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크 토바 - 2화

나는 항상 난기류에 대한 고질적인 공포증이 있었다. 인도네시아 메단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싱가포르에서 고작 1시간 30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저가 항공을 이용할 때는 막연한 공포가 더했다.

우리는 사실 처음부터 4명이서 여행을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원래 나는 나의 대학교 절친이었던 엔리케와 술을 거하게 마시고 즉흥적으로 여행을 결정해 버렸는데, 비행기 안에 와보니 대학교 여선배 2명이 우리 자리 앞에 앉아 있었다. 메단에서 레이크 토바까지 반나절이 걸리는 택시를 같이 타기로 하면서, 자연스럽게 4명이서 여행길을 같이하게 되었다.

엔리케는 중국계 싱가포르인으로, 말 그대로 반항아 그 자체였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날카로운 시선, 밥 말리를 떠올리게 하는 레게머리와 펑퍼짐한 패션. 그의 외면만을 보고선 엔리케가 싱가포르 최고 엘리트 대학 출신에 당시 가장 유망한 학과 중 하나였던 컴퓨터 공학을 전공중이라는 사실을 알아 챌 순 없었을 것이다. 그는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똑똑했다. 자기 주장도 강했다. 가끔씩은 무미건조하고 지극히 평범한 내가 어떻게 엔리케와 친하게 지내게 되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앞에 앉아있던 여선배 2명중 1명은 나와 같은 철학 강의를 들은적 있었던 우즈베키스탄계 미국인이었다. 그 역시 눈매가 매우 날카롭고 전형적인 동양인의 생김새였다. 그녀는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마케팅 쪽에 관심이 많았다. 파티를 매우 좋아해서 교내 하우스 파티때나 클락키나 앙시앙 힐과 같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유명한 번화가에서 자주 마주칠 수 있었다. 나는 항상 그녀와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유난히 학교에서 우연히 마주친 적이 많았던, 그래서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아는 사이도 아닌 애매모호한 관계였다. 그녀의 이름은 파샤였다.

마지막으로 대만에서 국가장학금을 수여받고 싱가포르로 유학온 수는 파샤와 여행을 같이 떠날 정도로 친한 사이라고 믿기에는 조금 어려운 전형적인 우등생 스타일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분 모두 고위 공직에 계셨고 수 역시 경제학과를 전공하고 국제금융기구에 취직을 앞두고 있던 상태였다. 수가 파티와 술을 좋아하는 파샤와 함께 여행을 떠난 것은 다소 의외였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