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 7년의 밤

in #kr-booksteem7 years ago

조금 다른 서평의 첫장을 열 책은 정유정의 '7년의 밤'

난 한국작가의 스릴러를 좋아하지 않았다. 'abc살인사건', '애크로이드가 살인사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로 대표되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전혀 예상할수 없는 창의적인 플롯도 없고, '용의자 x의 헌신' 으로 잘 알려진 히가시노 게이고의 특징인 책을 읽을때마다 플롯에 자꾸만 기름칠을 하는듯한 완벽함도 없다. 시간차 트릭의 시초이며 사회파 미스터리의 아버지라고 불린 '점과 선'의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처럼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상징적인 의미조차 없다. 한국 스릴러, 미스터리 문학을 깎아내리려 함이 아니다. 지금 당장 가장 감명깊게 읽었던 스릴러 문학을 떠올려봐라. 한국문학이 몇개나 있을지.

7년의 밤을 처음 집어든 그 순간에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내가 책을 선별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던 군대였기에, 어쩔수 없이 읽게된 책이었다. 100쪽을 채 지나기전에 다음 결말이 보이고 , 200쪽이 채 지나기전에 몰입도가 떨어지는 그 순간을, 나는 예상할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예상했었던 100쪽을 넘었을때 나는 이 작가가 하고자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고, 200쪽이 넘었을땐 저녁식사를 고사하고 관물대 앞에 붙어있게 만들었다. 그렇게 500쪽을 넘기고 책을 덮었을때. 지금까지 가져왔던 내 생각이 틀렸음을, 정유정이 증명해냈다.

줄거리 자체는 웅장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너무 평범하고 구질구질하다. 흥미를 이끌기는 고사하고 사람의 바닥을 보며 구역질이 난다. 신데렐라 스토리도 아니고, 바닥에서 하늘까지 올라오는 성공스토리도 아니다. 그저 한 인간의 몰락을 그리고, 몰락에서 다시 몰락으로 떨어지는 그 순간을 적어냈을 뿐이다. 장장 500페이지에 걸쳐서. 마치 요리를하려고 재료를 샀는데 썩은 당근, 상한 계란, 싹난 감자를 사서 감자탕을 끓이는것과 진배없다.

그럼에도, 정유정은 거북하지만 맛깔스러운 역설적인 상황을 이 책위에서 구현해 냈다. 선악이 없다. 누가 주인공인지도 구분이 안간다. 범인인데 불쌍하고, 피해자인데 화가난다. 역설적이다. 패러독스라는 말이 이렇게 잘 어울릴 수가 있을까.

분명 쉽게 풀어써진 책은 아니다. 번역체의 간단하고 쉬운 문체는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단점일 수 있다. 하지만 이건 한국작가가 쓴 '순수 한국문학' 이기에 가질 수 있는 특별함이다. 영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또 다른 스릴을 지금까지 겪어본적 없는 국어로 풀어냈다.

특별하고, 역설적이고, 구질구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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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잘읽었습니다. 초반에는 kr-newbie 태그 쓰시는 걸 추천드려봐요. 보통 이 태그를 타고 많은 분들이 찾아와주시거든요 :)

알겠습니다!! 지금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우선은 서평위주로 꾸준히 써보려고 노력중이에요 ㅠㅠ 말씀하신대로 kr-newbie 써보도록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