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녹차 속에 숨겨진 진실(眞實)
부지당의 차 이야기 24.
선암사 처사(處士)생활을 마감하고 한(韓)씨 문중의 제실(祭室)로 거처를 옮겼던 때는 1996년 초봄이었습니다. 그곳은 전남 벌교에 있는 지곡리 마을에서 산 쪽으로 10여분 이상을 걸어 올라가면 나타나는 곳이었는데, 이 부용산속 제실의 이름은 모리거사가 사는 곳이란 뜻으로 부용산 ‘모릿제’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것들은 10년전 내가 뿌려놓았던 것인데 제법 많이 자랐습니다.”
집 아렛쪽으로 나를 데리고 간 한 선생은 주변에 곳곳에 자라고 있는 차나무들을 가르키며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습니다.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떻습니까? 여기 있는 나무들이 모두 같은 종류들로 보입니까?”
나는 그의 물음 때문에 차나무들을 살펴보았으나 별다른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차를 만들려면 먼저 저것들이 어떤 종류의 나무들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 양반이 지금 뭔소리를 하시는거야? 날 보고 식물학자라도 되라는 것인가? 그래야 차를 만들 수 있다니. 너무 겁주는거 아냐?’
“아니, 차 나무이면 되지 그걸 분석까지 해야 된다는 말입니까”
“모리 선생, 차를 만들려면 차나무가 최소한 순종과 잡종이 있다는 것은 알아야 합니다.”
그는 웃으며 차나무들의 잎 모양들을 살펴보라고 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나무들을 살펴보자 아닌게 아니라 찻잎의 모양들이 다양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이 나뭇잎들의 형태가 모두 다르군요. 그럼 이것들은 잡종입니까?”
“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들로 덖음차를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순종은 어떤 것입니까?”
“그건 보성에 가면 볼 수 있니다.”
간단히 대답하는 그를 보면서 난 그가 농담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다음 이야기들이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자라고 있는 차나무들은 일본인들이 심어논 ‘야브기다’와 토종들로 구분할 수 있어요. 이같은 차이를 알아야 차를 어떻게 만들지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차밭 현장에서 알려주는 그의 강의는 이제까지 단순히 여겼던 차의 법제(法製)법이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라 사실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는 ‘야브기다’종은 증기(蒸氣)를 쪄야 찻잎의 모양뿐만 아니라 그에 걸맞는 향(香)을 가진 녹차(綠茶)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고, 이것으로 덖음차를 만들게 되면 오히려 찻잎을 망가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야브기다 종이란 도데체 어떤 것입니까?”
“그건 직접 경험으로 공부 해 보세요. 아무튼 이 차나무들은 내가 선암사에서 차씨를 구해 심어진 차나무들이고, 그래서 덖음차를 만들기에 적합합니다. 앞으로 직접 만들어 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날 한선생으로 배웠던 첫 번째 차 공부는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처소로 돌아온 난 자존심이 매우 상했습니다. 그건 차에 대한 기본 지식도 없이 차 선생이 되어 설쳤다는 부끄러움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 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먼저 ‘야브기다’종이 탄생된 내력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일본인들을 감동시켰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종자가 만들어지 않았다면 오늘의 일본인들이 가진 문화적 자긍심과 칼과 국화로 대변되는 정신세계란 없었을 테니까요.
300년전 일본의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시작되었다고 추정되는 다도(茶道)는 처음에는 무사계급이나 상류층만이 즐기는 문화였습니다. 찻잎도 귀했고 다기(茶器)들을 구하기 쉽지 않았던 일본의 실정에 비추어 대중들이 다도를 즐기기에는 먼 거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메이지 유신(1868년)때에 이르자, 경제적 풍요가 다가왔지만 그들의 정신적 황폐함을 치유할 어떤 문화운동이 필요해졌고, 여기에 다도(茶道)가 있었습니다. 그에 따라 일본인들은 여기에 열광하였고, 찻잎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쉽지 않았습니다. 한반도나 중국에서 차 씨를 구하여 일본 땅에 심어보았지만 줄기보다 뿌리가 깊게 파고 들어가는 차나무의 속성상 화산석(火山石)석이 대부분인 일본 땅에서 잘 자라지 못하고 죽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고민이 ‘스기야마(杉山彦三郞;1857-1941)’란 인물이 나타나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는 일본의 토질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야브기다’란 종자(種子)를 개발하였는데, 이 새로운 차 나무는 기존 것들과 달리 뿌리가 옆으로 퍼져 비료만 주면 때깔 좋은 찻잎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일본인들은 야브기다 덕분으로 값싼 차를 얼마든지 구하여 차를 즐길 수 있게 되었으므로 ‘스기야마’란 인물은 국민적 영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찻잎은 단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존 차나무 잎들과 달리 잎이 달고 부드럽습니다. 그래서 차의 모양을 그대로 살리면서 차 향(香)도 유지할 수 있도록 증기로 쩌야 했고, 따라서 이같이 만들어진 차는 ‘녹차(綠茶)’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녹차는 뜨거운 물을 부으면 맛이 떫어지고 여러번 우려내면 맛이 싱거워지는 약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이같은 문제을 해결하는 방안을 만들어 냅니다. 즉 ‘다도’라는 형식을 만들어 여기에 불교적 선(禪)을 가미하여 모든 문제점을 팽주(烹主)의 능력에 따라 결정된다고 홍보하게 되었습니다. 이같은 일본인들의 기민함 때문에 이 ‘다도(茶道)’는 세계인들에게 일본문화의 하나로 인정받게 되었고, 한국의 일부 지식인들에게도 이를 배워두는 것이 문화인이 조건처럼 인식되도록 만들었습니다.
“모리선생, 계시오?”
누군가 마당에 들어서면서 날 부르고 있어 내다보니 한 선생이었습니다. 그는 인부 한 명과 함께 서 있었는데, 그는 지게 위에 있는 무언가를 마당에 내려 놓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이게 무엇입니까?”
나는 제실 마당에 놓여진 그것들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들은 날 본격적으로 자신의 차 제자로 만들 요량으로 가져온 것들이었고, 이를 계기로 내 산생활은 끝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그 때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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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대해서 일부나마 배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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