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나라 이벤트
탁~,탁~...탁~
굽 닳은 구두 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가르고, 요즘들어 부쩍 새벽잠이 없어진 명자는 이불 속에서 빼꼼이 시계를 바라본다.
3시 25분, 평상시보다 귀가가 늦은 옥탑방 처녀 옥이의 구두굽 소리다.
'미친년 구두굽이나 갈지. 그 돈다 벌어 뭐한다고. 이 새벽에 저런 요란한 소리를 내 민폐를 끼치네!' 사실 그녀의 구두 소리는 자정부터 내리던 세찬 빗소리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의 발자국 소리인지 알 수 있는건 이 빌라에 사는 구성원 한명 한명에 대한 명자의 지대한 관심 때문이다.
/ 20여년전 그 날 역시 억세게 비가 퍼붓고 있었다. 장군이를 업은채 이리저리 비를 피하던 명자의 눈에 새로 지은 빌라가 눈에 들어왔다. <동화나라> 빌라.
딱히 갈곳도 없던 명자는 현관 입구에서 잠시 사나운 비를 피할 요령이었다. 비는 현관문 앞까지 들이쳤고 그 기세에 눌려 뒷걸음 치다 현관문이 잠겨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들이치는 비바람을 피하기 위해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더군다나 자신의 등 뒤에 업은 장군이 때문에라도.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서자 독한 페인트 냄새가 확 밀려왔다.
명자는 유리문으로 스며드는 캐노피의 전등을 의지해 스위치를 찾았다. 다행히 큰 현관문 옆에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켜자 내부가 환하게 밝았다. 공사는 완공했는데 여기저기 쓰레기 더미와 먼지들이 아직은 사람들이 입주를 하지 않았음을 말해 주는듯 했다. 처음에는 입구에서 비만 피할 생각이었는데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면 좀 더 좋은 자리가 있을거 같았다. 어짜피 이 비바람에 남아 공사를 할 사람도 없을 거 같아 조심스럽게 살피며 안쪽으로 발을 옮길려던 찰나 등에 업은 장군이가 인기척을 낸다. 아까까지 곤히 잠들어 있던 녀석이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칭얼대며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에이구,내새끼 쫌만 기둘려라 엄마가 젓 줄께" 업은 아이를 한번 추스리고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1층 첫번째 집의 현관의 손잡이를 흔들었다. 역시 닫혀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이런 새 집의 단속을 소홀히 할 리가 없지' 장군이가 아까 보다는 더 심하게 버둥거린다.
"오야!오야! 배 고프지 쫌만 참아라" 아무래도 배가 많이 고픈가 보다. 명자는 기대 반 포기 반 하는 심정으로 옆 집의 문을 슬쩍 돌려 보았다.
그런데 스으윽 손잡이가 돌아간다. 다행히 잠기지 않은 모양이다. 그 손잡이를 돌릴때 명자는 잠시 망설였다.그순간 명자는 아주 잠깐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그건 일종의 두려움
인것 같기도 하지만 알 수 없는 운명의 문을 여는것 같은.../
옥이가 옥상으로 올라가기 위해선 명자의 방을 지나쳐야만 한다.그녀는 될 수 있으면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신발을 벗어 든다.아까 마신 폭탄주로 머리가 어지럽고 구역질이 났지만
꾹 참고 조용히 지나가려 한다. 술기운에 까치발을 하니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거리며 남은 계단을 다 올라설 즈음 명자의 날카로운 한마디가 옥이의 목덜미를 잡는다.
"월세는?" "어제 준다더니 도둑 괭이 처럼 살금거리네"
"아이, 아줌마 하루밖에 안 밀렸어! 주인도 아니면서 꼭 그렇게 해야 돼?!"
"내가 딸 같아서 하는 말인데 사람은 신용이 있어야 돼. 그래야 어디 가서 대접받고 사람 구실도 하지"
"아니거든,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야돼.돈 많은 놈을 물어야 팔자를 고치지"
옥이가 옥탑방의 문을 여는 동안에도 명자의 지청구는 계속 되었다.
"팔자를 고쳐? 팔자가 고장난 세탁기냐 고쳐쓰게 타고난 팔자는 못 고치는겨 글구 돈 많은 놈이 뭐가 아쉬워 너랑 결혼 하겠냐! 단물만 빨아 먹고 버리지"
옥이가 방안의 비밀 장소에서 현금을 꺼내 건네며
"내가 고치면 어쩔건데?"
"아서라!그러다 탈난다" 돈을 세면서 "근데 왜 2만원이 비는겨?"
"하루 늦었다고 벌금을 10%나 붙이는 사람이 어딨어? 고리대금업자야? 피도 눈물도 없어"
"너 1층 입구에 동화나라 빌라 규칙 봤어 안봤어? 거기 뭐라고 써 있어?"
"동화나라 빌라규칙 1. 월세, 공동전기세, 수도세등은 정해진 날짜에 밀리지 않고 납부한다
만일 제 날짜에 내지 않고 밀리면 하루 지날때마다 원금의 10%를 연체료로 낸다.
2. 공동 주거 공간은 내거 같이 깨끗하게 사용한다.
"아~ 알았어. 지금은 없고 다음에 줄께"
"다음 언제?"
"내일. 내가 줄때까지 퇴근할때마다 쫒아 올라 올거잖아. 내일 준다고"
"나이먹은 내가 또 여기까지 올라와야 하잖아, 에고 요샌 나도 예전같지 않아 여기 오르락 내리락 하기도 힘들다구"
"알았어. 낼 마사지 크림 좋은 걸로 줄께. 아껴써야 해"
금새 명자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것아 여자는 돈 많은 남자보다는 자기를 사랑 해주고 이뻐해 주는 남자를 만나야 팔자가 편한겨. 콩나물국 시원하게 끓여 놓을 테니까 내일 아침에 해장하러 와"
"콩나물.. 북어 대가리라도 좀 넣지 어떻게 한결같이 콩나물 대가리 뿐이냐"
"북어 대가리나 콩나물 대가리나 다 같은 대가리인데 배 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지. 그것도 감지덕지지"
"에구 황송할 따름입니다"
명자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자기를 사랑해 주는 평범한 남자를 만나 사는게 얼마나 힘든지를..
4층과 옥상을 연결하는 계단은 유독 가파르다. 젊은 옥이에겐 별 문제 없지만 명자에게 조심스럽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두려움이 무게 중심을 뒤로 쏠리게 해서 자세가
엉거주춤 해진다. 이렇게 비가 뿌리는 날은 넘어지기가 더 쉽다. 반쯤 내려 왔을때 갑자기 소리가 들렸다. 분명 명자의 방 안에서 나는 소리다.
계속 이어지는 소설인가요? 기대하며 기다리겠습니다! 문학적인 글에는 kr-pen 태그를 활용해 보세요.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스티머들의 유입을 기대하실 수 있습니다. 팔로 보팅하고 갈게요!
아하~그렇군요!! 좋은 정보 주셔서 고맙습니다.^^ 글구 다음 회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