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살 여행기#67 건축공학과의 기억 - 바르셀로나: 구엘 공원
[그림 103] 구엘 공원에 있는 난간 겸 의자
구엘 공원에 갔습니다. 체크인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 그냥 시간을 죽이기는 아까워서 구엘 공원의 무료 개방 구역을 가볍게 한 바퀴 돌고 오려 했습니다. 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유료로 갈 수 있는 구역이 너무 눈에 들어왔습니다. 또 참지 못하고 입장권을 끊었지요.
입장권 판매기 앞에 직원이 서서 일일이 버튼을 눌러주며 구매를 도와주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스페인에 왔다는 생각이 확실히 들었습니다. 직원이 결제를 대신해주는 데 가지고 있는 카드 3개가 다 먹통이었습니다. 기계가 다른 카드를 넣으라는 오류 문구를 뿜으면 직원이 다시 저에게 돌아서서 다른 카드를 달라고 하는 꼴이 웃겼어요. 결국 모든 카드가 안 되니 사람이 있는 매대로 가라고 했습니다.
구엘 공원 안에 있는 저택을 둘러보려 줄을 섰습니다. 제 앞쪽에는 한국인 모녀가 있었는데 어머니 쪽이 딸에게 대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연인이 해외여행 온 경우가 많다고 뭐라고 하자 딸도 자신도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라 했습니다. 그다음에 한 말이 중요합니다. 구엘 공원에 막상 와보니 그렇게 엄청난 곳이 아니라고 느껴지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이유는 그냥 이름나서 이기 때문일 거라고 했어요. 맞는 말입니다. 이름이 알려져야 귀에 들어오고 찾아가고 싶은 마음도 생깁니다. 제가 만약 집에 틀어박혀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살았으면 가우디가 누군지 바르셀로나가 어디인지 알 수 없을 겁니다. 저는 다른 이가 설정한 가치에 별로 얽매이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이러면 산에서 풀 뜯어 먹는 거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심지어 무슨 풀이 먹으면 죽는 풀인지도 이미 먹어본 사람의 평가에 기대야 해요. 그러니 제가 남의 말에 홀려 구엘 공원에 온 건 확실히 인정하고 이 안에서 제 마음에 드는 걸 찾아야 합니다. 그게 남들이 좋다고 한 걸 수도 있지만 스스로 한 번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건 분명 필요한 일이지요.
바르셀로나로 출발할 때만 해도 구엘 공원 무료 구역 한 바퀴 돌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주변을 한 바퀴 도는 거로 일정을 마치려 했어요. 입장권도 비싸고 곡선과 장식이 많은 가우디의 건축도 썩 끌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집을 한 번 지을까 말까 해요. 그러니 질 때 살뜰히 질 수밖에 없어요. 쓸모없는 공간이나 불필요한 장식은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평생 집 한번 지을 수 사람들과 가우디의 건축은 거리가 너무 멉니다.
[그림 104] 구엘 공원 안 저택의 천장
이 생각은 공원 안 저택에 입장해서 확실히 바뀌었습니다. 이 저택 안은 참 좋습니다. 앞서 규모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그래도 저는 경제적으로 지은 세 칸 방보다 한 칸 방이지만 이 저택처럼 디자인을 신경 쓴 집을 선택할 겁니다. 파란 벽 사이의 좁은 계단을 올라 협소한 참을 딛고 문을 넘은 뒤 나타난 하얀 방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천장은 모난 곳이 없습니다. 중간중간 자잘한 보가 촘촘히 박혀 있지만 그 모양은 부들부들합니다. 삭막한 아파트가 아니라 고래 뱃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에요. 물론 고래한테 잡아먹힌 무시무시한 기분이 드는 건 아닙니다. 디즈니 만화 속에 와 있는 느낌입니다. 벽과 보가 억지로 천장을 버티고 선 게 아니라 원래 있었던 것마냥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느낌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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