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업데이트
그간의 업데이트.
별 일은 없었다.
이런 게 별일인가. 결혼식과 술자리, 친구의 개업 등등의 일련의 기념비적인 행사로 점철된 4월의 마지막을 보냈고, 이제 좀 조용해지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나 하면 늘 또 다른 행사가 반드시 돌아온다. 5월이다. 가정적인 행사들에 뛰어들어야 한다. 행사들에 참여하는 것이 어렵다거나 힘들다거나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닌데, 행사 이후의 상념과 후유증에 시달리는 편이다. 전날 했던 이야기들, 말들, 이런 것들이 저절로 복기가 되면서 자꾸 떠오르고, 더욱이 실수는 더 자주 떠오른다는 것.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들을 또 다시 떠올리고 수치심과 분노가 일며 이 만남을 유도했던 사람들을 미워하게 되는 이상한 사이클이 반복된다.
그래서 집중해야 할 일이 있다면 혼자만의 망상에 빠져 잠영하는 순간들을 최대한 방해받지 않으려고 하고, 그러길 원한다. 그런데 삶이 그렇지가 않다. 늘 이벤트 이후에 또 이벤트, 또 이벤트. 인간관계를 맺는다면 당연히 이어지는 연결 고리들을 떼낼 수 없으니까. 이제는 고고한 로너 loner 들을 찾아주고 리스펙트 하던 시절은 영원히 gone, 사라진 듯 하다. 우리는 스스로를 광고하고 팔아제껴야 하는 프리젠테이션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거참 피곤타.
중요한 건 회복력이다.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지만, 스트레스에서 빨리 탈피하는 자가 승리한다. 승리란 건 마음의 평화를 가지게 되는 순간을 말한다. 그래서 결국 5월에는 집에 한번은 가야한다. 주말의 야구를 포기하고, 남쪽 지방으로 가야할 것이다. 죄책감과 빚은 늘 빨리 털수록 좋은 법.
그래 난 늘 혼자 잠영하듯 상념에 잠기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가기 싫은 술자리에 대해 웅앵웅앵거리는 편이다. 늘 신기하게도, 술자리들은 이번에는 꼭 가야만 할 명분들이 생긴다. 이러니 지인들은 내게, 니가 진짜 술을 안좋아했으면 안갔겠지, 라며 코웃음을 치는데 진심 나는 쓸데없는 술자리는 안간다니까! 10년만에 연락된 친구, 같이 일하고 싶을 것 같은 멤버가 온다고 해서, 일을 소개시켜준다고 해서, 알바를 시켜준다고 해서, 알아두면 좋을 것 같은 사람이 나온다고 해서, 같이 일했던 친구가 몇십번의 시도 후에 임신을 해서, 룸메이트였으니까, 누가 죽어서, 누가 잘되서, 축하겸, 위로겸, 소개겸 뭐 등등 name it…안갈수가 없다니까…
그래서 어쩌다보니 시사회를 갔고, 뒷풀이를 갔고…
어쩌다보니 요즘엔 워킹데드를 보고 있다. 현재 씨즌 4.
늘 혼자 식사하게 되는 나로서는 뭐든 볼거리가 필요했는데, 이제서야 드디어 보게 되었다. 왜 밥먹으면서 웩웩거리며 뇌가 터지고, 내장이 튀어나오는 장면들을 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역겨우면서 재미있다. 한국에서 좀비가 먹히겠냐 싶었었지만 의외로 부산행을 쾌감을 느끼며 보았고, 워킹데드는 그냥 끊임없이 보게 되는 미친 드라마이다. 물론 발암의 순간들도 있다. 너무 몰입해서 나도 그 안에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늘 전쟁이 일어나고 세상이 망해서 새로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루저라서 그런지도. 후후. 최애캐는 역시 글렌과 대럴. 큣 가이와 츤데레 가이.
그리고 그 뒷풀이에서 그 글렌을 보고야 말았다. 이런 미친 행운이. 술자리 건너 건너 자리에서 놀고 있었다. 아오.. 가서 사진 찍어달라고 할까말까를 망설였다. -_- <버닝> 땜에 왔나. 스트라이프 셔츠라니. 설마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건 아니겠지.버닝을 검색해서 의상을 확인해보니 이 의상이 맞다. 사람들은 이럴 때 겉으로는 평온한 얼굴을 하고서 핸드폰을 꺼내 카톡으로 “나 지금 누구랑 있게…?” 이러면서 자랑을 한다지. 그리고 그 이후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스티븐 연을 보았다고 자랑을 했더니, 요즘 스티븐 연이 여기저기서 술을 마시고 다니나봐, 라며 영어 하는 아는 여자들이 자꾸 자기한테(영화관계자) 스티븐 연이랑 술마시고 있다며 자랑을 한단다. 쒯. 헐. 헐. 헐. 흐엉. 엉. 엉.
어쨌든 이런 기념비적인 순간은 기억하기로 하자. 언젠가 스티븐 연과 작업하게 되길.. 너무 늙지 않은 스티븐 연과.
여튼, 어느 오후. (날짜 개념도 없다)
자주 술을 같이 먹는 지인이 합정에서 술을 마실 계획이니 생각있음 연락하라고 하길래, 처음에는 안나갔지 당연히. 그럴 생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10시쯤 되니까 자꾸 가야할까? 제대로 거절을 하지 않았어. 핑계를 제대로 댔어야 했는데 이건 누가 봐도 가기 싫다는 걸 말을 안한거네…이런 잡념과 죄책감이 들기 시작하는거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내가 좋아하는 K작가를 소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누군가가 와 있는걸 아는데… 아는데… 어쩌면 그런 어떤 희망과 죄책감과 망설임으로 10분거리의 그곳에 결국 나가고야 말았다. 이렇게 나의 퓨즈가 매일 끊어졌다 붙었다 탄력이 붙었다 끊어졌다 하니까 정말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하는거야.. 주부들이 밥차려먹고 장보고 은행가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더니 그 짝이다. 이런 식으로 살면…10년을 살아도 아무것도 못해낸다. 그래서 또 중요한 게 피로회복력이다. 늘 회복력의 탄성을 위해 노력하자. 늘 오뚝이처럼 빨리 일어나야 한다고.
머리속에 누가 자꾸 영화음악 감독 이야기를 했던 것이 맴돌았는데, 그게 누가 한말이고 어떤 포인트의 말이고, 어떤 맥락이었는지가 기억이 안나는거다. 어떤 지점을 발견한 거 같았는데……이게 술자리의 맹점이다. 당시에는 놀랄만한 통찰이며 직관인데, 제길 기억이 안나. 사실 지금은 기억이 반정도 난다. 이건 술자리라서가 아니라, 간만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 ‘말’은 기억에 남지만 그 외의 것들이 사라지게 되는 나의 뇌가동법때문. 결론은. 영화음악감독 C가 있는데, 그가 많이 하는데 그가 잘하는지를 모르겠다, 워낙 잘하니까 그냥 잘하나보다 하는거지 마음에 들어오지는 않는다는 것, 우리는 사람을 테스트를 해볼 여지가 없다. 늘… 늘 쓰던 사람을 쓰게 마련인거지. 그런 식의 이야기였다, 엄청난 통찰이 아니라 그냥 뻔한 이야기인데 오기처럼 누가 이 말을 했는지를 기억해내고 싶었던 것 뿐이다.
그렇게 요 며칠전의 술자리를 끝냈다.
5월에도 또 몇번의 술자리가 있을것이다. 확정은 아니지만, 잠정적인 약속자리들.
술에 끌려다니지 마라. 진짜 멍청해보이니까. 그것만 기억해.
이로서 당분간 좀 내 머리속이 다른 신선한 세계들로 가득하길,
좀비와 나무와 동물과 사랑과 여행과 위트와 스탠딩코미디와 전쟁과 기차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를 만들 수 있기를..
얼마전에 <랩걸>을 다 읽었다. 마지막 챕터를 읽으면서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읽었다. 집에서 봐서 다행이지, 카페나 이런데서 이걸 읽었다가는 부끄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레이디 버드>를 보고 나왔을 때도 마지막에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봤다. 감정이 촉촉해지고 가슴이 벅차오른 경지에 올랐다가 극장 바깥에 나왔을 때의 그 현실감의 갭을 느껴본 사람들을 알거다. 알바생들의 무심한 얼굴들, 화장실 청소하는 아지매의 얼굴들, 코가 벌개진 나를…. 보고 있지는 않지만 갑자기 그들로 인해 내 감상을 지워버려야 할 것 같은 강요된 기분에 나는 커다랗고 무거운 철문을 온몸으로 밀어내고 11층 계단에서 한층씩 내려오며 서울의 신촌을 바라보았다. 11층, 10층, 9층… 이상했다. 이렇게 좋은 것들을 보고 나서 나는 집에 와서 한자도 쓰지 못했다. 너무 좋은 것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아마 다시 데이빗 포스터 윌리암의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을 읽을 것이고,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마저 읽을 것이고, <추사 김정희>를 읽을 것이다. 박시백작가 의 만화책도 사둔걸 아직 읽지 못했다. 이것들은 내 침대머리맡에 있지만 늘 나는 워킹데드를 먼저 집는다. 빌어먹을 미드같으니.
이이제이 삼성편은 왜 방송하지 않는 것일까? 기다리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은 무척 감격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전쟁영화를 쓰려고 했는데, 평화가 찾아올 것 같아서 안타깝다. 하하.
김정은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기적적으로 보인다. 넷플릭스에서 트럼프에 관한 다큐도 보았는데,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은 반드시 착하거나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예로 등장하게 될 것 같다. 이로써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감동을 느껴 눈물이 났다. 이 세사람이 일을 내길 기대해본다. 정말 새로운 세상이 열릴까. 북한 가보는 게 내 위시리스트 중의 하나였는데 내 죽기 전에 그 소원을 이룰 수 있을까. 누가 통일을 원하지 않는가. 누가 통일을 원하는가. 워킹데드의 거버너처럼 너와 나의 공존은 존재할 수 없다고 아빠는 말했었다. 둘 중 하나는 죽는거라고. 공존할 수 있다. 확신과 신념을 버리고 생존을 택한다면. 하지만 우리는 생존을 위해 생존하지 않고, 신념을 위해 산다. 그러니 누구의 말이 맞을까.
러시아에서 기차여행을 하면서 이북사람을 만났다는 박흥수 기관사의 글을 재밌게 읽었었는데, 김어준 방송을 타니 시베리아횡단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도 같다. 반면 나는 이렇게 되고 나니 흥미를 잃었다. 댐잇.
오늘 거절의 전화를 받았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왜냐면 내가 하는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았으니까. 내 스스로 시뮬레이션을 해보았을 때 작동하지 않았으니까. 예상한대로 된다. 그 예상이 싫다면, 그걸 바꾸기 위해서 무진장 노력해야 함.
엄마에게 전화가 와서 받지 않았지만 결국 다시 전화를 걸었고, 20분 동안은 화가 났지만 숨겼고 이후 30분에서는 공감하며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A양의 글은 진일보했다. 내덕이라고 했다. 예의상 한말이겠는데 그 말이 진짜 맞는 것 같았다. 정말로 내가 말한대로 고쳤는데 정말 좋아졌다. A에게 자랑스러움을 느꼈고, 내 스스로에도 자부심을 느꼈다. 협력이란 이런건가 하는 소소한 기쁨. 선생질에 소질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조금 더 bossy해지려고 한다. 여태 너무 배려하고 소심한 척 하고 살았다.
이젠 책임을 생각해야 할 때다. 조금씩 성숙해가는 내 모습을 보면서 기분이 좋다.
한걸음 한걸음이 중요하다.
낙담하지 말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