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읽는 天子文(제298구-羲暉朗耀)

in #kr4 months ago

羲(기운 희) 暉(빛날 휘)朗(밝을 랑)耀(빛날 요)

햇빛은 밝고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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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과 같은 우리의 본각本覺은 항상 묘하게 밝게 빛나므로 명암이 없다. 그러므로 각성의 광명장에는 공간과 시간의 개념이 없으므로 삶 과 죽음이 없다. 하지만 이 지구는 천체 자체가 뒹굴고 있기 때문에 밝고 어둠은 있게 마련이다. 마치 중생의 마음이 뒹굴고 있기 때문에 생사가 있는 것처럼 이렇게 우연히 생긴 대지의 명암 현상이 결국 공간 과 시간의 개념이다. 이렇게 해서 생긴 시공의 명암 현상은 모든 중생 의 생사야째 현상으로 반영되었다. 밝음과 어둠은 생사의 첩경이며, 동시에 밝은 태양의 빛을 조절하는 중간자가 되는 것이다. 그 중간자인 매체는 밝지도 어둡지도 않다.

이러한 빛의 매체를 희휘羲暉라 한다. 고인들은 희휘를 고대 신농神農씨와 복희 伏犧씨로 알고 있다. 물론 동양문화의 개조가 신농神農과 복희伏犧다 보니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 이때부터 시간적으로 는 사람의 나이가 있게 되었고 공간적으로는 춘하추동春夏秋冬 사계절 이 설정되었다. 마침내 그 사계절에 맞추어 영농의 사회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영농사회의 기강을 바로 세운 분들이 다름 아닌 신농,복희다.

하지만 이 천자문 본문의 희羲자는 복희(伏犧의 희犧자와는 다른 글자인 것으로 미루어보아 필자의 해설이 맞지 싶다. 이제 여기서 생각을 뒤집어 생각해 보자.
밝고 어두운 시공時空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지금 삶과 죽음을 초월해야 하는 중차대한 갈림길에 놓여 있다. 여기서 내적으로 생각을 돌이키면 생사해탈生死解脫 의 길이 보인다. 다시 말하면 시공을 창조한 빛만 거두어들이면 된다. 태양에서 비춰진 빛을 거두어들이기만 하면 된다.

그 빛을 어떻게 거두어들이는가? 그러자면 보는 자를 보고 듣는 자를 들어라. 그것이 어려우면 콧구멍에 드나드는 숨을 의식하라. 숨을 주시만 하면 바로 주시자가 태양 그 자체이므로 반드시 본래 묘각의 묘명妙明한 각성覺性으로 돌아간다. 본각성本覺性으로만 돌아가면 빛의 장난인 밝 고 어둠이 영원히 없다. 밝고 어둠이 있을 수 없는 태양 그 자체처럼 생사의 그림자가 소멸해버린 영원의 빛이 희휘낭요羲暉朗耀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나마스테()()()
2024.7.24.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