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초중등 교육철학 (스케치) : what should be education?
피교육자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교육은 실패한다. 모든 교육은 폭력적이어야 한다. 여기서 '폭력적'이라는 말은 체벌이나 그런 걸 뜻하는 게 전혀 아니다. 이 말은 교육에는 '강제적' 성격이 있다는 뜻이다. 거꾸로 말해 교육은 기존의 지식 체계를 교란함으로써 새로운 체계로 재편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교육이란 '기른다'는 뜻이다). 교육자가 주도해야 한다. 피교육자의 절대 높이를 끌어올려야만 한다.
평등한 교육은 있을 수 없다. 교육은 차등적일 때만 평등하다. 눈높이 교육을 집단으로 시행할 때 모순이 생긴다(한 교실에 모아놓고 가르치는 일!). 눈높이가 다 다를 땐, 집단 교육은 누군가를 끌어내린다. 눈낮춤 교육? 이는 교육의 이념에 위배된다. 평가(가령 시험)는 학생의 역량을 높이기 위한 수단일 때만 정당하다. 평가는 줄세우기를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 허나 지금 평가는 골라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떨어트리기 위한 시험은 곤란하다.
국가주의를 목표로 교육이 이뤄질 때 문제가 생긴다. 근대교육은 반국가적 주체를 기르길 원치 않으며, (거의) 모든 (제도) 교육에서 국가는 최종선이고, 이를 어길 경우 교육자는 추방된다. 그래서 '의무교육'이라 순화되어 번역되는 compulsory education은 실은 '강제교육'을 뜻한다. 왜 국가가 강제로 교육하는가? 충성하는 유순한 '국민'을 기르려 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국가에 봉사하는 써먹을 수 있는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왜 교육해야 하는데? 이 물음에 대한 답이 국가주의 바깥에서 제시된 적이 있나?
나는 주입식 교육의 옹호자다. 최대한 집약해서 쏟아내고, 최대한 질문에 응하기. 누군가에게 당하기 싫으면 가하라. 이 비판정신은 내 교습론의 기본전제이다. 절대 높이를 올리려면 바닥의 높이를 일단 제시해야 한다. 높이의 바닥이라 해도 좋다. 인류가 지금까지 도달한 높이! 토론이라든지 PBL(Project Based Learning)은 그 다움에야 가능하다. 물론 순서가 바뀔 수도 있고, 복합적인 방법이 시도될 수 있다. 요점은 이것이다. 교사는 인류가 도달한 최고 수준을 학생에게 압축해서 전해줄 의무가 있다. 이 의무를 방기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토론이나 PBL은 옳지 않다.
교육자라면 무릇 피교육자와 관련된 상황에 최대한 대비해야 하며, 모든 질문과 반론에 즉각 답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물리 교사가 지리에 답하고, 역사 교사가 수학에 답하고, 이런 것이 가능해야 한다(물론 현실에서 어렵다는 건 알고 있기 때문에, 팀티칭이 필수적이리라). 여럿이 함께하는 상황이라면, 쓸데없는 질문을 잘 차단할 능력도 갖춰야 한다. 가끔 토론 상황에서 뻘한 질문자에게 시간을 길게 할애하는 사회자가 있는데, 모든 참가자에게 아까운 시간을 빼앗는 민폐는 즉시 차단해야 마땅하다.
초중등교육 말고 고등교육은 어떨까? 준비가 되어있기는커녕 배반이 가속되는 중이다. 자기 전공에 인접한 옆 분야는, 모른다! 그런데도 교육자? 아니, 그저 직장인. 집단이기적이고 유능한 직장인. 정기적으로 등재지에 논문을 제출하는 사무직. 안식년은 좋아라.
지금까지 (명성 60까지는 계속 뉴비라고 우길, 한달 반 된 스티머) @armdown ('아름다운') 철학자였습니다.
팔로, 보팅, 리스팀('팔보리')는 스팀잇 사랑 3종세트('팔보리 3종 세트')입니다.('팔내려' 아닙니다)
초중등 교육부터 고등교육까지 두루 경험을 가져본 사람으로서, 선생님의 글을 읽고 여러가지 생각이 듭니다.
일단, 선생님의 관점은 학문중심 교육에 가까운데, 최근 경험중심 교육이나 구성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주장하시는 의도는 알겠으나, 초중등 교육현장에서 주입식 교육이 가장 잘 통하는 계층은 수재들입니다. 일반 학생들은 동기 자체가 유발되지 않거나, 몰입을 유지시키는 것 자체가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주입식 교육이 생각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저는 요즘 초중등 학생들을 위한 학문중심과 경험중심 교육의 밸런스를 찾는데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의견에 모두 동의합니다.
저는 교육자가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할지에 대해 제 견해를 말했습니다.
'경험 중심 교육'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만,
교사가 어떤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했으면 싶었습니다.
추후 이와 관련된 포스팅을 할 기회가 있으리라 봅니다.
최근에 쓴 글이 있는데, 출판되면 공유하겠습니다.
교육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경쟁을 유도하는 시스템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다 들 잘 살려고 하는 마음이 팽배해 있는 사회적인 문제...
저는 캐나다에서 40년 살고 있는데 그런 경쟁심이 없어서 편한 것 같습니다. 물론 이민자들은 빡세게 살죠...생존해야 하니까...2세부터는 편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게 캐나다의 경쟁력이죠...경쟁을 안해도 되는 그런 사회
우리 사회는 경쟁의 목표와 방식이 다 문제가 있다고 봐요.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혼자만 잘 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경쟁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현재와 같은 경쟁은 전혀 아니라고 봅니다.
어느 초등학교 영어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구요. 애들이 당연히 공부 하는거 싫어하는데 그걸 선생님이 너무 어렵게 한다 어떤다 할텐데 부모가 또 그걸 그대로 듣고 학원에 와서 애들하고 똑같이 이야기 하신다구요 한편으로 이해가 되는 말씀입니다. ㅎㅎ
교육은 원래 어려운 건데 말이지요. 배우기 싫어하는 것도 정상이고, 강제로 가르치려 하는 것도 정상이고, 그 밀당 과정이 교육인데요.
1번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봐야겠네요.
사실 자율 교육을 지향하고 있었는데
최근 아이의 한글과 숫자교육을 심히 해야한다고 필요성을 느낀지라...
한글과 숫자는 언젠가는 익히게 됩니다. (제 아들이 그랬거든요. 3학년쯤 되어야 한글에 익숙해지더군요.)
문제는 그걸 주변에서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도요.
그냥 진도를 나가는데, 집에서 잘 돌봐주지 않으면, 아이가 자동으로 처지게 되고, 그럼 악순환이 시작되지요.
국가주의에 관한 3번 특히 공감합니다.
시대가 급변하니까 달라지게 될 거라 기대합니다.
가령 통일에 대한 찬반 비율도 많이 바뀐 것처럼요.
뭔가 알튀세르적인 냄새가 나네요. 글의 내용 자체보다 행간의 욕망이 더 두드러지네요. 좋은 글은 글대로 잘 보고 있어요.
제가 알튀세르랑 그다지 친하진 않습니다만,
이번 글은 오히려 니체에 더 가깝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3번에 가장 공감이 가네요. 그래서 누구보다도 국정교과서에 반대를 했습니다. 우리는 국가의 노예가 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이 아니니까요... 좋은 글 리스팀 해갑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로스님의 교육에 대한 포스팅 잘 읽었습니다.
이 글은 1년 전에 페이스북에 포스팅했던 건데, 페북에서 기억을 환기해 주기에, 조금 보완해서 스팀잇에 박제하게 되었네요.
경쟁시스템의 문제성에는 백배공감하지만
전지적교사시점은
이해가 안되네요
주입식교육법과 공교육의폭력성을 서로 반대편에 두신거죠?
완벽한지식을 받기만하면 사유나 창의적 무제해결능력은 어떻게키울까요
많은지식이 이미 데이터화되어 돌아다니고
교사는 정작 교사가 필요없는학생에게만 유능하다는 반론 ㆍ
교사없이도 될놈은 된다는 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물론 철학교육은 제외하고요 ㅎㅅㄴㆍ
고민많은 사람입니다 저도ㅎㅎ
열정적이고 강제주도적인 교사가
실제로 능력을 갖추지못하고 편협한겨ㅇ우는 끔찍하네요
좋은 의견 고맙습니다.
제가 전지적 교사시점에서 서술한 건 맞습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학생 시점에서 서술해 보면 어떨까요?
완벽한 지식은 없기 때문에 질문을 하겠지요.
끊임없이 질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학생이 질문하지 못하도록 누르는 경향도 많은데,
이건 교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학생에게 질문은 무제한의 권리입니다.
저는 교사가 갖춰야 할 태도(역량)에 대해 말했고요,
아마 교사가 이런 자격을 갖춘다면 마지막에 우려하신 큰 문제는 생기지 않으리라 봅니다.
내 스스로 필요에 의해 공부하는 시점 이전에는 강제하여 가르치는 것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어릴때는 그렇게 싫었는데 크고 나서 보니 어머니가 악착같이 피아노를 배우게 했던게 지금은 너무나 감사한 마음입니다. 물론 전공이 되지도 않았고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수준도 아니며 먹고사는 것과는 아무 상관없는 배움이었지만 현재는 그렇게 소중할수가 없네요... 그렇게 보면 제 딸아이에게는 최대한 다양한 분야를 경험해 보도록할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P.S 써놓고 보니 본문과 상관있는 내용인지 모르겠네요.. ㅠㅠ
좋은 경험이세요. 저는 어릴 때 악기를 배우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쉬워요(가난해서). 그래서 제 아이들에게는 최대한 많이 해주려고 해요.
자발적으로 뭔가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전까지가 문제지요. 배울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 방법은 있는데 말이죠.
@hwankim92 님의 의견 처럼 학문중심 교육 관점이 강하신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근 대학의 학문 중심 교육에 대한 비판이 있습니다. 왜 공부하는가? 라는 교육의 근본적인 관점의 변화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하는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주입식으로 할수 있었던 많은 지식 조차 너무 많이 변화하고 다양해졌으니까요.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관점을 의미있게 고민하고 경험할수 있도록하는 시간을 교육에 넣는것은 매우 필요합니다. 경험 중심의 구성주의 교육과 학문중심 교육의 밸런스도 중요하지만 교육을 통하여 무엇보다 학생들이 스스로에게 왜 공부하는가 왜 일하는가 왜 살아가는가 하는 긴 인생여정에 온전한 삶을 살아가게하는 자신의 철학을 쌓아가는 중요한 시간을 보냈으면 합니다.
의견에 모두 동의합니다.
저는 교육자가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할지에 대해 제 견해를 말했습니다.
제가 쓴 책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에서도 이 문제를 결론 부분에서 논했더랬습니다.
추후 이와 관련된 포스팅을 할 기회가 있으리라 봅니다.
최근에 쓴 글이 있는데, 출판되면 공유하겠습니다.
선생님의 메이커 교육에 대해 십분 동의하고, 더 발전시킬 생각이 있다는 점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