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뉴비] 학술 대충 살펴보기: 연구를 했으면 발표도 해야지
주의: 이 글을 쓴 사람은 과학의 일부인 물리학 전공입니다. 전공까지 쳐봤자 태양계만한 과학에 미세먼지 정도인 과학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케바케인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0. 연구를 어찌어찌 해냈다
원래라면 연구 이전 이야기부터 연구 이야기, 그다음에야 연구 이후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순서겠지만, 그건 연구마다 천차만별이기도 하고 제가 연구 이후에 대한 글을 한번 써보고 싶어서 갑자기 연구 이후 이야기부터 갑툭튀 하게 되었습니다.
학술논문에 실리는 연구의 종류는 아주 많습니다. 제 나름대로 큰 분류를 해보자면,
어떤 연구 주제가 있을 때,
- 지금까지 나온 것들을 집대성한 것. (집대성)
- 기존의 방법으로 아직 해보지 않은 것. (새로운 시도)
-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는 것. (새로운 방법)
(1) 집대성, 많은 졸업논문이 이런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어떤 연구에 처음 진입할 때 그 연구를 수행하는 실험실에서 나온 석/박사 논문을 찾아보는 것이 상당히 큰 도움이 됩니다. 연구 테마의 큰 맥락을 볼 수 있게 해주니까요. 하지만 제 졸업논문도 그렇고 어디 내놓기가 참 부끄러워서 말입니다. 특별기고 등 어떤 테마가 급부상하는 경우 해당 분야 전문가가 그 분야를 되짚어 보자며 집대성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2) 새로운 시도는 주로 실험 논문들이 들어가는 분류입니다. 기존의 방법을 마냥 믿을 수도 없는 게 연구자의 숙명입니다. 그런고로 뭔가 안될 거 같다 싶은 상황에 기존의 방법을 써보고 이게 안 되는 대박(내지는 중박)을 노리는 경우가 많죠. 되면 되는대로 "여기까진 잘 되더구먼" 하는 내용으로 발표할 수도 있죠. 혹은, 필요 때문에 특정 상황의 데이터를 만들어 발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3) 새로운 방법은 이 기존의 방법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방법, 기존의 방법보다 더 효율적으로 같은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연구합니다. 후자의 경우 최적화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걸 굳이 설명하는 건, 과학 분과마다 달라지는 것도 있지만 연구의 종류에 따라서도 뭔가 미묘하게 발표 때 고민하는 것들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연구의 특징은 저를 포함해서 "누가 이렇게 해보니까 되더라"는 말을 전적으로 믿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됩니다. 참고는 하되 반드시 될 거라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1. 발표하는 방법은 여러가지
연구했으면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장소에 걸어놔야 합니다. 연구자들이 많이 쓰는 방법은,
- 관련 연구자들을 초대해서 발표한다. (세미나)
- 관련 연구자들이 모이는 파티에서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발표한다. (세션 발표/프로시딩)
- 핵심만 추려서 이쁘게 만들어 관련 연구자들이 한꺼번에 모이는 파티에 걸어놓는다. (포스터)
- 연구자들이 언제든 찾아볼 수 있도록 온/오프라인 문서 집에 투고한다. (논문)
이외에도 블로그에 올린다든지 신문에 사설을 쓴다든지 하는 수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연구자들이 선호하는 방법이라고 하면 저 4개일 거로 생각합니다. 한 연구에 한 방법만 가능한 게 아니라서 4가지 모두를 하려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시간과 체력, 연구비만 충분하다면야 뭐….
(1) 세미나 는 연구실/실험실 단위로 모이거나 여러 곳에서 비슷하거나 같은 주제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날 잡고 모여서 하는 행사입니다.
(2) 세션 발표/프로시딩은 학회의 학술행사에 가보신 분이라면 금방 아실 겁니다. 아직 안 가보신 분이라면, 랩 세미나를 처음 보는 무서운 사람들 앞에서 덜덜 떨면서 발표하고 질의응답 해야 한다는 것 정도.
(3) 포스터 역시 학회의 학술행사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부스 형태로 진행됩니다. 가만히 있다가 누군가가 내가 만든 자식 같은 포스터를 기웃기웃하면 달려와서 열심히 설명합니다. 경험해볼 만한 형식입니다. 일단 청자의 수도 소수인 데다가 가깝고, 그 주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과 면대면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니까요.
(4) 논문은 연구자의 활동 중 가장 잘 알려진 방식일 겁니다.
2. 논문, 생각보다 쉽지 않다.
연구자에게 꿈, 희망, 절망 세 가지를 한꺼번에 주는 존재가 이 논문입니다. 힘들게 연구한 거니까 유명해져서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죠. 그러려면 내 연구가 유명한 저널에 실리는 게 좋을 겁니다. 그게 안 된다면 가능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전략적인 선택이 필요하죠. 그래서 나온 게 저널의 피인용 지수(IF)라고는 하던데…. 이 IF에 대해서는 기회가 닿으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논문을 내면 편집자가 "흐음…." 하다가 "이건 (안)되겠네요 ." 하면서 개제의 가부를 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피어리뷰라는 신뢰도 확보 시스템이 존재하죠. 저널을 처음 투고하면 기계나 사람(편집자)이 투고 정보에 오류가 없는지, 혹은 저널에 적합한 주제인지 확인한 후, 저자가 신청한 분야의 전문가 서너 명에게 논문을 보여줍니다. 이 전문가는 리뷰어 라고 불리는데요. 보통 심사하는 동안에는 익명으로 대화하게 됩니다.
리뷰어는 논문을 보고 수정 없이 게재(accept), 게재 거부(reject), 약간의 수정(minor revision), 많은 수정(major revision)에 대한 의견을 저자에게 보냅니다. 저널에 따라 다른데, 양식 수정을 마이너 리비전(minor revision), 연구 수정을 메이저 리비전(major revision)으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예 둘의 구분이 없이 수정 요청으로만 오는 경우도 있고요.
서너 명의 리뷰어가 각자의 의견을 보내는데, 수정 요청이 있는 경우에는 수정판(revision) 논문을 준비하고 평론가에게리뷰어에게 감사 인사와 함께 수정 권고에 대해 어떤 조치를 했는지 답변서를 작성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리뷰어들에게 리뷰를 받는 식으로 완전히 게재 허가나 게재 거부가 나올 때까지 두세 번 반복하게 됩니다. 리뷰어에게 아주 젠틀한 욕설이 날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저널은 게재 허가가 나온 논문들을 모아 논문집을 만듭니다. 권호 등 번호를 붙여 논문집을 관리하죠.
다음편 예고
[연구 뉴비] 학술 좀더 살펴보기(1): 나 전공만 잘하면 되는거 아니었어?
많은 분이 제목에서 짐작하실 수 있을 텐데요. 투고 양식과의 싸움에 대해서 다뤄보려고 합니다.
P.S. 사실 이 시국에 디비피아 이야기를 하는 게 맞지 않나 싶긴 한데…. 아직 정리도 잘 안 되었고 감정이 굉장히 안 좋은 상태라 굉장히 편향된 글을 쓸 것 같더군요. 언젠가 써야 할 글이 많네요
(어차피 피어 리뷰도 없겠다) arxiv에 올려서 먼저 찜한다...는 방법도 있기는 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