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책] 어둠의 왼손(The Left Hand Of Darkness)
어슐러 K. 르 귄 (지은이), 최용준 (옮긴이) | 시공사
반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최고로 손꼽히는 SF걸작
SF계의 그랜드마스터로 불리는 어슐러 K. 르 권(Ursula Kroeber Le Guin)의 대표작
이 책은 읽기도 전에 화려한 명성으로 그 무게에 압도당한다.
(물론 그러한 명성이 잘 모르는 이들에게 책을 고르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이렇게 이미 명성이 자자하다보니 뭔가 나쁜 평가를 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자기가 재미없었어도 재미가 없다고 말하면 안될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상 받은 예술 영화들이 그러하듯이 이 책도 흥미 위주의 킬링타임 책들과 다를 것 같아서 아예 손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한 분들을 위해 먼저 읽어본 사람으로서 말을 하자면 이 책은 재미가 없는 책은 아니다.
다만 보통의 사람들이 SF나 판타지에서 기대하는 스펙터클한 모험이나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담고 있지는 않다.
이 책은 외계 행성에 사신으로 파견된 한 사람의 얘기이다. 하드보일드한 액션은 없을지언정 그가 겪는 고생담은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한다. (정말 주인공이 불쌍할 정도로 많은 고생을 한다. ㅜㅜ)
그리고 유명한 SF작품이고 작가가 SF의 거장이지만, 하드SF처럼 깊은 과학 지식이나 이해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과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스토리를 이해하고 빠져들 수 있으리라고 본다. 다만 이런 장르-가상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온갖 낯선 명칭들이 등장 하는 것에 당혹스러워질 수는 있다. 이러한 장르의 특성 상, 우리와 다른 세계의 문화나 그곳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초반에 필요하다.
그러한 관문을 통과하고 나면 이 책의 진가를 서서히 느끼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는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는 외계 문명의 이야기지만 주인공이 그 속에서 겪는 문제와 주인공의 체험을 통해 투영되는 그 세계의 정치, 외교 이슈들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그 가운데서 이 책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물음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지금의 시대와 가장 부합하는-또한 이 세계 설정에서 핵심에 속하는- 물음은 '젠더'이다.
작가의 서문에도 나오지만, 이 책은 '젠더'에 대해서 SF의 형식을 빌어서 인류에게 되묻는다. 그 물음들이 1969년에 작가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젠더란 무엇인가?"
위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을 평상시에는 양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가 특정한 시기나 상태에만 한쪽 성을 가지게 되는 게센인의 특성을 마주하면서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SF나 판타지 문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아닌 작가에 의해 재창조된 세계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때문에 허무맹랑한 공상이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SF를 공상과학소설이라는 잘못된 명칭으로 번안해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번역이다.- SF란 기본적으로 사고실험(思考實驗; thought experiment)이다. 그렇기에 작가에 의해 재조합되고 새로이 만들어진 세상에서 각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결과적으로 다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때로는 이 같은 방식이 우리의 현실을 보다 깊이 있게 성찰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나의 경우는 '배틀스타 갤럭티카'라는 작품을 보면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평소에 할 수 없는 깊이 있는 성찰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의 줄거리를 한 줄로 설명한다면 아래와 같이 쓸 수 있을 것이다.
우주의 행성 연합 에큐멘의 특사, 지구인 남성 '겐리 아이'가 게센 행성에 두 강대국-'카르히데'와 '오르고레인'-에 에큐멘 가입을 권하기 위해 파견되어 겪는 이야기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이런 상상을 해보았다.
어느날 갑자기 외계인 한 명이 우리나라에 나타나서 사실은 우주의 여러 행성이 하나의 연맹으로 구성되어 있고 지구가 여기에 미가입되어 있으며, 자기는 이 연맹의 특사로 지구 상에 있는 국가들이 연맹에 가입하도록 권하기 위해 왔다 라고 말한다. 단지 그 첫 번째 대상으로 대한민국을 찾았고 이어서 다른 나라에도 방문할 예정이다.
지구 상에는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청와대는 어떠한 반응을 보일 것이며, 민주당과 새누리당은 이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활용하려고 할 것인가? 미국은 왜 하필 그 외계인이 대한민국을 먼저 방문했는지 아쉬워하며 이 외계인을 자국으로 데려가려고 하지 않을까? 일본은 가만히 있을까? 중국은? 북한은?
이렇게 상상하면 비로소 몰입하며 흥미 있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는 시공간만 바뀌었을 뿐, 결국 이 책의 내용은 위와 동일하다고 본다. 다만 여기에는 한 가지 다른 설정이 추가된다. 게센인은 지구인과 달리 양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의 위대함은 이런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데 있어, 개인의 시선을 빌림으로써 부담없이 독자가 이 전체를 바라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또한 어찌되었든 이 책은 지구상에 어떠한 국가, 심지어 어떠한 성별에도 치우쳐 있지 않는, 가상의 공간 위에서 이러한 얘기를 진행함에 있어, 자신이 어느 진영에 속해있든 상관없이 가치 중립적으로 인류가 안고 있는 여러 이슈들을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누군가 후기에 그러한 얘기를 적은 바 있다. 어슐러 K. 르귄이 조금만 더 살아계셨다면 노벨문학상을 탈 수 있었을 거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SF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은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SF는 영화만 좋아했는데 덕분에 책도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ㅎ
팔로우하고 가요^^
반갑습니다. ^^
어슐러 르귄님의 책이 보여서 얼를 읽어보고 팔로우도 했습니다. 저도 요즘 어스시를 다시 읽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어스시도 재밌죠!
반갑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