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팀잇 이야기] 스팀잇에 스며들다

in AVLE 일상2 months ago

스팀잇과 함께한 기간이 내 일상생활에 어떻게, 얼마나 스며들었는지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연결된 짧은 챕터 7개로 작성해보았으니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1. 현금이 없어요

주말 낮, 흔치 않게 주어진 나만의 시간. 커피 맛도 모르면서 카누 대신 아내의 비싼 핸드드립을 준비한다. 어제 행사에서 가져온 스콘과 프레첼도 함께 손에 쥐고 모니터 앞에 앉으니 부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이다.

습관적으로 스팀잇을 열며, 오늘은 어떤 글을 쓸지 생각에 잠겼다. 그때, 고요한 집안을 울리는 큰 초인종 소리에 놀라 바깥으로 뛰쳐나간다. 낮잠 중인 아기가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예상치 못한 택배와 ‘착불’이란 단어가 들려왔다.

‘지갑이 어디 있지? 현금은 있던가? 잔돈까지는 없을텐데?’ 쉬고 있던 뇌가 바쁘게 움직이다 “계좌번호 알려주시면 바로 보내드릴게요”라는 스스로 만족스러운 답변을 내놓고, 핸드폰에 꽤 긴 숫자를 하나하나 눌러 전송했다.

다행히도 아기는 깨지 않았다.


2. 스팀은 있습니다

현관문을 닫고 10년 넘게 들고 다닌 지갑을 찾아보았지만 실패하고, 다시 모니터 앞에 앉았다. 모니터 오른쪽 위엔 스팀키체인이 열려있었고, 그 안에는 22,667개의 스팀코인이 반짝이고 있다.

방금 택배비로 사용한 1,900원을 떠올리며, ‘스팀코인 5개면 충분하네?’ 생각했다. 스팀코인은 전송이 빠르고 수수료가 없어 매우 효율적이다. 일상생활에서‘스팀코인으로 바로 결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희망도 따라왔다.

생각해보면 스팀으로 커피, 농산물, 도마, 문화상품권 등을 살 수 있었으니 실제로 사용할 수 있었다. 회상에 잠기며, 모니터를 끄고 옆 침대에 누웠다. 인물, 사물을 자주 추억하는데, 이제는 코인과의 연까지 떠올려보는 괴이한 취미가 머릿속을 휘저었다.


3. 좋지 못한 첫인상

2021년 2월 28일, 일요일. 바닥에 누워서 빨간색이 가득한 업비트를 만지작거리다가 코인 설명에 SNS가 적힌 스팀을 발견하고 잘나가는 네이버 블로거는 호감이 생겼다.

스팀잇의 첫인상은 그러하였다. 똑똑하지만 과거가 있어 보이는 무뚝뚝한 중년 아저씨. 살갑게 맞아주는 걸 기대하진 않았지만 복잡하고 불친절했다. 구글링해보니 저스틴선, 하이브, 하드포크 등 단어가 보였고 가정사가 복잡하구나 알 수 있었다. 또한 검색기능은 유명무실하고, 스팀코인판, 짠 등 별도의 사이트가 있으며, 무얼 해보려고 하면 쉬운 게 없었다. 기본인 태그조차 무얼 써야 할 지 몰랐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 아저씨에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이모티콘 남발하는 네이버 블로그와 달리 전문성이 있는 글을 보며 여러 방면에서 도움이 될 것 같았기에 용기 내어 먼저 다가갔다.

4. 플랑크톤의 꿈

스팀잇에서는 닉네임과 그 옆에 숫자가 있다. 60, 70 숫자가 붙은 닉네임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내 아이디 옆에는 뉴비 표시인 25가 보였다.

뉴비가 귀여워 보였던 건지 고인물(?)들은 질문에 친절한 답변과 사탕(보팅)도 간간히 주곤 했다.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 주머니가 두둑한 고래들이 나눠주는 사탕 주머니를 발견하게 되었다.

당시 스파업을 하면 두 명의 고래가 왕사탕(풀보팅)을 줬다. 달콤함에 취해 400원부터 구입한 스팀코인은 한 달 만에 지폐가 되었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해서 올랐다. 왕사탕도 얻고, 지갑의 자산도 불어갔다. ‘나도 고래가 될 수 있을 거야!’ 플랑크톤은 즐거운 꿈을 꾸었다.


5. 이별을 고해야 할 순간

연일 가격이 올라 거의 2천원 부근까지 갔지만 매일 100스팀~500스팀씩 스파업을 했다. 만개쯤 모았을까? 갑자기 스팀은 바닥을 뚫고 지하를 향해갔다. 플랑크톤의 꿈은 산산조각났다. 그러나 매도보단 평단가를 낮추는 걸 택했다. 왕사탕이 별사탕이 되어버렸지만 다른 코인들과는 달리 아직 사탕이 없어진 건 아니기에 버텨보기로 한 것이다.

스팀코인은 반등 없이 100원대까지도 내려갔다. 위기였다. 어려운 시기라 이벤트도 없고, 보상이 적어서 스팀을 점점 잊어갔다. 글을 안 쓰고 넘어간 날이 많았고, 설상가상 많이 모아두었던 SCT가 청산해버려 손실은 더 커져 이제는 이별을 고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심지어 많은 분들이 떠나기도 했다.

6. 나를 붙잡은 요소들

다른 가상화폐를 모두 정리하고 유일하게 남은 스팀코인. 3년 넘게 해오면서 계속 가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파워다운!, 둘째 소통!, 셋째 사탕!

파워다운, 정리하겠다고 ‘욱’ 했다가도 파워다운 하는 기간이 가정법원 단골 멘트인 “4주 후에 뵙겠습니다” 이기 때문에 마음을 추스르게 된다. 지금 정리하면? 3년 투자하고도 손실이란 영수증을 받아들게 될 것이지만 스팀에 투자한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느긋하게 노후연금으로 쓰겠단 마음가짐이 싹텄기 때문이랄까?

소통, 닷큐(72) 25가 72로 되어 고인물이다. 일면식 없는 온라인이지만 댓글로 소통한 게 정이 들었는지, 묘한 동질감도 느껴져 떠나기 아쉽다.

사탕, 2만여 개의 스팀으로 스팀달러를 생산하는 작은 사탕공장도 생겼고, 최근엔 글 쓰는 데 재미를 붙여 상금도 받아 활동이 즐겁다.


7. 함께 가자 스팀아!

정보 획득과 투자 목적으로 선택한 스팀은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렸다. 메일 확인하듯 스팀잇 댓글을 확인하고, 무슨 글을 쓸지 고민하고, 다른 글에서 정보를 얻어간다. 일과이다.

스팀잇은 여전히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지만, 발전을 위해 애쓰는 분들이 있기에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해본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글, 그리고 새로운 서비스. 이 모든 것이 스팀잇이라는 작은 디지털 세계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길 바란다.

앞으로 더 많이 생겨날 스팀잇 에피소드를 훗날 우리 아기에게 들려주는 그 날까지, 재미있는 스팀잇 활동을 해보고자 한다. 마침 글을 마무리하려는데 잠에 깬 아들이 아빠를 애타게 부르니 안아주러 가봐야겠다.



p.s. 스팀을 처음 접한 시점에 옆에 있던 여자친구가 1년 뒤 아내가 되었고, 다시 1년 뒤 내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스팀잇은 우리 가정의 기록을 남긴 소중한 공간이자, 많은 응원을 받은 특별한 곳임을 덧붙인다.


Thanks to. 윗글에서 언급해야 할 분만 해도 여러 명이다. 일일이 열거하기보단 지금은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하다. 또한 계속하여 스팀 발전에 애써주셔서 무언가 해야 될 것 같은 부채감도 느껴진다. 2024 스팀행사에 꼭 참가하고 싶지만 저녁식사에나 얼굴을 비출 것 같아 아쉽다.

[참가 접수, 5/17 한] Spring STEEMFEST Korea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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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밋의 세상을 안 지 얼마 안된 뉴비입니다! 저도 3년 후 비슷한 모습일까 싶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긴 역사는 아니지만 스팀의 최근 역사를 읽는 맛이 나네요!

그냥 쭉 읽게 글을 잘 쓰시네요. 풀보팅 갑니다!

스팀의 고대와 근대는 모르지만 현대사는 산 증인이기에 느낀대로 쭉 써봤습니다. Thanks to에 @etainclub 님 있는 거 아시죠? ㅋㅋㅋ 감사합니다.

스팀, 스달 가즈아~

가자가자~ 원금 회수가 되면 정말 편하게 스팀잇을 즐길 수 있을 듯 합니다.

오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주말이 벌써 끝났네요 ㅋㅋㅋ 그래도 수요일은 또 쉬는 날 ^^

스팀으로 큰 돈을 벌겠다 가 아니라
그냥 글 읽는 재미에 스팀을 하고 있지요 !!
아마 저도 조금은 더 스팀에 머물러 있을 거 같아요 !!

저도 큰 돈 벌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한건 아니라 소소하게 즐기며 하고 있습니다. 계속 함께 해주세요~

스팀잇이 나름 소중한 공간이 되었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정이 들어버렸나봐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