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1.04.27 화

in #kr-diary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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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막내가 한창 책 읽어주는 걸 좋아할 때라 매일 밤 자기 전에 두세권을 읽어주고 있다. 물론 귀찮은 일이지만 첫째의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이렇게 책 읽어달라고 하는 것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으므로 힘을 내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집에 있는 다양한 책을 읽다보니, 동화가 동화답지 못한 얘기들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잭 만큼이나 아이들에게 해로운 책도 없는 것 같다.

잭이 한 일:
1 집에 먹을 게 없는 데 엄마 말 안듣고 소 팔아 콩 몇 알 사옴
2 하늘에 올라가 거인 집에서 금화 훔쳐옴
3 하늘에 올라가 거인 집에서 황금알 낳는 닭 훔쳐옴
4 하늘에 올라가 거인 집에서 노래하는 하프를 훔쳐오다 걸림
5 도망치는 와중에 거인 살해

이정도면 뭐 남은 여생 대부분은 감옥에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나 싶다. 그런데 결말은 의외로 삼삼하게 끝난다. 버전에 따라 어떤 곳에서는 콩나무를 베어버린 후 노래하는 하프로 공주(?)를 유혹하여 결혼한다는 엔딩도 있다.

잭은 나쁜 짓을 많이 했는 데 왜 벌을 받지 않는 것일까. 권선징악의 관점에서 이것 자체로도 문제이긴 한데, 만약 "거인은 잭과 같은 사람이 아니고, 그러므로 거인의 물건을 빼았아도 되고 죽여도 된다"라는 데까지 나아가게 되면 이건 완전 쓰레기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어린이에게 인종차별을 용인하는 메세지를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이제 이 이야기를 어른용이라 생각하고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유추해보자면, 아무래도 큰 그림을 그린 흑막은 잭에게 소를 받고 마술콩을 건네준 할아버지가 아닐까 싶다. 그는 사기꾼같은 달변가인지 아니면 다른 수를 썼는 지는 몰라도 한 사람을 설득하여 소를 받고 콩을 건네주는 능력자이다. 그리고 아마 그는 잭에게 이 콩을 건네주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대충 알았을 것 같다.

더 나아가 하늘 위의 거인이 사는 큰 집은 사실 이 할아버지의 집이었는데, 어떤 이유로 이 집과 재산을 거인에게 빼앗기고 거리에 나앉았다가 잭을 이용해 복수를 하는 이야기라면 이제 균형이 좀 맞으려나...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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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
동화가 실제 상황으로 나왔군요^^

어렸을 때 잭과 콩나무는 그저 신기한 콩나무 이야기로 느껴졌는데
이런 이야기 였다니, 두둥!!! 어릴 땐 이상하단 생각 해본적이 없는데 말이죠. 헛헛 사실은 마술콩 할아버지의 달변 능력에 대한 이야기였군요.

중세에 노비를 부린 사람을 지금의 인권 의식으로 바라보고 모두 악당으로 치부할 수 없듯이, 잭과 콩나물도 쓰여질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네요. 그런 의미에서 세계사를 받아들일 만한 나이를 감안하면 12세 이상이 지도아래 읽을만한 동화라고 제 나름대로 평가해 봅니다 ㅎㅎ

그렇습니까?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고려해야 할 당시 시대적 상황이라면 간략하게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단군설화로 그 당시 사회 상황을 추론하듯 구체적으로 분석할 만한 동화는 아닐지라도, 한국사든 세계사든 지금은 안되지만 그 땐 통용되었던 일들은 수없이 많으니까요. 아이가 이해에 도움이 될만한 역사적 사실들은 수없이 많겠죠. 예를 들면 노비종모법으로 노비의 수가 늘었는데 지금의 기준으로는 노비가 늘었으니 나쁘다 볼 수 있지만 그 시대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라든가, 부여에서는 질투가 심한 부인을 제도적으로 사형에 처했다...

링크 감사합니다. 이게 그렇게 오래된 얘기였군요. 하지만 거인에게서 물건을 훔치는 일이 정당화되는 역사적 배경은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그래도 말씀처럼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무조건 매도하진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게요. 유럽 중세 후기에나 인종적인 차별이 생겨났고, 강도보다도 절도를 더 큰 죄로 여기던 분위기도 있었다고 하던데 자연스럽게 훔치고 넘어가는게 참 부자연스럽네요. 닭의 알은 계란이라고 가져다 먹어도 되는데 거인의 물건은 훔칠 때 거부감이 드니... AI와 인간의 경계, 가축의 권리 같은 철학적인 문제로 까지 이어지네요.

악... 아무리 그래도 AI는 너무 멀리 간 거 아닌가요? ㅋㅋ

'잭이 한 일' 리스트가 왜 이렇게 웃기죠...

웃지만 마시고 잭에게 한 소리 좀 해주세요~

우리도 어렸을 때 몰랐던 것처럼 애기도 모를거예요. 모르는 척 박진감 넘치게 읽어주세요. 이예~~./^ㅁ^/
그리고 나중에 지금 우리처럼 속았다 느끼는 재미까지 선사.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