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 붓을 잡아보자!

in zzan3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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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줄평


 꽃으로 기워진 낡은 양말 한켤레
 요정이 흩뿌린 담백한 사랑가루
 붓질로 복원된 미련한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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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영화라는 소개를 받고 '내 사랑' 이라는 제목도 참 신파스럽지만 포스터에서 풍겨오는 뭔가 한없이 지루할 것만 같은 목가적인 따분한 인상을 받으며 '그래 니들은 또 어떤 사랑을 하나 함 보자' 하는 건방진 마음으로 정말 기대는 1도 없이 영화를 시청했습니다.

엔딩 크레딧이 사라진 후... 나는 눈물로 퉁퉁부운 벌건 눈을 하고 TV앞에 움크린 채 발견되었어요. 이건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는데 크게 한방 맞은 듯 쓰리고 아팠습니다. 아.. 분하다.

사실 이 영화를 접하기 하루 전, 시골 마을이라는 유사한 배경의 로맨스 영화 '와일드 마운틴 타임'을 보다가 깊고 달콤한 잠에 빠진 전적이 있던터라 동일한 장소가 주는 분위기에 선입견을 가질 수 밖에 없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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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멜로를 표방하지만 그보다는 선천적 장애를 가진 '모드 다울리'라는 실존 인물을 조명한 그녀의 성공스토리 전기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원제도 그냥 그녀의 애칭인 '모디/Maudie'에요. 우리는 그녀의 굴곡진 삶과 그녀가 마주하는 인생사를 관망하며 철저히 그녀에게 이입되고 무한한 애정이 싹트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배경은 캐나다의 어느 작은 시골마을. 모드(Maud)는 어릴적 소아 류마티스관절염을 앓고 평생 불편한 장애를 안고 살아가요. 시간이 지날수록 손 마디마디가 변형되어 굽혀지고 어깨와 등도 굽어지며 점점 걷기도 힘들어지게 됩니다. 다행히 비교적 풍족한 삶을 살았던 부모님이 어느날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시게 된 후 그녀는 친오빠에게 배신/버림받고 친척집에 머무르다 독립을 결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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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드는 연약한 유리같고 왜소했던 겉모습과는 다르게 상당히 용기있고 강한 인물이었어요. 자신에게 드리운 현실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사랑 앞에서도 용감했습니다.

성치않은 몸으로 절둑거리는 그녀에게 돌을 던지는 -할머니 담배셔틀 같은- 꼬마들에게도, 성노예(love slave)라고 수근대는 사람들 앞에서도 그녀는 화 한번 내지 않고 그냥 덤덤하게 익숙한 듯 모두 흘려보냅니다. T^T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필요한 것 /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그냥 해요. 용기있고 순수하게...

어느날 그녀에게 돈벌이를 하고 독립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옵니다. '에버렛'이라고 하는 남자가 '집안일을 해 줄 가정부'를 찾는다는 구인광고를 올리는 걸 현장에서 목격하고 바로 그를 찾아가요. 중간 과정은 험난했지만 어찌어찌 그의 집에 얹혀 살며 살림을 시작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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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단호크가 연기한 남주 '에버렛'은 전형적인 레드넥입니다. 고아원 출신으로 교육수준이 낮고 배타적이고 폭력적이며 고지식하고 이기적인 무정하고 거친 짐승남이에요. (안좋은 수식은 다 갖다 붙인듯...) 깊이 패인 미간의 불만 가득한 인상과 말투 그리고 배려따위 없는 언행이 첫인상부터 마음에 안들었는데 모디에게 손지검을 날릴 때 부터는 아주 대놓고 맘편히 욕하며 봤습니다.

물론 부모에게 버림받고 생전 사랑이란걸 받아본 적도 준 적도 없는, 사십 평생 오직 하루하루 생존만으로도 빠듯했던 정에 인색한 인생을 살아온 그였기에 이런 거칠고 무례한 모습을 아주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어요. 안타깝긴 했지만 싫은 건 싫은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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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비호감 에버렛에게 모드는 결혼을 청하고 진정한 사랑을 간구합니다. 그리고 마지못해 결혼을 승락받죠. 그녀에게는 모나고 투박하고 볼품 없어도 튼튼하고 든든한 울타리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근데 저 녀석 표정 어쩔...

순탄치 않은 그와의 삶 속에서 그녀는 어릴적 어머니로부터 배운 그림들을 틈틈히 그려 나가기 시작합니다. 운신의 폭이 좁았던 그녀에게 그림은 그녀가 맘껏 힘있게 뻗어갈 수 있는 세상이자 두 다리이자 자유이자 전부였어요. 실제로 그녀는 '내 인생 전부가 액자안에 있다.'는 고백을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건 에버렛이 딱히 그림을 싫어하거나 반대하지는 않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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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살면서 귀인을 만나보신 적이 있나요? 내 인생을 바꾼, 나에게 영향을 끼치고 인생의 변곡점이 되어준, 힘들고 어려운 방황의 순간에 결정적으로 손을 내밀었던 그런 귀인이요. 혹은 누군가에게 내가 그런 귀인으로 기억된 적이 있으신가요?

사방에 내편은 하나도 없는 것 같던 모드에게도 이런 귀인이 등장하는데 바로 뉴욕에 살던 '샌드라'라는 여성입니다. 그녀의 그림을 보고 첫눈에 예술적 가치를 인정해 준 사람이에요. 샌드라 덕분에 모드는 그림 판매를 시작할 수 있었고 점점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됩니다.

실제로 그녀의 그림은 순수 그 자체에요. 동네 가게 주인은 다섯살 난 자기 아들 그림과 다를 것 없다고 폄하할 정도로 퓨어 그 자체이지만 어린애가 그린 것과는 깊이와 차원이 다르죠. 잠깐 그녀의 작품을 보고 가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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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웨딩파티라는 작품인데 실제로 장신이었던 남편과 자신의 왜소한 모습의 대조된 모습에 웃음이 나더군요. 미우나 고우나 내 남자는 백마탄 왕자님이 었을까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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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더 쓰고 싶지만 벌써 한참 내려온 것 같아 이쯤 마무리해야 겠습니다. 최대한 스포를 자제하려 세세한 부분은 생략했으니 나머지는 여러분께서 직접 체험하시고 감동으로 화답해 주시길 바랄게요. 정말 할말이 많아 마구 조잘조잘하고 싶은 명작입니다. 특히 두 인물의 섬세한 사랑 이야기는 하나도 언급하지 않았으니 꼭 영화를 통해 확인해 보세요.^^ 극 후반 두사람의 대사만 한꼭지 남깁니다.

'내가 왜 당신을 부족하다고 생각했을까?'
'난 사랑받았어, 난 사랑받았어, 에버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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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면 저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칩니다. 물감은 손에 묻고 번잡하니 저는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에어펜슬을 높이 들고 '모드' 모드로 빙의해 한번 살랑살랑 끄적여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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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로 저는 '샐리 호킨스'의 빅팬이 되었습니다. 극중 늙고 점점 병세가 악화되어가는 모드의 모습을 정말 완벽하게 소화해 냈어요. 근데 저 프로필사진은 그녀가 맞나요?ㅎㅎ 극찬을 받았던 전작 '셰이프 오브 워터'는 잔뜩 기대하고 보다가 이상해서 껐는데 꼭 재도전하겠습니다!

죽시사의 '오 캡틴, 마이 캡틴 아메리카'의 에단호크도 그동안 잊고 있었는데 나이가 많이 들었네요.T^T 필모를 보니 꾸준히 작품생활을 해오고 있었군요. 아마도 이 영화가 그의 인생영화가 되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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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independent.ie


감독인 '에이슬링 월시'는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의 원작 '핑거스미스'를 연출한 분입니다. 충격적인 반전이 아주 쇼킹했었는데 아가씨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지닌 영화이니 기회가 되면 꼭 보세요.

이번 영화를 위해 무려 10년을 준비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영화는 상당히 섬세합니다. 구석구석 감독의 세밀한 손길과 꼼꼼한 애정을 느낄 수 있어요. 흥행이 좀 더 되고 알려졌으면 좋았을텐데 참 안타깝습니다. 저라도 뒤늦은 홍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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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드와 에버렛의 실제 모습


제 좁은 선입견으로 묻힐 뻔 하다가 이젠 나의 인생영화로 등극한 아름답고 순수하고 선하고 사랑스럽고 특별하고 깨끗하고 맑고 자신있는 영화 '내사랑'! 다가오는 가을의 문턱, 소녀감성 뿜뿜하며 로튼키위즈가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저처럼 너무 울진 마시구요.

지금 곁에 내사랑 따위 없어도 이 영화 한편과 그녀가 남긴 작품들을 보고 있자면 한 며칠은 행복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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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튼키위즈 (Rotten Kiwies) 평점 100%
★★★★★

* Movie URL: https://www.themoviedb.org/movie/359784-maudie
* Critic: A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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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띵작~!!
셋째 출산 전에 아내랑 같이 본 영화다 ㅎㅎ

이 영화 봤구나! 맞아 태교에 좋은 띵작!!

미니멀 하는 분이 추천하셔서 봄
그림도 너무 예쁘고 영화도 굿굿^^

오... 영화 괜찮겠다ㅎㅎㅎ
리뷰 읽어보니까 나도 꼭 보고 싶어졌음 진심 ㅋㅋㅋㅋ

저 영화가 흥행을 못 한 이유는 분명
'제목'과 '포스터'때문이었을거야 ㅠㅠㅠㅠ

10년동안 준비한 영화라고 하니 영화가 안 좋을 수가 있을까.ㅎㅎ
시간될 때 바로 시청각!!!!

꼭 봐! 두번 봐! 정확한 지적인 듯. 제목이랑 포스터가 안티였어.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