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태워 먹은 날 – 이 응

in AVLE 일상6 days ago

다 태워 먹은 날 – 이 응

날마다
한파주의보
국 끓이다 냄비 새까맣게 태웠다
콜록콜록, 농막 문 연다
자욱한 연기 집 나간다
너 인듯 서 있는 자작나무 숲을 바라본다
매캐한 연기에 흐르던 눈물 닦는다
클 날 뻔 했다, 다 태워 먹을 뻔했는데
천만 다행이다
수없이 되새기다 자작나무 너머를 바라본다
폐광, 불꺼진 사택이 다가선다
고요 속에 은하철도가 지난다
깜빡거리며 빛으로 부서지며 울고 있는 별들
나는
매일 자작나무 숲을 거닌다
오지 않는 널 기다린다
봄 오면 오겠지
네가 오지 않으면 내가 가면 되겠지
아직 죽지 않고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다 태워 먹은 날
너 인듯 서 있는 자작나무 숲을 바라본다
그 숲을 떠난간 새를 그리워한다
2024-12-26 이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