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피로사회 - 한병철 (2012)

in #kr-newbie7 years ago (edited)

나는 나를 퍼올리는 중이다. 마치 내가 마르지 않는 샘인것 처럼 나는 나를 퍼올리고 있다. 끝이 있는 자원인 석유를 끝이 없는 것처럼 쓰고 있는 인간들 처럼, 나는 나를 끝 없이 퍼올리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 나는 나를 퍼올리는데 힘이 부쳤다. 어느 순간 나는 나를 퍼올릴 수 없었다. 나는 마침내 고갈되었고, 내 속으로 끝없는 침잠을 거듭하고 있다. 다시 나를 퍼올릴 수 있도록.

앞서 서술한 세 줄은 내가 이 책을 보지 않은 사람이 이 책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리고 내가 느낀 책의 내용을 적은 것이다. 난 작가의 생각이 정말 굉장하다고 느꼈다. 이 책은 쉽게 읽히지 않고 난해하지만,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기 때문이었다. 과거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졌고, 사람들은 성과를 위해 보다 더 심한 자기 착취를 시작했다. 결국 자기 자신을 전부 소비해 버리고 만다. 현대사회에서 부쩍 늘어난 우울증도 이러한 이유에서 설명이 가능하다고 작가는 주장하고 있다.물론 이런 작가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생각이기 때문에 모든것을 포괄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될 수 없지만,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설명하기에 아주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당장 나 부터 자기착취에서 자유롭지 않으니까.

이 책은 이러한 내용을 굉장히 불친절하게 서술했다. 나의 짧은 지식수준으로는 감히 다 읽었다고 말하기 창피할 정도로 어렵게 서술되어 있는데, 기본적으로 알수 있는 프로이트의 심리학이론이나 리비도 같은 단어를 넘어, 로마시대의 키케로까지 아우르는 작가의 식견을 전부 따라가기엔 다른 독자들에게도 정말 힘든일일 것이다. 그러나 난 비단 이 책 뿐만 아니라 책을 읽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생각을 보는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을 받아들여 내 자신의 생각에 덧 붙여 나가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전공책을 읽듯 완벽한 이해를 전제로 읽는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책 또한 이해가 어렵고 불친절 하더라도 읽기에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이 아닐까. 작년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고 나서 느꼈던 기분을 정말 오래간만에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