고도 무익한 자존심과 명예 다툼으로 점화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대화의 끝은 어이없게도 우경이 과연 고양이를 죽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변질되기에 이르렀다.
우경은 고양이를 당장에 때려죽일 수 있다고 선언했다. 다시금 놀이터를 그들만의 것으로 오롯이 하겠다고 자신만만 선포했다. 명철은 우경이 고양이를 죽이지 못할 거라는데 만원을 걸었다.
우경은 술기운에 얼굴이 발그레 달아올라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뒤로 홱 돌아서 보니 검은 고양이가 그네 아래 앉아 털을 고르며 우경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죽일 테면 죽여보라는 듯, 여유로운 자태였다. 그 모습을 보자니 우경은 퍼뜩 겁이 났다. 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 뒤에서 명철이 우경의 다리를 툭 쳤다. 우경이 돌아보자 명철이 검은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본드 냄새가 확 올라왔다.
“시원하게 한 번 불고 가셩.”
우경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결심했다는 듯 비닐봉지를 확 잡아챘다. 입과 코를 봉지로 가리고, 힘차게 흡입했다.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은, 첫 경험이었다. 지독한 본드 냄새가 후각을 넘어 머릿속을 엉망으로 헤집어 놨다. 우경은 잠시 비틀거리는가 싶더니 비닐봉지를 신경질적으로 홱 내던졌다. 우경은 초점을 맞추려는 듯 눈을 몇 번인가 감았다 떴다. 몽롱한 가운데 시야가 왜곡되고 흔들렸다.
우경은 비틀비틀 검은 고양이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검은 고양이는 그대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우경이 짐짓 미소 지으며 검은 고양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리 온.......”
검은 고양이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다가와 손을 뻗는 우경을 향해 그르렁거리며 털을 바짝 세웠다. 우경의 입에서 새는 다정한 말투와 상반된 야릇한 살기를 읽은 것인지도 몰랐다. 우경이 검은 고양이의 사나운 기세에 잠시 멈칫했다.
“거봐 저 새끼 쫄았어.”
뒤에서 명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경은 욕지거릴 뱉더니 확 손을 뻗어 검은 고양이를 덥석 잡아 올렸다. “오오!” 친구들의 탄성이 들려왔다. 위기를 느낀 검은 고양이가 울부짖으며 몸부림을 치다 그만 우경의 손목을 할퀴었다. 피를 본 우경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이런 씨발년이!”
우경은 발버둥 치는 검은 고양이를 머리 위로 높게 들어 올리더니 그네 옆 벤치의 철제 팔걸이를 향해 내동댕이쳤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짐승의 단말마가 끔찍하게 공기를 찢어발기며 울려 퍼졌다.
바닥에 굴러 떨어져 납작하게 눌어붙은 새까만 타르처럼 보이는 그것은 아직 살아있었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갸르릉-신음을 내며 가쁘게 헐떡이고 있었다.
우경이 죽어가는 검은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뒤에서 명철이 “야 이제 그만해.” 라고 소리쳤다.
우경은 전혀 듣지 못하고 있었다. 우경은 더욱 기세를 올리는 본드의 작용에 더해 살의의 광기가 부른 환각에 잠식돼 있었다. 우경의 눈에는 분명히 보였다. 바닥에 늘어진 검은 고양이가 무슨 거북이처럼 기괴하게 고개를 빼어 쳐들더니 우경을 향해 울부짖었다. 차가운 한기가 우경의 척추를 훑었다. 환상이 부르는 극도의 공포에 쫓겨 더욱 광폭해진 우경은 검은 고양이에게 다가가 발을 쳐들었다.
쿵! 쿵! 쿵!
아직 남은 미약한 생명을 마저 짓밟기 위해 발을 구르는 둔탁한 소리가 밤의 놀이터에 울려 퍼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