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24(화)역사단편246. 역사3, 중국을 위한 기록을 쓰다.

in Avle 종교 철학 인문학yesterday (edited)

지난 글에서 단재는
김부식이 자신의 사대주의적 사상을 실현하기 위해
역사적 사건을 은폐, 조작 했다는점을 지적했다.

역사상식이 없는 사람은
설마? 라고 생각할 것이다.

1천년전에 사대주의 대상은 중국이었고
1백년 전에는 일본이었고
지금은 미국을 포함한 백인종의 나라다.

소위 이론이나 주장들은
단지 그것을 사용하여 유익하게 활용하다가
상황에 맞지 않으면 폐기하는 것이 이론 본연의 원리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이론자체에 생명을 부여하여 하늘처럼 떠받들고 자신의 것은 버리며
이론을 위해 우리가 맞춰야 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힌것이
한국인들의 특성이다.

서양의 몇몇 사상가들이나 전략가들이 만들어놓은 이론을 절대시하여
그것을 반드시 지켜야 사람구실을 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행태를 보면
김부식의 역사조작은 차라리 애교라고 볼 수도 있겠다.

선생의 글을 계속 읽어간다.

나의 말을 不信(불신)하거든 『三國史記삼국사기』를 보라.
扶餘와 渤海(부여와 발해)를 拔去(발거)할뿐 아니라
百濟의 慰禮(백제의 위례)는 稷山(직산)이라 하고,
高句麗의 州郡(고구려의 주군)을 太半(태반)이나 漢江 以南(한강이남)에 옮기고
新羅의 平壤州(신라의 평양주)를 削除(삭제)하여
北方 疆土(북방강토)를 外國에 割讓(외국에 할양)함에
그 理想(이상)에 맞추려 함이 아닌가?
朝鮮(조선)의 固有한 思想(고유한사상)으로 發展(발전)한
花郞의 聖人(화랑의 성인)인 永郞(영랑)·夫禮郞 等(부예랑 등)은
姓名도 記載(성명도 기재)하지 않고,
唐朝 留學生(당조 유학생)으로 거의 唐에 同化(당에 동화)한
崔致遠等(최치원 등) 을 崇拜(숭배)하며,
唐과 血戰(당과 혈전)한 扶餘 福信(부여 복신)은
列傳(열전에 올리지 않고
投降한 黑齒常之(투항한 흑치상지)를 特載(특재)함이
그 理想(이상)에 맞추려 함이 아닌가?
其他(기타) 이 같은 種類가 許多(종류가 허다)하여 枚擧(매거)할 수 없다.
大槪(대개) 自家의 理想(자가의 이상)과
背馳되는 時代(배치되는 시대)의 歷史(역사)에서
自家 理想(자가이상)에 符合하는 事實(부합하는 사실)만을 收拾(수습)하려 한즉
그 史料(사료)도 艱乏(간핍)하려니와,
또 不得已(부득이) 孔丘氏(공구씨)의 筆削主義(필삭주의)를 써
그 事實(사실)을 加減 或 改作(가감 혹 개작)할 밖에 없을 것이다.
그 中(중) 가장 刪削(산삭)을 당한 者(자)는
儒敎徒의 事大主義(유교도의 사대주의)의 正反對(정반대)되는
獨立思想(독립사상)을 가진 郞家의 歷史(낭가의 역사)인 것이다.
< 출처: 朝鮮歷史上 一千年來 第一大事件>

拔去(발거): 뽑아내서 버림
稷山(직산): 충남 천안시 직산면
太半(태반): 절반이상
割讓(할양): 떼내서 넘겨줌
夫禮郞(부예랑):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각간’이었다고 나와있다.
扶餘 福信(부여 복신): 백제의 부흥군을 이끌었던 인물
흑치상지: 백제 부흥운동을 하다 투항, 당나라 장군이 되었다.
特載(특재): 특별히 싣다
枚擧(매거): 낱낱이 들어 말하다
背馳(배치): 반대로 됨
自家(자가): 자기, 자신
符合(부합): 틀림없이 맞음
收拾(수습): 정돈함
艱乏(간핍): 없는것이 많음
不得已(부득이): 마지못해, 하는 수 없이
孔丘氏(공구씨): 공자를 말한다.
筆削主義(필삭주의): 감출것은 감추고 자랑거리는 반드시 썼던 수법
刪削(산삭): 필요없는 글자나 구절을 지워버림

(옮기면)

나의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삼국사기』를 보라.
부여와 발해를 뽑아내서 버렸을뿐 아니라
백제의 위례는 ‘직산(=천안 직산)’이라 하고,
고구려의 주와 군을 절반이상이나 한강 남쪽으로 옮기고
신라의 ‘평양주’를 삭제하여
북방강토를 외국에 떼어 넘겨준것은
그 사대주의의 이상에 맞추려 함이 아닌가?
조선의 고유한사상으로 발전한
화랑의 성인인 영랑, 부례랑 등은 성명도 기재하지 않고,
당조 유학생으로 거의 당나라 사람과 같게 변한 최치원 등을 숭배하며,
당과 죽음을 무릅쓰고 싸운 ‘부여 복신’은 열전에 올리지 않고
투항한 ‘흑치상지’를 특별히 실은것은
그 사대주의 이상에 맞추려 함이 아닌가?
기타 이 같은 종류가 허다하여 낱낱히 말할 수 없다.
대개 자가의 이상과 반대로 전개되었던 시대의 역사에서
자신의 이상에 들어맞는 사실만을 정리하려 한 것이니
그 사료도 없는 것이 많으려니와,
또 어쩔 수 없이 공자의
‘자랑할것은 쓰고, 부끄러운 것은 감추는 서술방식’으로
그 실제로 있었던 사실을 가감 혹 개작할 밖에 없을 것이다.
그 중 가장 기록이 삭제를 당한 者(자)는
유교도의 사대주의에 정반대되는
독립사상을 가진 낭가의 역사인 것이다.
< 출처: 조선역사상일천년래 제일대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