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맨과 와스프>를 보고 난민 문제를 생각함: 어느 철학과 대학원생의 수기 #010
<앤트맨과 와스프>를 봤다. 나는 이 영화가 인간적이어서 다른 히어로 영화보다 마음에 든다. 아이언맨은 생판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을 구하려고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전혀 알지 못하는 우주 생명체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그런데 앤트맨이 관심 있는 것은 무탈히 가택연금 기간을 보내서 자신의 딸과 집 밖을 놀러 다니는 것뿐이다. 와스프 역시 예전에 잃어버린 엄마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악당 또한 지구 정복 같은 거창한 이유로 나쁜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단지 자신의 고통을 멈추고 싶어서 문제를 일으키고 다닌다.
앤트맨이 아이언맨처럼 자신과 가깝지 않은 사람까지 모두 아끼지 않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나에게 가까운 사람을 더 사랑하는 것은 정말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 동생과 생판 모르는 사람이 같은 위험에 처했다면 당연히 동생에게 손이 갈 것이다. 가까운 사람조차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정말 잘못된 것이다. 자신의 딸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인류를 사랑할 수 있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남을 사랑하는 이야기를 하니 난민 문제가 떠오른다. 얼마 전에 난민을 받아들이지 말자는 사람들을 미개하거나 덜 배웠다고 치부하는 글을 봤다.
내가 부모를 모시고 있다고 가정하고 우리 집 앞에 생판 모르는 남이 도움을 요청한다면,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에게 구호의 손길을 보내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할지라도, 나는 내 가족의 안위가 먼저 떠오를 것 같다. 만약 내 자식이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주장하며 덜컥 문을 열어준다면 나는 저놈은 애미애비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구시렁거릴 거다.
가까운 사람이 되었든 생면부지의 사람이 되었든,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하기 위해 누군가를 구호하는 행동이 과연 선한 의도로 이루어진 것인지도 생각해볼 문제다.
어쨌든 나도 내가 속한 나라가 가능한 한에서 국제 사회에 인도적 차원의 기여를 했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도와주는 나라에 속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난민을 수용하지 말자는 사람들도 내 생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도 그들에게 가까운 사람들을 아끼는 마음에서 난민 받아들이기를 꺼리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반대 의견 덕분에 점진적이기는 하지만 신중히 대처해서 결과적으로는 더 큰 인류애를 실현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미개하다고 치부하고 계몽의 대상으로 보다니.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난민 문제를 말할 자질을 갖추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그리고 난민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정말 미개하고 덜 배웠다고 치자. 이런 사람에게 진실을 알려주는 것이 얼마나 좋은 효과를 발휘할지 의문이다. 같은 사회 구성원인 것을 피할 수는 없으니 적당히 얼러야 합의를 이룰 수 있는 것 아닌가? 덜 배웠으니 가르쳐야 하는 대상이라고 쳐도 그렇다. 스파르타 유치원을 나온 것도 아니고 어떻게 난민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 미개하다는 말이 튀어나오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