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노(noino) 이야기: 감옥에서 키운 잉카의 난초

in #kr-pen6 years ago (edited)

그는 그 귀한 노이노를 춘장에 찍어 먹었다. 모두 긴장한 채 그를 곁눈질하며 침을 삼켰다.
몇 초가 무겁게 흘렀다. 이윽고 고개를 든 그는 감방 식구들을 둘러 보았다.

1. 추억

여럿이 어울려 술자리를 할 때면 문득 떠오르는 선배가 있다. 못 본 지가 꽤 여러 해 되었다.

그는 아직 교도소에 있을 것이다. 벌써 한 6년은 됐지 않나 싶다.

어떤 선배였던가? 박사과정을 마치고 논문 발표를 앞둔 그 선배. 의리 있는 사람이었다. 운동도 아주 잘 했고 매우 학구적이었다. 열 일 제치고 후배들의 공부, 논문에 조언을 아끼지 않는 선배. 전형적인 촉망받는 소장학자였다고 할까?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전공이 자연과학 분야라는 것만 밝힘.)

성격이 좀 급한 것이 흠이긴 했다. 하지만 짜장면도 잘 사주는 그를 후배들이 많이 따랐다.

학부/대학원생들이 어울려 한바탕 축구를 하고 난 뒤 교문밖 호프집에서였다. 여느 때와 같이 그 선배도 후배들과 술자리에 어울리고 있었다.

잔이 몇 순배 돌고, 새로운 토론 주제가 나오면서 술자리는 한껏 달아 올랐다.

"가치란 무엇인가?"

그 주제를 처음 제시한 것은 그 선배였지만 나중엔 후배들끼리 서로 치고 받으며 '개싸움 토론'을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안타깝게도 이 선배의 잔이 빈 채로 꽤 오래 방치되고 말았다. 참다가 참다가 결국 이 선배가 폭발하고 말았다. 옆에 있던 후배를 쳤다. 그저 주먹으로 '툭'.

"임마, 내 술잔 비었잖아!"

정말 운이 없었던 것이겠지. 그 후배는 뒤로 넘어져 기둥 모서리에 머리를 찧고 말았다. 뇌출혈이었다.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심한 후유증으로 아직까지 재활 치료 중이라고 한다.

그 선배는? 재판 중 검사에게 괜히 대들었다가 실형을 받았다. 괘씸죄였을 거다. 2년형? 3년형?

2. 교도소에서

대체로 인품이 좋은 그 선배는 교도소 생활에 바로 적응해 모범적으로 잘 지냈다고 한다. 2년 가까이. 그러던 어느날 점심 배식으로 짜장면이 나왔다. 불어터진 짜장면.

여기서 또 일이 벌어졌다. 이번엔 하필 옆에 있던 감방 후배가 피해자가 되었다.

"왜 내 거엔 양파가 없어?"

그 선배 짜장면엔 단무지밖에 없었던 것이다.

얼마나 세게 맞았는지 감방 후배는 그 자리에서 실려 갔다가 절차를 거쳐 잔여 형기가 면제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출소하면 뭘하나? 아직 누워 있는 모양인데.

그 선배는? 폭행으로 형기가 추가되었다. 몇 년? 거기까진 모른다. 누범이라서 가중처벌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3. 최고급 난초

남미 안데스 산맥 서부 고산 지대에 아주 특이한 난초가 자란다. 이 난초는 깎아지른 절벽 중턱에 있는 게 대부분이어서 찾기는 물론 채집하기도 간단하지가 않다. 값은 당연히 하늘을 찌르겠지.

이베이(ebay.com) 같은 곳에 가끔 이 난초 구근이 나오는가 본데 정확한 낙찰가는 모른다.

이 난초 이름은? 노이노! 노이노가 어떤 난인지 차분히 알아 보자.

먼저 구근이다. 구근의 겉모습은 동그랗고 매끈한 편이다. 노이노 구근 사진을 보라. noino_revnoino-phSnoino.jpg어떤가? 마치 양파 같지 않은가? 정말 양파를 빼 박았다. 허허...

이 구근을 심어 서늘한 곳에 두고 물을 주면서 잘 관리하면 싹이 나온다. 뾰족하게 솟아오르는 촉! 정말 기품있는 싹이다. 역시 귀한 난초답다.

그런데 양파를 길러본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 양파 싹도 처음에 비슷하게 자란다는 것이다. 같잖은 소리다.

자, 이젠 꽃이다. 다음 사진을 보라. 이것이 노이노 꽃 사진이다. noino flower.jpg

"우주를 꿈꾸는 듯한 품위 있는 노이노 꽃!"

들여다 보면 볼수록 빠져들지 않을 수가 있겠나? 여름 밤, 별 쏟아지는 하늘을 보는 듯하다.

여기서 또 양파 농사꾼들이 나선다. 그들은 한결 같이 노이노 꽃이 양파 꽃하고 비슷하다는 거다, 참.

"도대체 어디다 갖다 대는 거냐?"

그러고 보면 양파도 대단한 식물이다. 이런 희귀한 고급 난과 비슷한 꽃이 핀다니.

4. 난초를 키우는 재소자

노이노 구근 하나가 감옥에 있는 그 선배 손에 들어갔다. 몇 년째 옥바라지를 하고 있는 약혼자가 어렵게 구해 줬다던가? 그 외에도 여러 설이 있으니 꼭 믿을 이야기는 아니다.

학구적인 이 선배가 열심히 연구해 키우며 몇 해를 번식시킨 결과 교도소 안에 이 고급난이 수월찮이 퍼지게 되었다. 차츰 포대로 쌓여 가는 노이노 구근. 선배 마음이 얼마나 뿌듯했을까?

그러나 막상 판로가 문제였다. 국내에 워낙 알려지지 않은 데다 감옥에 있다 보니 적극적인 마케팅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다.

구근 포대가 쌓여 가는데 팔지를 못하는 거다. 교도소 사람들은 차츰 노이노의 가치에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노이노가 그렇게 비싼 거 맞아?"

5. 다시 짜장면

배식으로 다시 짜장면이 나온 어느날, 응당 있어야 할 것이 보이지 않았다. 양파 파동이었나? 나온 건 누런 단무지 뿐. 선배의 과거를 아는 감방 후배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필요는 아이디어를 낳는 법! 한 사람이 꾀를 내었다. 뭐였겠나?

굴러다니는 노이노 구근을 급히 뜯어서 그 선배의 짜장면에 올린 것이다. 선배는 그 귀한 노이노를 춘장에 찍어 먹었다. 모두 긴장한 채 그를 곁눈질하며 침을 삼켰다. 몇 초가 무겁게 흘렀다.

이윽고 고개를 든 그는 감방 식구들을 둘러 보았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역시 짜장면에는 양파지!"

그날 이후 감방 식구들은 노이노의 가치를 칭송하게 되었다.

노이노가 없었으면 어쩔 뻔 했어? 우리 중 적어도 한 명은... 그래, 정말 값진 식물이고말고."

한편 그 교도소에서는 더이상 양파 따위를 식재료로 구입하지는 않았다.

-끝-

뒷이야기

사실 그 난초 이름이 외래어표기법으로 어떻게 적어야 할지는 불분명하다. 인터넷에서 찾아 봐야겠다. 한국어 사이트에서 찾기는 어려울 것 같고 아무래도 영문 사이트를 검색해야 할 것 같다. 아니면 스페인어?

"'noino'로 찾으면 되려나? 아니면 뒤집어야 하나?"

귀중한 생활 정보

노이노에는 피부에 좋은 비타민뿐 아니라 혈액을 정화하는 성분도 들어 있다. 피가 맑아지면 혈액순환이 잘 되어 자연히 피부도 고와지는 거다. 역시 잉카의 귀한 난초는 다르다. :)

또 노화물질인 활성산소 발생을 억제하는 성분이 풍부해 피부 노화를 막고 잔주름을 예방해준다. 그러나 얼굴이 따끔거리면 바로 닦아 내야 한다. 민감한 피부에는 권하지 않는다.

효능은 뛰어나다지만 잉카시대에도 소수 귀족과 왕족들만 사용했다는 그 귀한 노이노를 어떻게 약용으로 쓴다는 말인가. 우리가 땅콩족이냐?

기뻐하라! 여기 소식을 전한다. 다행히 그리고 또 지나치게 우연히도 비슷한 효능을 가지고 있는 식물이 있다. 땅콩과물컵족이 아니어도 저렴하게 확보할 수 있는 식물.

바로 '양파'다. 글쎄 양파의 약리효과를 찾아봤더니 거의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양파를 이런 용도로 썼다고 해서 누가 당신에게 뭐라겠나?

noino_rev20180424_144529.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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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zcraft님 안녕하세요. 여름이 입니다. @floridasnail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양파군요
양파였어요~
팔로 꾸욱~❤즐거운 하루되세요🍀

이글의 주제는 '양파의 가치'인 것 같네요 ㅎㅎㅎ
@홍보해

아무래도 글쵸?? ㅎㅎ
'가치의 허상'을 생각하며 쓴 글이지만 결국 '양파의 가치'가 된 듯합니다.

참 noino가 뭔지는 아셨죠?

네, 로꾸꺼 아닌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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