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비와 조선의 이야기
조선 시대는 농경 국가였다.
그렇기 때문에 비는 백성들이 먹고살기 위한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 시대 때 가뭄으로 인한 임금의 고민은 깊어져 갔으며 비를 원하였었다.
조선 시대에는 큰일에 비가 내린 사건이 몇 가지가 있다.
그중에 가장 큰 사건은 조선의 개국이다.
태조 1년 7월 18일 1392년 명 홍무(洪武) 25년
태조가 왕위에 오르자 가뭄끝에 비가 내리다.
비가 내리었다. 이보다 앞서 오랫동안 가물었는데, 임금이 왕위에 오르자 억수같이 비가 내리니, 백성의 마음이 크게 기뻐하였다.
또한 세종초에는 전국적으로 가뭄이 심하였었다.
상왕이었던 태종은 승하하기 직전에 죽어서 혼이 되면 옥황상제에게 빌어서 비를 내리도록 하겠다고 한 이야기가 연려실기술에 기록이 되어 있는데, 태종이 승하한 5월 10일에 정말로 비가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백성들은 매년 5월 10일에 내리는 비를 태종우라고 하였다.
경종 때 5월 10일임에도 비가 내리지 않아서 가뭄에 염려하는 모습과 영조 때는 5월 10일에 비가 내려서 선대임금이 주신 것이라고 하며 기뻐하는 모습이 조선왕조실록에서 볼 수 있다.
경종 3년 5월 12일 1723년 청 옹정(雍正) 1년
약방(藥房)에서 입진(入診)하였다. 약방 제조(藥房 提調) 이태좌(李台佐)가 아뢰기를,
"이달 10일은 태종 대왕(太宗大王) 기신(忌辰)인데, 옛부터 이날 비가 오는 경우가 많아서
‘태종우(太宗雨)’라고 일렀습니다.
그러나 금년에는 이날도 비가 내리지 않아서 한재(旱災)가 혹심하니, 민사(民事)가 딱하고 염려스럽습니다. 그리하여 내외(內外)의 저축(儲蓄)이 텅 비었습니다. 청컨대 성상께서 비용을 절검(節儉)하시어서 하늘에 대응하는 실천을 보이소서."
하니, 임금이 받아들였다.
영조 40년 5월 10일 1764년 청 건륭(乾隆) 29년
약간의 비가 내리다.
이날 약간의 비가 내리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는 척강(陟降)이 주신 것이다."하였다.
매년 이날이면 문득 비가 내리니, 사람들이 ‘태종우(太宗雨)’라고 불렀기 때문에 임금이 언급한 것이다.
정말 5월 10일에는 비가 내리는 걸까? 혹시나 해서 최근 59년간의 서울의 5월 10일의 강수량을 조사해 보았다.
조금이라도 비가 내린 것을 보면 59년 동안 24회가 내린 것으로 조사가 된다.
1960년 일강수량: - 1980년 일강수량: - 2000년 일강수량:20.0mm
1961년 일강수량:8.0mm 1981년 일강수량:38.2mm 2001년 일강수량: -
1962년 일강수량: - 1982년 일강수량:0.0mm 2002년 일강수량: -
1963년 일강수량: - 1983년 일강수량: - 2003년 일강수량: -
1964년 일강수량:5.0mm 1984년 일강수량: - 2004년 일강수량:10.5mm
1965년 일강수량: - 1985년 일강수량: - 2005년 일강수량: -
1966년 일강수량:9.2mm 1986년 일강수량:0.6mm 2006년 일강수량:0.3mm
1967년 일강수량: - 1987년 일강수량:1.2mm 2007년 일강수량: -
1968년 일강수량: - 1988년 일강수량: - 2008년 일강수량: -
1969년 일강수량:13.4mm 1989년 일강수량:6.4mm 2009년 일강수량: -
1970년 일강수량:16.9mm 1990년 일강수량:6.5mm 2010년 일강수량:0.1mm
1971년 일강수량: - 1991년 일강수량:0.0mm 2011년 일강수량:6.5mm
1972년 일강수량: - 1992년 일강수량: - 2012년 일강수량: -
1973년 일강수량: - 1993년 일강수량: - 2013년 일강수량:22.0mm
1974년 일강수량: - 1994년 일강수량:8.7mm 2014년 일강수량: -
1975년 일강수량: - 1995년 일강수량:19.6mm 2015년 일강수량: -
1976년 일강수량:0.0mm 1996년 일강수량: - 2016년 일강수량:13.5mm
1977년 일강수량: - 1997년 일강수량: - 2017년 일강수량:2.5mm
1978년 일강수량: - 1998년 일강수량:0.0mm 2018년 일강수량: -
1979년 일강수량: - 1999년 일강수량: - ( 59년간 24회)
비가 꼭 좋은 일에만 내린 것은 아녔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경복궁에서 몽진하던 그 날 새벽에도 비가 많이 내렸다.
태조임금의 개국 시 내렸던 비와는 상반되는 비임을 알 수 있다.
선조 25년 4월 30일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새벽에 상이 인정전(仁政殿)에 나오니 백관들과 인마(人馬) 등이 대궐 뜰을 가득 메웠다.
이날 온종일 비가 쏟아졌다.
상과 동궁은 말을 타고 중전 등은 뚜껑있는 교자를 탔었는데 홍제원(洪濟院)에 이르러 비가 심해지자 숙의(淑儀) 이하는 교자를 버리고 말을 탔다.
궁인(宮人)들은 모두 통곡하면서 걸어서 따라갔으며 종친과 호종하는 문무관은 그 수가 1백 명도 되지 않았다. 점심을 벽제관(碧蹄館)에서 먹는데 왕과 왕비의 반찬은 겨우 준비되었으나 동궁은 반찬도 없었다.
병조 판서 김응남(金應南)이 흙탕물 속을 분주히 뛰어다녔으나 여전히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었고, 경기 관찰사 권징(權徵)은 무릎을 끼고 앉아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