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Life]미국 동남부는 한국의 TK 인가?

in #kr-overseas6 years ago (edited)

(아래의 글은 애틀랜타 및 북부 조지아 주에서의 경험을 근거로 작성하였기 때문에 미국의 다른 지역에서는 다를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번 포스팅은 이곳 주민들의 정치적 성향에 관한 내용입니다. 사실 제가 특별히 정치에 대한 지식이나 식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기서 직접 겪은 일들을 쓰는 것은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올려봅니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저는 사실 TK를 직접 경험해보지는 않았습니다. 딱히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살아보거나 학교를 다녀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TK라는 지역이 한국 정치에 있어서 소위 '보수'의 아이콘과 같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거 과정에 있어서 TK 지역의 표심, 정당 지지율 등에서 나타나는 민심을 보면 분명한 '경향'이 보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런 의미의 TK를 이용해 제목을 지어봤습니다.

그리고 제가 미국 남부가 아니라 특별히 '동'남부를 예로 든 것은, 이쪽이 정치적으로 어떤 특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현재 제가 이곳에 살고 있고 주로 경험을 한 지역이 이쪽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TK가 한반도 동남부에 있다는 지리적 유사성을 염두 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제가 얘기하려는 이곳의 정치적 분위기는 미국 남부의 공통적인 분위기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장면 1, 애쉬빌의 첫인상

얼마 전 미국 독립기념일 연휴를 맞아 노스캐롤라이나 주 애쉬빌이라는 작은 도시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참고로 노스캐롤라이나 주는 제가 사는 조지아 주와 함께 미국 남부에 속하는 주입니다.

애쉬빌에 도착해서 주차를 하기 위해 일단 시청 앞 주차장으로 갔습니다. 시청 앞 분수대에서는 아이들이 신나게 물놀이를 하면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고, 부모들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었습니다. 전형적인 휴일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 차 앞으로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한 무리가 지나가더군요. 그들은 한 10명 정도 되었는데, 대부분 마치 할리 데이비슨 동호회 회원처럼 가죽 재킷에 부츠를 신고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군복 비슷한 카키색 옷을 입었습니다. 저마다 크고 작은 성조기와 남부 연합기를 들고, 성조기를 연상케하는 두건도 두르고 있었는데, 정말 특이한 것은 자신들이 트럼프 지지자임을 드러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Trump is my president.'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더군요.

무리에는 백인 성인 남성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젊은 자녀들로 보이는(10대 혹은 20대 초반) 사람들도 있었는데, 아마 무리 중에 일부는 가족이 단체로 나온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느꼈는데, 나중에는 조금 무섭더군요. 제가 여기선 소수 인종이고 이민자라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만일 제가 차에 있지 않고 저 사람들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면 저 사람들이 저를 둘러싸고 '당장 네 나라로 꺼져!'라고 위협할 수도 있었겠다 싶더군요.

독립기념일이니 성조기를 들고 다니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이고 실제로 그런 사람들을 여럿 보기도 했는데, 저렇게 위협적인 차림새를 하면서 자신들이 특정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표현을 하는 모습은 연휴를 즐기는 가족들의 모습과 너무나 이질적이고 부자연스러웠습니다. 이것은 마치 광복절 한낮에 분당구청 앞 공원에서 가족들이 휴일을 보내고 있는데, 한 무리가 갑자기 태극기와 함께 '박근혜 대통령님, 사랑합니다!'라는 팻말을 들고 태극기 집회를 하는 모습이랄까.

미국 시민권자인 제 아내도 저런 모습은 처음 본다며 자기가 알던 애쉬빌은 이런 동네가 아니었는데 이상하다고 하더군요.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영어에 redneck이라는 표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영영 사전을 보면 'a poor White person in the southern United States'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즉, 미국 남부의 가난한 백인 노동자를 폄하하는 말인데, 밭에서 일하는 백인 농부의 목이 햇볕에 빨갛게 탄 모습에서 유래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을 단지 정치적 성향에 따라 범주화하고, 일반화하면서 편을 가르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redneck'이라는 단어가 그냥 생기지는 않았겠지라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무튼 여행을 위해 방문한 애쉬빌의 첫인상이 좀 씁쓸했습니다.

#장면 2, 남부연합기

미국에서 남부연합기라고 하면 남북전쟁 당시 남부 군의 일부가 썼던 깃발인데, 남북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남부연합의 상징이 되었고 여러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오늘날에는 노예제도나 인종차별을 의미하는 상징으로 쓰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VOA 기사를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https://www.voakorea.com/a/28343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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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업트럭에 성조기+남부연합기라면.... 운전자가 어떤 사람인지 감이 옵니다.)

쇼핑몰 주차장에서 독립기념일 불꽃놀이를 구경하고 차가 빠지길 기다리는 중에, 제 차 앞의 앞에 차에 깃발을 하나 꽂았는데 보니 성조기와 남부연합기를 합친 깃발이었습니다. 즉, 깃발의 왼쪽 절반은 성조기인데 오른쪽 절반은 남부연합기인 것입니다.

제가 사는 동네 근처에서까지 이 남부연합기를 보게 되다니.... 일부의 잘못된 행동이라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쉽게 잊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장면 3, 트럼프 스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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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힐러리 스티커는 보지 못했습니다만, 샌더스 스티커를 본적은 있네요.)

이곳 사람들은 자기 차 뒤에 스티커 붙이는 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 팀의 로고를 붙이기도 하고, 자기 자녀가 University of Georgia에 다니면 'UGA mom' 스티커를 붙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운전하다 보면은 아주 가끔 앞 차에 트럼프 스티커가 붙어 있는 걸 보게 됩니다. 이곳 조지아는 미국 남부에 속하는 지역으로 전통적으로 공화당이 강세인 지역입니다. 2016년 대선 결과를 보면, 애틀랜타 및 일부 카운티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트럼프를 지지했습니다. 이곳의 정치적 성향을 보면서 한국의 TK를 떠올린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얼마 전 있었던 조지아 주 6지구 연방 하원의원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예비투표에서 1위를 했으나 결선투표에서 공화당 후보에 약 3% 차로 낙선한 것입니다.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 이러한 변화의 흐름이 실제로 민주당 후보의 당선이라는 결과로 나타날지 궁금해집니다.

#마치며....

제가 사는 이곳은 전통적으로 공화당이 우세인 지역이니 트럼프에 대한 지지는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이민자들에 대해 차별과 혐오를 거침없이 표출한 트럼프의 당선이 이를 지지하던 사람들에게 '나도 저렇게 해도 되겠구나.'라는 메시지를 준 것이 아닐는지.... (Not so) United States of America는 과연 어디로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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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메릴랜드에서 아직 남부연합기를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버지니아 정도가 북방한계선이 아닐런가 싶습니다. 뭐 역사적으로도 버지나아까지가 남부군에 속했었죠. 물론 여기도 도시 외곽을 벗어나 조금 더 시골로 들어가면 트통령 광고 천지입니다. 생각보다 꽤 많아요. 민주당 지지하는 사람들은 좀 조심스럽게 지지하는데, 트통령쪽 사람들은 대놓고 지지하는 모양새더군요.

이쪽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성조기 달듯이 집 앞에 달아논 것도 봤고, 픽업트럭 앞 번호판자리에 남부연합기를 붙인 경우도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