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닝에서 피파로 갈아탄 어느 위닝빠의 소회

in #kr3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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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닝일레븐 시리즈(실은 타이틀 이름에 위닝이라는 명칭이 빠진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이렇게 통용된다)를 근 20년 가까이 즐긴 위닝빠로서 금주 부터 피파 시리즈로 갈아탔다. 신작이 워낙 엉망으로 제작되었고 개선 여지도 별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로스터 자체도 업그레이드가 되지 않고, 메시는 여전히 바르셀로나에 있고, 호날두는 유벤투스에 있으니 뭔가 흥이 나지 않았다. 그냥 이미 작고한 선수들까지 포함된, 자기가 커스텀한 팀으로 운영하는 My Club만 플레이하는 대안도 생각해봤지만, 오랜만에 My Club을 들어가보니 팀이 초기화되어 있더라. 생각해보니 몇 달 전 코나미 이펙트(게임이 어떤 조건값에 의해 어느 한쪽에게 유리하게 공이 움직이고 압박 수비가 발동하는 것이며, 공식적으로 인정된 현상이다만 어떤 조건값으로 발동하는지는 다 알려지지 않았다)에 의한 연패로 화가 머리 끝까지 나 팀을 내 손으로 착실히 지워버린 상황이었다(나는 과금하지 않고 기존에 있던 팀으로 승부를 겨루는 랭킹 게임을 주로 플레이하였는데 여기서 연패를 하자 혹시 My Club에서 돈을 오랜 기간 쓰지 않아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가지게 되어 지운 것이다. 물론 화가 난 것도 있었다). 즉 달리 대안도 없었다.

물론 나는 피파 시리즈를 배격할 만큼 위닝만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피파온라인 2와 피파온라인 3에서 괜찮은 팀을 만든다고 꽤 돈을 쓴 이력도 있었고, 피파도 98부터 플레이해봤다. 다만 어디까지나 피파는 위닝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안으로 즐기는 게임에 가까웠고, 사실 우리 세대에서 위닝과 피파의 위상 차이는 독일차와 중국차 차이 이상이었다. 특히 내가 위닝을 처음 접하던 2000년대 초반, 당시 위닝이 우리 또래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밤을 새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몰입하는 것, 단순히 비디오 게임이라기보다 당구나 고스톱처럼 승부에 진지하게 목숨을 거는 하나의 문화였다면 피파는 애들 장난감 같은 슈팅 게임에 불과했다. 특히 피파는 고수끼리 플레이를 해도 막 스코어가 15:10 이런 식으로 벌어지곤 했는데 그래서 별명이 핸드볼 스코어 게임이었다. 당시 피파가 위닝보다 더 낫다고 말한 사람은 PC로 피파만 해보고 위닝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사람들 밖에 없었다. 나는 위닝을 플레이하며 느낀 것들을 글로 써내리곤 했는데, 살면서 대학 입시나 변호사 시험 준비, 취업 압박 면접에서 느낀 것들과 유사한 일반해가 있었기에 내게는 단순한 게임만은 아니다. 물론 위닝하다 친구랑 절교한 기억을 포함해, 추억도 많다.

나는 왜 강서고 김명철에서 7:1로 위닝을 패배하였는가

[위의 글 참조]

하지만 피파 22를 해보니까, 시리즈에 관짝을 받았다고 평해지는 efootball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미 모든 면에서 위닝보다 더 나은 게임이더라. 손맛은 위닝, 골이 들어갈 때 시원함은 최고, 뭐 이런 말도 동감하기 어려웠다. 일단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은 위닝이 아니라 피파에 구현된 것 같았다. 위닝에서는 랜덤값에 의존하는 디테일한 부분들이 피파에서는 대부분 자신이 손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규 유저 입장에서 접근하기 쉬운 편의성도 갖추고 있었다. 특히 위닝을 하다보면, 가끔은 왜 이렇게 플레이가 극단적으로 잘 풀리는지, 또는 극단적으로 답단한지 의문이 들 때가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납득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많아서 좋았다. 이미 판매량은 10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앞으로 efootball이 피파시리즈의 경쟁작 취급이라도 받을 날이 다시 올 수 있을까. 불과 20년만에 어떻게 된 것일까.

실은 작금에 일본의 소프트파워, 그들이 만들어내는 컨텐츠라는 것이 모두 이렇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영화들이 서구권을 휩쓸던 것이 1960년대인데, 지금 일본에서 만드는 영화는 <크레이지 사무라이 미야모토 무사시>처럼 완전히 돌아버렸다. 애니메이션도 예전만 못하고 게임 강국 일본이었는데 그 시리즈들이 모두 예전만 못하다. K-POP이나 오징어 게임은 세계를 휩쓸고 있는데 J-POP이나 일본 드라마의 비중은 매우 작아졌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어떤 컨텐츠가 실패하고 성공하는 것은 운 등 여러 가지 사유가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그러한 일이 반복되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코나미가 이렇게 잘 나가던 게임 시리즈를 망쳐버리는 것에는, 실은 그들이 더 이상 비디오 게임을 만들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의중에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코나미가 집중하는 것은 무언인가? 다름 아니라 바로 빠찡코 등의 도박 게임이다. 불현듯 어린 시절 일본을 선망하던 사람으로 그 나라를 방문했을 때 느꼈던 어떤 광경이 떠올랐다. 내가 자라던 시절 한국의 오락실이라는 것은 젊은 친구들이 철권이나 위닝 같은 게임을 목숨 걸고 즐기며 고함 소리가 즐비하고 심하면 의자나 주먹까지 날라다니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런데 일본의 오락실을 가니 대전 액션 게임 앞에는 사람들이 앉아있지 않아서 혼자서 플레이를 해야 했다. 대신 그들의 오락실에는 여러 개의 빠찡코 기계가 놓여있었고 일본의 젊은이들은 흐리멍텅한 표정으로 쥐죽은듯 조용히 몇 시간 내내 그 기계만을 돌리고 있었다.

우리 부모들은 막연히 게임이 자기 자식을 망친다고 믿었지만, 당시에 게임을 많이 한 것과 직접적 인과 관계로 지금 사람 구실 못하는 친구는 찾기 어렵다. 공부를 잘 하는지 못하는지는 게임과 도리어 무관한 경우가 많은 게 어차피 잘할 녀석은 게임이 있어도 잘 하기 때문이고, 실은 우리 세대 자체가 의사 정도 되지 않는 이상에야 성적 순으로 돈을 잘 벌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차피 그런 편협한 시각은 다 의미가 없었다. 죽어라 게임만 하다가 컴퓨터 코딩을 일찍 배워 지금 대기업 다니는 사람보다 훨씬 더 잘 먹고 사는 사람은 도처에 흔하다. 도리어, 그렇게 게임에 몰두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드러난 것은 경쟁심과 이기심, 승부욕과 같은 것이다. 그건 중국의 젊은이들에게도 동일하게 보이는 것인데 그런 감정은 결국 사회 구조에 역동성을 만든다. <비즈니스 사무라이>라고 불렸던, 조직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하던 일본의 부모 세대들이 일본 회사에 취업한 한국 젊은이들에, 도리어 일본 젊은이들보다 자신들과의 유사성을 찾는다는 그 이유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국뽕 같은 결론은 필요 없고, 결국은 고령화가 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실은 잘난 척 할 것 없이, 일본의 미래가 우리의 미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좀 글의 결론이 엉뚱하게 갔지만,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결국은 다문화 밖에 답이 없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의 젊은 세대는 나이 든 사람들을 세금으로 떠받들며 수십년 뒤에 우리는 매우 고통스러운 미래를 살게 될 것이다.

여러 지방 도시에 재판을 가보면, 그래도 법원이라는 것은 그 도시에서 중심가에 자리한 경우가 많은데, 이미 법원 앞에 중국어나 베트남어, 러시아어 간판이 즐비한 경우는 대단히 많다. 이미 지방 도시의 경우 외국인들이 없으면 그 지역 사회 경제가 지탱되지 않는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땅이 넓은 것도 아니고, 공기가 좋은 것도 아니다. 지금 사람들이 일하러 오고 여기 정착하려고 하는 것은, 한국이 급여가 높고 치안이 좋다는 이유 등인데, 얼마나 이게 유지될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을 끌어올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그것을 놓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나마 일본은 경제 전성기 이후에도 기축 통화 <엔>을 유지하고 있고 원천 기술이라는 것이 있지만, 한국에게는 지금이 몇 안 되는 기회에 불과할지 모른다.

여튼 애착은 많았지만 망한 게임은 그만하고 앞으로 피파 22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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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같은 이유로 피파 시리즈로 갈아탄지 꽤 됐습니다. 한때는 축구 게임이면 위닝이었는데 이제는 피파가 그 자리를 차지했네요.

그냥 피파 해보니까 이미 위닝을 상회하는 게임이 된 지 꽤 오래 된 것 같더라고요... ㅎㅎ 워낙 전성기 시절 위닝 임팩트가 강했으니 고인물들이 있는거지만... 신작이 제대로 똥을 싼 이 시점에 그 고인물들도 떠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