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소중함을 나누는 계절

in #kr-writing7 years ago

제가 근무하는 회사 건물에는 청소와 각종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잡역부(janitor)들이 있습니다. 보통 이들은 가난한 조국에서 태어나 많은 부양가족을 보살피기 위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타국에서의 이런 힘든 일을 자청합니다.

그들은 받은 월급의 대부분을 본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송금하므로 막상 제대로된 먹거리조차 먹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들 중 한명이 대회의실에 마련된 귀빈용 소파에 누워 잠을 자거나 음악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일했던 저의 정서로는 이해하기가 힘들어, 팀에 같이 근무하는 현지 직원에게 회의실이라는 공공장소에서 근무시간에 저렇게 누워 있는 건 좀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얘기했던 적이 있습니다.

열띤 토론 끝에 결론적으로 그날 저는 인정이 없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처럼 취급되고 말았습니다. 문화적으로 이곳의 무슬림들은 가난한 자, 약자에 대해 대단히 관대한 편입니다.

굳이 면피를 위해 첨언을 하나 하자면 사실 저는 누구보다도 이들을 많이 챙겨주는 사람입니다. 크건 작건 항상 팁을 줍니다. 우리 돈으로 치면 많아야 3천원 정도의 돈인데 이들에게는 몇일치의 식비가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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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이 곳은 내일부터 이슬람력 9월인 "라마단"이 시작됩니다. 라마단 기간 한달간은 해가 떠 있는 동안 물과 음식, 담배 등 모든 것을 금하는데, 이에 따라 무슬림이 아닌 저희 직원들도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서만 음료나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무슬림 친구에게 기원을 물어보니 초대 선지자인 모함메드가 무려 한달간이나 물과 음식이 없이 사막을 횡단한 끝에 신의 계시를 받았던 사건을 기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고통을 직접 체험하면서 평소에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다고 합니다. 이 기간 중에는 "나눔"이 권장되는 수준을 넘어 거의 의무화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무슬림들의 이런 선한 습성을 이용해 인근 두바이 등의 부유한 도시에는 "프로 거지"들이 상존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교회나 성당에 해당하는 모스크 앞에서 구걸을 함으로써 라마단 기간에는 월수입이 1억이 넘기도 합니다. 연수입이 아니라 월수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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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과 상관없이 프로는 어디서든 인정 받습니다.>

그런가하면 오늘은 라마단을 하루 앞두고 크립토 시장에서도 대규모의 나눔행사가 일어났습니다. 그간 많은 의혹이 일어왔던 USDT 대신 TrueUSD라는 종목이 최근 여러 거래소에 상장되고 있는데, $1의 실물 화폐를 에스크로 형태로 여러 신탁회사에 예치하여 안정성을 높인 종목입니다. 당연히 가치는 $1에 고정(pegging)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5월 18일에 바이낸스 거래소에 상장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정체 불명의 투자자들이 업비트 등의 거래소를 통해 높은 가격에 이를 매수하여 순간적으로 무려 36%의 시세 폭등이 일어났습니다. 당연하지만 몇시간 후에는 종전의 가격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아마도 얼어 붙은 시장에 누군가는 의도적인 나눔을 실천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는 컨퍼런스 2018 등을 통한 각종 호재가 쏟아졌음에도 크립토 시장에는 붉은 비가 내린 날이 되었습니다. 대장주 비트코인이 하락하면서 거의 모든 알트코인들이 대하락하는 또 한번의 사이클이 나타났습니다.

시장의 하락 무드 속에 내심 기대했던 비트코인 캐시의 하드포크 후 컨센서스의 형성도 느끼기 어려웠던 아쉬운 하루가 되었습니다.

작년에 이 시장에 진입하신 분들은 전설같은 얘기들을 많이 겪거나 들으셨을 것 같습니다. 재미삼아 그래픽 카드로 이더리움 캐다가 귀찮아서 안 팔고 몇달 방치했더니 몇억이 되었다거나, 아무 종목이나 사놓고 내리든 오르든 항상 가만히 있기만 했더니, 결국 몇배나 올랐다더라는 전례 동화 같은 일이 불과 몇달 전에 나타났습니다.

올해는 4월 정도를 제외하면 대단히 지루한 장세가 펼쳐지고 있지만, 그렇게 불같이 올랐던 작년 한해도 사실은 크게 오른 날은 열흘 정도에 불과했다는 통계를 보면 아직 많이 남은 2018년의 기회들을 찾아낼 신중함과 인내심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한편, 일주일 전에는 한때 남미의 부국이었던 아르헨티나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였습니다. 국가발행 화폐만이 사회적 효용이 있다고 말하는 누군가에게는 아래의 그래프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아르헨티나 페소화는 불과 10년 사이에 그 가치가 90%나 하락하였습니다.

손으로 만질 수 없는 크립토들에 대한 의심이 여전하고 한탕주의 사기꾼들이 횡행하는 등 투자시장으로서도 성숙하지 못했지만, 가만히 숨을 쉬고 있는 순간에도 끝없이 영원히 가치가 하락하는 초상화 화폐의 시대에 어쩌면 우리는 마지막 기회의 끈을 잡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p.s. 오늘은 오랜만에 차분한 90년대의 팝송 한곡 소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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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굴기 팔아서 비행비표 부터 사야겠습니다

코인투자보다 프로거지의 수익률이 훨씬 높군요. 그래서 프로이겠지만요 ㅎㅎ

감사합니다, 건필하세요 ㅠㅠ

직업과 상관없이 프로는 인정받는다는 말씀 와닿네요~ 좋은 글 자주 보고싶어 팔로우와 보팅남기고 갑니다!^^

아직 많은 날들이 남아있기에 올해가 기대됩니다^^

암호화폐의 시계는 정말 빠르군요.
불과 몇 달 전의 일들이
진짜,전래동화처럼 느껴집니다. ㅎ

지루한 장세 속에서 2~3% 떨어졌다고 안절부절하는 제 모습을, 이 글을 통해서 반성하고 있습니다.
아직 18년 6개월 넘게 남은 기간동안 좋은 기회가 있는지 잘 찾아봐야겠습니다 ㅋ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읽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가독성이 너무나 좋은 글입니다 ㅎ
월 수익 1억이면 '프로'라는 지칭이 아깝지 않군요

1등 댓글을 달아 봅니다. 항상 감사히 잘보고 있습니다. 제가 투자하고 소식을 전하는 버지도 스캠의혹을 넘어 한단계씩 진화중이네요. 모든 투자자 분들 및 그란님의 건승을 기원 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올리자 마자 봤어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