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울하지 않다

in #kr-diary6 years ago (edited)

오래된 지인이 ‘잘 지내요?’ 라고 물었다. 잘 지내요 라고 물었을 때 나는 그 질문의 마법에 빠져들어 사실 이러이러해서 잘 지내지 못해요 라고 말해버릴 것만 같다. 그렇지만 바로 마음을 거두고 대답한다. ‘너무 잘 지내요...’

스팀잇을 시작할 즈음에 나는 극심한 우울감을 경험했었다. 병원에 가서 의사의 진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우울증이라고 결론을 내릴 순 없었지만 그당시 나는 정상이 아니었다는 것은 스스로 진단할 수 있었다. 딱히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샤이니의 종현이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라는 사람이 왜 우울한지 이유를 찾으라고 했다고 한다. 그사람은 신경정신과 전문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우울은 이유가 없다.

나도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불안했다. 내 삶이 아닌 삶을, 상황에 의해 살아가고 있는 듯한 그런 생각으로,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나...처음 온 해부터 3년을 지나고 또 3년이 지나고... 길을 꺾어야 하는 골목의 모퉁이처럼 찾아온다.

한국에서 돌아올 때 나는 엄청난 양의 짐을 가지고 왔다. 남편이 먼저 왔기 때문에 우리 셋이 들고 올 수 있는 짐은 화물 60킬로와 기내반입 짐 정도였다. 새벽도착이라 아이 둘을 데리고 기내에 짐을 들고 가는건 불가능해 화물로 보내야 하는데 사 놓은 것, 받아놓은 것이 너무 많아서 매일 매일 산처럼 쌓여가는 짐을 보며 한숨만 쉬었었다. 제일 먼저 엄마가 싸 준 고추가루, 참깨, 참기름, 간장 등등을 엄마 몰래 언니네에 줘버렸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사 둔 그릇세트와 냄비세트도 버렸다. 그러고도 무게가 나가는 신발 몇 켤레도 뺐다.

809C4780-6AB0-4C11-8E91-25A302B4A1A3.jpeg
짐을 싸고 풀고, 싸고 풀고... 출발하는 날까지 박스를 몇개나 만들었다가 다시 싸고 풀고 무한반복하며 무게를 맞춰나갔다. 결국에는 라면 박스보다 약간 더 큰 박스 세 개, 우리 형부가 트렁크에서 빼다가 허리 나갈 뻔한 초대형 캐리어 하나로 짐을 만들었다. 공항에 가서 티케팅을 하고 짐 무게를 재는데, 사진과 같이 딱 56kg... 한국에서 올 때 내 몸무게가 딱 56이었다. 대따 큰 박스 세개에 우리형부 허리 나가게 할 뻔한 캐리어... 무려 5킬로가 쪄서 와서 옷을 입을 수가 없다.

문제는 배가 커져서 매일 허기를 느낀다는 거다. 스테이아웃 하는 보모가 태풍이다 뭐다 해서 계속 안나오니 운동을 매일 갈 수도 없어 한국에서의 먹고자고 싸이클은 계속되고, 그나마 배터지게 사육당하지 않으니 지금은 55킬로가 조금 안되게 빠졌는데... 내가 불편해서 못살겠다.

무려 3개월의 방학이 이제 거의 끝나간다. 아침 5시에 기상해서 밤 9시에 힘든 운동으로 마무리하던 내 하루가 방학 3개월동안은 리듬이 깨진 채로 흐르다 보니 몸도 마음도 일상 위를 붕붕 떠다니는 기분이다.

그리고... 그분의 기사가 단독으로 포탈메인에 뜰 때마다 나는 읽어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걱정이 됐다. 누가 좀 도와줬으면... 그런데 결국에는 그렇게 되고 말았다. 내가 살아오면서 이렇게 좋아한 정치인이 있었을까. 감정적으로 밑으로 가라앉은 계기였다.

그리고 내 주변에서 일어난 엄청난 일... 말로만 친구들끼리 농담처럼 주고받는 말이 있다. 사기꾼인지도 몰라... 살고 있는 곳이 필리핀이라 모든 사건 사고 자연재해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한국의 가족이나 지인들한테 인식되어질 때마다, 내가 마치 필리핀인 듯 한 묘한 자격지심이 일었었다. 그런데 실제로 내 공간에 그런 짐승같은 인간이 버젓이 안그런척 살고 있었다. 여기 사는 모든 한인들이 다 그러하겠지만 나 역시도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었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갔던 경주여행... 나는 어릴적 부모님과의 유대관계가 거의 없이 자랐지만 언니들하고는 유난히 가까웠다. 언니들과 떠난 경주여행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과 배려의 마음을 느끼고 돌아왔다. 아... 그랬지... 내게도 가족이 있었지... 언제든 돌아가서 안길 수 있는 내 가족이 있었지... 언니들이 너무너무 보고싶다...

나는 우울하지 않다 않다 않다 않다 않다...

그저 가족이 그립고, 좋아하는 정치인을 잃었으며, 짐승같은 것들과 한 공간에 있었던 것에 충격을 받고 불쾌함과 불결함을 동시에 느꼈을 뿐이고, 엄청난 무게의 짐과 동급이 되서 예쁜 옷을 못입고 있고, 좋아하는 운동도 못하고 약간의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있을 뿐이다...........

Sort:  

당신이 내게 잘 지내냐고 물어봐 준 순간부터
나는 잘 지낼 수 있을 것만 같아...
힘든 일이 있다면 혼자서 끙끙 앓기보다는 대화하고 나누는 게 나을 때도 있더군요.

대화하면서 나를 너무 드러내는 단점이 있어요. 특히나 이곳 한인사회는 좁아서 극도로 조심하며 살고 있답니다 ㅎ

울컥하네요

울지말아요 찡님...

저도 힘들때마다 자존감 수업 책을 깨작깨작 읽는데, 그것도 거의 다 읽어가네요. 저의 경우엔 미래에 집중하면 더 우울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에 집중하려고 노력해요. 노력이라고 쓴 이유는 잘 안되기 때문에요ㅎ 응원 감사하고, 북키퍼님이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아.. 경아님 감사합니다. 제가 행복했음 좋겠다는 경아님의 말이 와닿습니다. 늘 바쁘고 멋진 뿜뿜인 경아님 보며 자극받아요. 항상 이곳에서 글 써 주시고 함께 해 주세요.

멋지다고 해주시면 감사하죠. 현실은 물 밑에서 아둥바둥 발장구를 치는 중이거든요ㅎㅎ
저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해요..!! 행복한 주말 되시구요 :-)

아 그 사람...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흠... 우리도 궁금해요. 야반도주라도 할 줄 알았는데 젊은 남자들이랑 대형 몰에서 킥킥대며 밥쳐먹고 있는걸 봤다는 제보도 있고... 개학을 해봐야 알거 같아요. 사람에 제일 무서워요

무섭죠. 그치만 우울에는 다시 빠지지 않으시길 바랄게요!

힘내세요.. 그러고 보니 저도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오늘 한 게 너무 없네요 ㅠㅠ

조쌤!! 아직 계셨어요? ㅎㅎ 북키퍼가 아프다고 하니 말 걸어주시고. 감사해요. 저는 방금 유튜브로 아쉬탕가 요가 한시간 하고 기분이 좋아졌어요 ㅎㅎ

전 오늘은 운동 쉬었답니다. 운동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죠~ 뇌도 잘 돌아가고 ㅋ 여름은 운동으로 힘차게 이겨내시길~ 가즈앗!!! ㅋ

토닥토닥입니다.

감사합니다 ㅠ

북키퍼님
저도 우울하지 않아요
정말...
그렇다고 행복하냐 묻는다면...글쎄
잘 모르겠지만 우울하지 않은 게 어디예요
이 정도로 괜찮죠?!

알아요 띨띨님... 우리 다 알지 않나요? 너무 이쁘고 사랑스럽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니가 뭐가 힘드니? 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딱히 할말이 없을 뿐. 진짜 겨울에 함 봐요 우리.:.

꼭이요!!

자꾸 파고들어가면 더 우울해지는 거 같아요.
그래도 적당한 몸무게를 유지하고는 계시네요.
저는 꾸준히 몸무게가 늘어서 그걸 생각하면 자꾸 쳐지는 기분이 들더라구요.
더워서 더 그런 거 같기도 하구요.ㅜㅜ

몸무게가 꾸준히 늘었다면 모르겠는데 3주만에 급격하게 늘어난 무게라 정상적인 체중이 아니에요. 너무 폭식을 하다와서 위가 늘어나서 총체적 난국입니다 ㅋ

이 또한 지나가리라...ㅎㅎ 힘내세요!

네~ 감사합니당

그냥 내가 우울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울증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우울증을 너무 심각하게 바라보니 그런것인데... 사람이 살다보면 내 마음대로 안되고 스트레스를 받다보면 우울 할수 있다고 봅니다. 단지 우울증을 크게 볼 필요없이 감기처럼 약을 먹으면 얼마든지 쉽게 치료가 된다고 하니 한번 검진 받는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그냥 두게 되면 아무래도 그것에 내가 지배 당할수 있으니까요. 그냥 감기 처럼 마음의 면역력이 떨어진게우울증이아닐까 싶습니다. 요즘 세상에 우울하지 않는 사람 찾는것도 어려울듯 하고요... 마음 잘 다스리세요.

개털님 제가 겁이 많아서 아직은 병원이니 약이니... 그러다 보면 내가 진짜 문제가 있는거 같이 느껴질까봐 두려운 맘이 커요. 일단은 다시 운동 시작하고 일상을 시작해 보려구요. 그렇게 하면 나아질거라 지금은 믿고 있어요. 한국에 다녀오면 항상 조금은 그런데.. 이번에 좀 크게 왔어요. 마음을 다스려야지요. 감사해요 개털님...

별일 아닐거니까! 마음 편하게 가지시라고 편안하게 드린 말인데 두려운 마음 드는것도 이해도 됩니다. 저도 그래요. 해외 사는 사람들이 특히 그렇다고 하던데...힘내히고 퐈이팅 입니다.

고용량 비타민C(원자 구조를 알고보면 포도당과 동일) 주사가 신체의 면역 기능뿐 아니라 뇌의 면역기능도 높여준다고해요. 뇌는 당에너지만 받아들일 수 있는데 고용량 비타민C 주사가 주입되면서 지친 뇌를 빠르게 회복시켜주는 효과가... 성형외과에서 미백 탄력 피부 관리용으로 광고 많이들 하는데 실은 면역 강화제! ^^ 가벼운 우울감은 뇌의 감기라 볼 수 있으니 무더위에 지치고 기운 없을때 한 팩 추천드려요.

아.. 비타민은 집에 엄청 많은데 제가 게을러서 잘 챙겨먹지를 못하네요. 꼬박꼬박 먹어보겠어요! 감사합니다 소봉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