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블록체인 거번먼트, ‘사회적 기술’ 블록체인의 가능성을 논하다
안녕하세요. @ryuhan18 입니다.
얼마전 <블록체인 거번먼트: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서평을 한국산업노동학회 학회지에 기고했어요. 학회의 허락을 받고 제가 쓴 서평을 공유합니다.
『블록체인 거번먼트: 4차 산업혁명의 물결』
블록체인 거번먼트, ‘사회적 기술’ 블록체인의 가능성을 논하다
출판가는 요즘 뜨는 키워드를 정확히 포착하는 업계다. 치열하게 트렌드를 읽고 사람들의 지적 욕구를 채워줄 결과물(책)을 내놓는다. 2017년 말 그리고 2018년 초, 출판가는 ‘블록체인’에 주목했다. 암호화폐 투자 열풍이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서점가에 관련 서적이 쏟아진 것. 초반에는 비트코인 열풍에 발맞춘 ‘암호화폐 투자 지침서’ 성격의 책이 서점 가판대를 장식했다. 이후 블록체인 기술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개발자를 위한 기술 개발서가 모습을 드러냈다. <블록체인 거번먼트 :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은 이 수많은 블록체인 관련 서적 중 눈에 띄는 제목이다. 얼핏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블록체인’과 ‘거번먼트’를 병렬로 내세운 얼굴을 하고 독자를 잡아끈다.
‘거번먼트’를 키워드로 풀어낸 블록체인 기술비평
블록체인 관련 서적 중 개발자를 위한 책이 아닌 대중서를 놓고 보면 대개 논의의 폭을 넓게 가져간다. 블록체인 개념설명과 도입 사례, 투자 방법, 기술의 가능성까지 두루 논한다. 이런 책들은 개념을 파악하기에는 좋지만 논의의 폭이 넓은 만큼 한 분야를 잡고 힘 있게 파고드는 맛이 부족하다. 이런 점에서 <블록체인 거번먼트>는 ‘블록체인’과 ‘거번먼트(정부)’라는 두 키워드를 내세워 깊이 있는 블록체인 기술비평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블록체인 거번먼트>의 저자 전명산은 책의 초반부에 “이 책에서 왜 블록체인과 정부의 조합이 환상적인 궁합인지 실질적인 사례와 이론적인 근거를 들어 구체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라며 책의 논지를 밝힌다. 이후 그는 정부를 블록체인 혁명의 주요 플레이어로 소환한다.
블록체인 관련 논의에서 거번먼트는 대개 ‘규제’ 맥락에서 등장한다. 특히 암호화폐 투자 과열을 우려한 규제 당국의 움직임이 ‘블록체인 혁명을 주도하는 민간영역’과 ‘그 대척점에 서 있는 정부’ 구도로 비치기까지 하는 국내 상황에선 이 경향이 보다 짙다. 이런 일반적인 맥락과 달리 저자는 정부에 블록체인 혁명의 주요 플레이어, 나아가 변화를 모범적으로 이끌 역할을 부여한다.
저자는 블록체인에 대한 핵심적인 개념설명에 이어 바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블록체인을 정부 시스템에 도입한 (혹은 도입하려는) 사례를 소개한다. 에스토니아의 블록체인 기반 주주투표 시스템, 블록체인으로 연금 관리와 핀테크를 관리 하려는 영국 정부, ‘블록체인 도시’를 건설하려는 중국 정부 등. 여러 나라 정부의 사례를 톺아보며 각 사례에 대한이해는 물론 미래 정부의 모습을 상상해볼 기회를 준다
‘사회적 기술’ 블록체인의 가능성
책은 각국 정부의 사례를 나열한 ‘챕터 1. 정부, 블록체인을 만나다’ 이후 본격적으로 “왜 블록체인과 정부의 조합이 환상적인 궁합인지, 이론적 근거”를 설명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사회적 기술’이다. 저자는 “사회적 기술은 법, 제도, 화폐, 도덕규범 등 사회를 지탱하고 유지하는 체계”라고 말한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넬슨(Richard Nelson)의 정의를 기초로 논지를 펼친다. 이어 블록체인을 “정치가 결합된 기술 혹은 기술이 결합된 정치”라고 역설한다.
그 근거를 좀 더 들여다보자면 이렇다. 기술의 발달사는 ‘인간’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은 전혀 다른 특징을 보인다. 블록체인 네트워크는 ‘인간’의 개입이 있어야만 돌아간다. 블록체인을 달리말하면 ‘합의 알고리즘’(Consensus Algorithm)인데, 이 합의의 주체가 인간이다. 이같이 기술의 발전사, 특히 21세기 기술의 발전사에서 이례적인 블록체인의 등장은 기술과 인간을 잇는 지점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블록체인은 ‘다수의 합의’라는 사회적 기술을 활용하여 ‘위ㆍ변조 불가능한 데이터를 저장’하는 물리적 기술 즉 신뢰를 제공하는 기술을 구현한 것이다.” - <블록체인 거번먼트> 110p 발췌
저자는 이 특수성이 블록체인을 ‘인류 역사상 등장한 세 번째 신뢰 보장 장치’ 로 만든다고 논의를 펼친다. 앞선 두 개의 신뢰 기계는 ‘평판 시스템’과 ‘국가’이다. 국가는 ‘법’을 원칙으로 작동하는 신뢰 기계인데 법에 의거한 국가의 작동은 늘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정부라는 사회운영 인프라를 위임받은 대리인들이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가능성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할뿐더러 법의 위반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있기 때문이다. 반면 블록체인은 “국가가 담보하던 수준의 신뢰를 익명의 다수가 참여하는 P2P 네트워크가 제공할 수” 있게 한다. 요약건대, 저자가 논하는 ‘블록체인 정부’는 현시점에서 통용되는 정부의 개념과 역할이 일정 부분 해체된 형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블록체인,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의 가능성을 열다
저자 전명산은 이어 블록체인 기술로 말미암은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일명 ‘자ㆍ개ㆍ연’의 가능성을 점친다. 자ㆍ개ㆍ연은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이론에 등장하는 개념으로,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까지의 혁명이론에서 뜬구름처럼 부유”하는 것이자 “자기조정 시장을 숭배하는 리버테리언들이 꿈꾸었던 이상”이다. 저자는 책에서 “블록체인 진영에서 제시하는 분산자율조직(DAOㆍDistributed Autonomous Organization)이 자ㆍ개ㆍ연의 21세기 버전”이라고 일컬으며 이것이 자신이 블록체인 기술에 흥분하는 이유라고 한다.
책에 제시된 자ㆍ개ㆍ연의 메시지를 옮기자면 이렇다.
“첫 번째, 자유로운 개인이란 신분이나 계급 혹은 어떤 위계적 틀에 구속되지 않는 자율적인 개인을 의미한다. 두 번째, 개인들은 고립된 존재로 살아가지 않는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며 살아간다. 자율적인 개인들은 그들 스스로의 필요와 요구로 자생적인 조직(연합)을 형성한다. 또한 그들은 자율적인 주체이기에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조직을 떠날 수 있다. 물론 이때의 자유는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전제로 한다. 책임지지 않는 자율이란 타인의 자율을 해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은 각자가 지리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독립하여 존재하는 ‘분산’된 환경에서 그들 스스로의 필요와 요구에 의해 ‘자율’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개인들의 연합 혹은 ‘조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분산자율조직’이다. 블록체인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 중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분산자율조직이 실현 가능하다는 것이다. (후략)” - <블록체인 거번먼트> 192p 발췌
사실 <블록체인 거번먼트>를 읽기 전부터 필자의 머릿속에 떠돌던 개념이 바로 ‘자ㆍ개ㆍ연’이다. 평소 ‘자ㆍ개ㆍ연’에 대해 들어본 사람이라면 탈중앙ㆍ분산화된 시스템 안에서 모든 참여자가 자율적으로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시스템을 이뤄 나간다는 블록체인 생태계의 특징에서 자연스레 자ㆍ개ㆍ연을 떠올릴 것이다. 그렇다고 블록체인이라는 ‘기술’과 마르크스 이론에 등장하는 ‘사상적ㆍ이상적 개념’이 이어진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논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섣불리 논증하려 들었다간 ‘기술과 사상을 연결 짓는 것은 너무 나아간 해석’이라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 그런데 저자 전명산은 책에서 사회적 기술, 관료제, 신뢰 기계 등 이야기를 탄탄하게 푼 후 ‘자ㆍ개ㆍ연’을 꺼내들며 노련하게 논증을 끌고 나간다. 필자가 책을 읽으며 가장 즐거움을 느낀 대목이 자ㆍ개ㆍ연이 등장하는 ‘챕터 5. 블록체인 혁명’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블록체인 거번먼트를 위한 5 원칙
저자 전명산은 <블록체인 거번먼트>의 말미에 블록체인 기술을 제대로 도입하기 위해 유념해야 할 다섯 가지 원칙을 제시/제안한다.
원칙 1 : 블록체인 성문법 – 실제 현실에서 작동하는 블록체인 기반의 성문법을 구축한다.
원칙 2 : 투명한 공개 – 정부에서 사용할 블록체인 기술과 그 구현체들 역시 해당 소스를 완전히 공개한다.
원칙 3 : 자동화된 프로세스 – 위ㆍ변조할 수 없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자동화된 정부 프로세스 구축한다.
원칙 4 : 직접민주 거버넌스 – 블록체인에 내재된 철학인 직접민주제 지향한다.
원칙 5 : 분산자율정부 DAG(Distributed Autonomous Government) -공동체의 사회운영 인프라로서 직접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정부, 자율적으로 의사결정하고 집행하는 공동체의 정보처리 기계로서의 정부 시스템 구축한다
저자의 위와 같은 제안은 충분히 깊이 논의해볼 만하며, 현실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가 마지막 챕터인 ‘챕터 7. 과제들’에서 설명했듯, 기술적 문제 등 여러 과제가 남아 있다.
공공 분야의 ‘블록체인 혁명’은 이제 시작하려 한다
필자는 <블록체인 거번먼트>가 공공 분야 블록체인 혁명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 책을 읽고 정부와 블록체인 기술이 환상적 궁합을 이룬다는 주장에 대해 토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업계 일각에서는 '블록체인 혁명'이라는 게임에 정부가 플레이어로 참여하는 것은 게임의 공정성 측면에서 부적절하다는 시각도 있다. 논의할 지점은 수없이 많고 그만큼 가능성을 타진할 여지도 많다.
만약 저자가 이야기하는 ‘블록체인 거번먼트’의 가능성에 공감한다면 그 다음으로는 어떤 블록체인 거번먼트가 바람직할지, 이를 위해 풀어야 할 과제들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로 뻗어 나갈 수 있다. 이 논의에서 역시 <블록체인 거번먼트>가 좋은 길라잡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블록체인 업계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쪽에선 한 달이 일 년’이라는 말을하곤 한다. 그 정도로 발전과 변화가 빠른 분야다. 가까운 미래, <블록체인 거번먼트>를 다시 읽었을 때는 또 어떤 변화가 있었고,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해진다.
-written by 한수연
지금 한창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이네요. 시중에 나온 블록체인 기술해설서 또는 돈벌이로서의 가상화폐 관점의 책들에 비해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블록체인이 몰고올 변화에 대한 이야기라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 같은 느낌이네요.
@absolutefive 님 도 읽고 있으시군여! 공공부문으로 논의를 집중해서 아주 좋더라구요
좋은 서평 고맙습니다.
읽어보니「블록체인 혁명」(돈 탭스콧•알렉스 탭스콧)보다 '(블록체인 거버먼트」가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전자는, 블록체인의 영향에 대한 같은 내용을 산발적으로 흩어놔서 조금 불만이었어요. 책 주제를 '거버먼트'에 집중한 점이 마음에 드는군요.
혹시,
블록체인 기술
자체를 설명하는 부분이 꽤 되나요? 「블록체인 혁명」의 아쉬운 점 중 하나가 기술 설명이 없던 점이라서요.(태그에 kr-book을 추가하시면, 한국 스팀잇 서평 모음에 올려져요...! 많이 공유되면 좋겠는 서평이라서 남겨봅니다 :D)
@mif1907 님이 말씀해주셔서 태그에 kr-book 추가했습니다. 감사해요!
「블록체인 혁명」을 읽으면서 저도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게 의외이면서도 아쉽더라구요. 제가 지금 책이 옆에 없어서 정확히는 다시 확인은 못했지만, 「블록체인 거번먼트」에는 기술 설명도 꽤 나와요!
이 서평보고 읽어보고 싶어서 책 구입했습니다 :)
@pangol 앗 ㅋㅋㅋㅋ 읽어보시고 더 좋은 서평 부탁드려여!
크으~!!!! 보팅과 리스팀을 부르는 콘텐츠네요!
"이쪽에선 한 달이 일 년"이라는 말이 참 와닿습니다.
좋은 글 고마워요! 저도 블록체인 관련 책 읽고 있는데,
어서 리뷰 콘텐츠 만들어봐야겠네요!
@book.habit님 안녕하세요 :) 오호 리뷰 콘텐츠 기대할게요 :)
서평 잘 읽었습니다. 블록체인 관련 다른 서적 추천해주실 것들이 좀 있을까요?
@armdown 님 안녕하세요. 제가 책을 추천할 정도로 많이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리디북스가 내놓은 블록체인×비트코인 인사이트 1~5 편이 가볍게 읽기 좋은 것 같습니다. 게다가 무료입니다. 기술서로는 Mastering Blockchain 추천을 많이 하시더라구요. 저도 발췌독 하고 있는 책입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배우겠습니다.
@armdown 님 저도 앞으로 많이 배우겠습니다 :) :) 저도 철학에 관심이 많아요 !! 집에 철학서도 한가득 있는데 아직 소화를 다 하지 못하고 있네요 ㅎㅎ 앞으로 armdown님의 글들을 길라잡이 삼아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