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과학] 사람의 감정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이번에는 조금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저번 딥러닝에 대한 글에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지만, 사실 제가 주로 공부하는 분야는 사람과 관련된 분야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외부의 환경을 인지하고 그에 대해 반응하고 학습하고, 그 결과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정량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저의 주된 관심사입니다.
그 중에서도 감정은 아주 강한 인지 반응 중 하나로, 우리의 행동 뿐만 아니라 심신상태, 사회적 관계 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랫동안 연구되어온 분야이기도 하지요. 이 감정을 정의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이 글에서는 고전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두 가지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방법은 감정을 기본 감정(basic emotion)으로 나누어 이해하는 것입니다.
Ekman은 사람의 감정을 표정을 통해 분석한 것으로 저명한 학자입니다. Ekman이 다양한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표정을 기반으로 정의한 6가지 기본 감정은 분노, 혐오, 공포, 행복, 슬픔, 놀람입니다[Ekman 89]. 즉,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이 6가지의 기본 감정 혹은 이 감정들이 혼합된 형태로 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실제로 우리는 좀 더 다양한 감정을 느낍니다. 가령 부끄러움은 저 6가지 기본 감정 중 어디에 속할까요? 어떤 예술가의 걸작품을 보고 느끼는 경탄을 행복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한 당황스러움도 놀람이라고만 표현하긴 어렵지 않을까요?
잘 생각해보면 이런 부끄러움이나 감탄, 당황스러움 같은 감정들은 어떤 문화적 바탕이나 배경 지식 위에서 성립되는 감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앞서 말한 기본 감정은 사람이 정말 기초적인 삶을 영위해 나가면서 마주치게 되어있는 감정인 것이죠.
Ekman 역시 자신이 정의한 기본 감정이 모든 감정을 다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본 감정을 중심으로 비슷한 속성을 가지는 감정들이 뭉친 형태인 emotion family라는 개념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Ekman 92]. 가족(family)이라는 용어는 가족의 관계에 대한 정의가 얽혀들어갈 수 있으니 무리(cluster)라는 용어가 조금 더 정확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Ekman은 예전 연구에서 분노에 대한 표정을 60개 넘게 발견했는데 이 표정들은 비슷한 눈과 입의 움직임을 공유하고 있지만 세세한 입꼬리 모양이나 눈꺼풀의 움직임에는 다양한 변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좀 더 확장된 방법으로, 감정 평면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감정의 특징들을 축으로 정의하고 그 특징 값으로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죠 [Mehrabian and Russell 74]. 가장 많이 쓰이는 축은 arousal과 valence입니다. arousal은 감정의 흥분 정도를 이야기하는 척도로 이 값이 작을수록 차분한 감정인데, 지루함이나 편안함, 졸림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반대로 arousal이 큰 감정에는 흥분감, 분노, 공포 등이 있습니다. valence는 감정의 긍정 혹은 부정적인 정도를 나타냅니다. 가령 공포는 아주 부정적인 valence를 가지고 지루함이나 흥분감은 중간 정도의 valence를, 행복이나 편안함은 긍정적인 valence를 가집니다.
여기에 가끔 dominance를 고려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dominance는 이 감정이 내가 주체적으로 느끼는 감정인지 아닌지를 나타내는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분노와 공포는 둘 다 부정적인 valence와 높은 arousal을 가지지만 분노는 내가 주체가 되는 감정인 데 반해 공포는 내가 다른 요소에 의해 수동적으로 느끼게 되는 감정입니다.
이 세 가지 축을 모두 합치면 대략 아래 그림같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감정은 valence, arousal, dominance 이 세 가지 값에 대한 벡터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정확히 어떤 벡터가 어떤 감정에 해당하는지는 방법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 우리가 삶 속에서 느끼는 감정은 좀 더 복잡하고 미묘해보입니다. 실제로 감정은 경험에 의해 학습된 결과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위에서 소개한 두 가지 방법을 통해 많은 부분의 감정을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정에 대해 아는 것은 우리 인간을 이해하고 건강한 상태로 돌보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인공지능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제 컴퓨터는 사람보다 퀴즈도 잘 맞추고 바둑도 잘 두지만, 사람과 같이 짧은 잡담을 나누는 것은 아직 어려운 일이지요. 만약 컴퓨터가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소위 소셜 로봇이라고 불리는 감성 인공지능의 현실화를 향한 큰 도약이 될 것입니다.
[Ekman 89] Paul Ekman, The argument and evidence about universlas in facial expression of emotions, Handbook of Social Psychology, 1989.
[Ekman 92] Paul Ekman, An argument for basic emotions, Cognition and Emotion, 6(3-4):169-200, 1992.
[Mehrabian and Russell 74] Albert Mehrabian and James A. Russell, An approach to environmental psychology, The MIT Press, 1974.
그렇다면 affective computing 분야인가요?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분야 중 하나인데, 앞으로도 좋은 글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