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이 만든 헬싱키의 한 공중목욕탕

in #finlandsauna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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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와 일본은 꽤 많이 닮아 있다.

도쿄에서 헬싱키까지의 거리 7,572킬로미터, 비행기로 10시간 30분 가야 하는 먼 나라 핀란드. 아시아에서도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일본이 저 머나먼 북유럽 발트해 연안의 핀란드와 닮아 있다고 생각한 까닭은 첫 번째로 두 나라의 생활 속에 깊게 자리 잡은 사우나 문화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본 사치에, 미도리, 마사코, 이 세 여성들이 씩씩하게 살아가던 도시 헬싱키의 모습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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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는 숲과 호수의 나라다. 전 국토의 70% 이상이 숲으로 덮여 있고, 무려 50만 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호수들이 있다. 핀란드어로 핀란드는 '수오미(Suomi)', 즉 호수의 나라를 뜻한다. 국기의 흰색은 눈, 파란색은 호수를 상징한다. 이처럼 핀란드의 수많은 호수들은 주변의 울창한 숲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데, 핀란드인들은 이를 즐기기 위해 호수 주변에 통나무로 된 여름별장인 Mokki(모끼)를 짓고 주말이나 긴 휴가를 이곳에서 보낸다. 핀란드의 Mokki에 반드시 빠져서는 안 되는 요소가 있으니, 바로 사우나다.

핀란드와 일본이 사랑하는 사우나

세계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단어 '사우나(Sauna)'는 본디 핀란드어다. 그만큼 핀란드의 사우나 문화는 일본보다도 좀 더 일상생활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듯하다. 헬싱키에서 묵은 한 칸짜리 에어비앤비 숙소마저도 작은 사우나가 딸려 있었는데, 사우나 없는 집은 집이 아니라 할 정도로 그 사랑이 실로 대단하다. 핀란드 군인이 훈련 막사를 지을 때 가장 먼저 설치하는 것이 바로 사우나라는 말이 있을 정도. 핀란드의 국가조사기관인 Statistics Finland의 주거 수준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사우나 시설을 집 안에 갖고 있는 가구 수가 무려 200만 개가 넘는다. 이는 핀란드인 3.5명 중 1명이 집에 사우나가 있는 셈이다.(2016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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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나라 사람들 모두 한겨울의 노천욕을 즐긴다. 일본의 노천욕이 차가운 공기의 야외에서 뜨끈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는 것이라면, 핀란드 사람들은 섭씨 70-110도의 뜨거운 사우나와 얼음장같이 차가운 호수를 계속해서 오간다. 사우나 안에서는 잎이 달린 자작나무 가지를 다발로 묶어 온몸이 벌겋게 될 때까지 두드리는데, 이는 혈액 순환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혹자는 나쁜 기를 빠져나가게 하는 의식 비스무리한 것이라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다.)

헬싱키 중심가로부터 동북쪽에 위치한 동네, 메리하카(Merihaka). 발트해와 맞닿은 이 동네의 끝자락에 공중목욕탕 쿨뚜리사우나(Kulttuurisauna)가 자리 잡고 있다. 직역하면 문화 목욕탕(Culture Sauna)란 뜻의 쿨뚜리사우나는 2012년 일본인 아티스트 네네 츠보이(Nene Tsuboi) 상이 건축가로 활동하는 핀란드인 남편 투어마스 토이보넨(Tuomas Toivonen)과 함께 만든 공중목욕탕이다. 도시에 생기를 더하고, 모두가 함께 향유할 수 있는 공공건물을 짓고 싶어 목욕탕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는 네네 상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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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은 모든 이들이 제로(0)가 되는 공간이다.

모두가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알몸이 되어 육체와 정신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곳. 모든 가능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고 사색할 수 있는 곳. 그런 의미에서 목욕탕 건물에도 많은 것을 담아낼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덕분에 불필요한 것들은 덜어내고 일본의 절제된 감성을 더해 지금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다. 네네 상이 내게 선물로 준 작은 책 속에는 그들이 해안가에 공중목욕탕을 만들기까지의 과정과 영감들이 아기자기한 스케치와 메모로 정리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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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에서도 보기 드문 현대건축의 예로 꼽히는 쿨뚜리사우나는 네네 상과 투어마스 부부가 2년 동안 매진한 결과물이다. 목욕탕을 짓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지을 수 없었고, 그 작은 건물 하나를 짓기 위해 많은 에너지가 투입되었다. 해안가의 약한 지반도 고려해야 했고, 정부 소유의 땅을 임대해 세우는지라 헬싱키 시의회로부터 건축 허가를 받기까지의 시간도 꽤 길었다. 이웃주민들의 의견을 듣는 'Neighbor Listening' 기간도 2주 동안 가졌는데, 이때 들은 조언들을 통해 헬싱키 시민들의 사랑방 역할로써의 목욕탕을 좀 더 디테일하게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헬싱키 시와 이웃들의 관심 속에 2012년 문을 연 쿨뚜리사우나. 따뜻한 여름이면 건물 입구의 나무데크와 잔디에서 일광욕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목욕탕에 들어서는 순간 통유리 너머로 발트해가 펼쳐진다. 해안가에 자리 잡고 있어 어떠한 시선의 간섭도 없고, 바람을 통한 공기의 순환도 좋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발트해에 풍덩 빠져 바다수영을 즐길 수 있다는 점. 차디찬 바다에서 열을 식히고 다시 뜨거운 사우나로 들어간다. 사우나 안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히면 또다시 밖으로 나가 자연에 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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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나는 물을 부어 온도를 높이는 증기식이다. 남녀 구분이 되어 있고,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샤워를 한 후 알몸으로 사우나에 들어간다. 바깥의 공용공간으로 나갈 때에는 수영복을 입거나 큰 타올로 중요부위(?)만 가리면 된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반나체의 사람들이 따뜻한 차와 커피를 마시며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은 꽤 신선하게 다가온다. 쿨뚜리사우나는 방문한 모든 이들이 조용히 목욕을 즐길 수 있도록 3명 이상의 인원은 받지 않는데, 이는 마치 남에게 민폐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일본인의 국민성이 반영된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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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 식당]에서 사치에는 왜 핀란드에 식당을 열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이탈리아 하면 피자나 파스타가 연상되죠. 독일은 소시지, 한국은 불고기와 김치, 인도는 카레, 태국은 똠양꿍, 미국은 햄버거, 그리고 핀란드는 연어죠. 일본인들의 전형적인 아침식사 메뉴가 구운 연어잖아요. 일본인과 핀란드인들은 공통적으로 연어를 좋아해요. 그래서 잘 해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라고 말이다.

네네 상은 그런 사치에와 닮아 있다. "일본인과 핀란드인 모두 목욕(bathing culture)을 좋아하잖아요. 이곳 핀란드에서 내 나라의 스타일을 굳이 고수할 필요도 없어요. 그래서 잘 해나갈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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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쿨뚜리사우나(Kulttuurisauna)
    Add. Hakaniemenranta 17, 00530 Helsinki, Finland
    Tel. +358 40 516969
    Web. http://kulttuurisauna.fi
    Open Hours. 수-일요일 16:00-21:00 (Last entry 20:00)
    Fare. 성인 €15, 학생 및 노인 €12, 7회 목욕권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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