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11. 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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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의 아침묵상 / 2017. 11. 17 (금)

■ 에스더 1:1-22

[ 부하여도 얻을 수 없는 것 ]

에스더서는 인도에서 구스까지 백이십칠 지방이라는 광대한 지역을 다스리던 아하수에로 왕의 통치기간에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바사 왕이었으며, 다니엘서에서 소개되었던 다리오 왕의 아들이었습니다(1). 에스더서의 시작은 아하수에로 왕이 백팔십 일 동안 성대한 잔치를 배설하여 왕국의 부와 위엄을 과시하고 권력의 힘을 자랑하는 한편, 이를 통해 외적으로는 강건한 통치를 보여주고, 내부적으로 결속을 다지는 방편으로 삼았습니다(4). 수산 궁에서 즉위한 아하수에로가 이러한 잔치 자리에 바사와 메대의 장수와 각 지방의 지방관들을 초대하였다는 것은 물질의 부를 권력유지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을 증거합니다(2-3). 페르시아의 왕들은 날씨가 따뜻한 봄과 가을에는 수산 궁에서 머물며 정사를 보았고, 추운 겨울에는 메대의 악메다에서 정사를 보았기에, 수산 궁은 수도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던 곳이었습니다(7). 아하수에로는 연이어 잔치를 벌였습니다. 백팔십 일 동안의 성대한 잔치가 끝나고 다시 왕궁 후원 뜰에서 칠 일 동안 귀천간의 백성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5). 그러나 금과 은과 화려한 휘장과 각종 대리석 등으로 치장된 아하수에로의 왕국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이 위태로웠습니다. 외적으로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화려한 생활을 하고 있는듯 하지만, 내적으로 아하수에로 왕의 주변에는 나라를 걱정하고 민족의 앞날을 고민하며 바른말을 하는 충성된 신하들은 없었습니다. 또한 왕후가 왕의 명령을 무시할 만큼 권위가 무너져 있었고, 신하들은 왕후의 일을 계기로 남편이 자기의 집을 주관하게 하도록 하게 하라는 조서를 내리도록 조치할 만큼 가정에서부터 질서가 깨진 상태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22). 성경은 아하수에로가 통치하는 바사왕국의 화려한 모습 뒤에 감추어져 있는 어두운 면을 자세히 기술함으로, 눈에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지만 영화롭고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의도적으로 비교하는 듯합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통치하는 바사의 모습을 과도한 물질과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장식과 절제없는 잔치를 통해 드러냄으로, 물질로 세워진 그의 나라가 얼마나 빈약한 토대 위에서 세워져 있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즉, 황금을 좇아 살며 외적인 화려함과 권력을 숭배하고 사치로 자신의 부함을 자랑하지만, 모든 구성원이 진정성을 잃어 버린 채 각자의 마음 속에 욕심을 충성처럼 위장한 나라입니다. 손해 앞에서는 모두가 뿔뿔히 흩어질 수밖에 없으며 위기와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없는 허망한 관계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물질의 부가 권세가 되는 나라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영광이 되는 나라로서 무너지지 않을 영원한 나라입니다.

백팔십 일 동안 그의 부귀를 자랑하였던 아하수에로 왕은 이제 칠 일동안 백성들을 위해 더 잔치를 베풉니다(5). "귀천간의 백성을 위한 잔치"라고 하였지만, 왕은 마지막 날에 술이 가득 취해 백성들 앞에서 또 하나의 소유물이고 자랑이며 전시품과 같은 왕후를 자랑하고 싶어 왕궁에서 여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고 있는 왕후 와스디에게(9), 관을 정제하고 나아와 그 아리따움을 보이도록 합니다(11). 이는 왕이 백성을 위한 잔치였다기 보다는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잔치였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또한, 아하수에로 왕이 백팔십칠 일간이나 잔치를 베풀었다는 것은 일년 중 절반을 술에 취해 살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며, 제국의 경계를 담당하고 있던 장수들이 오랫동안 자신의 직무를 떠나 잔치에 참여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결국 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아하수에로 자신의 부귀를 자랑하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알게 합니다. 왕은 어전 내시 일곱 사람에게 명령하여 왕후 와디스를 왕과 백성들 앞으로 불렀지만, 왕후는 왕명을 따르기를 싫어하였습니다(12). 백이십칠 지방을 다스릴 정도의 막강한 권력을 가진 왕의 명령이 왕후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견고하게 세워진 나라인 것같으나 자신의 가정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왕의 모습은, 모든 백성들 앞에서 자랑하는 그의 부귀와 권세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귀를 권력의 수단으로 삼은 아하수에로 왕의 모습은 진리와 공의로 다스리는 하나님의 통치와는 너무도 큰 대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는 주흥에 쉽게 사로잡힌 모습이며, 가진 것을 자랑하기를 좋아했으며,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쉽게 분노했습니다. 이는 곧 아하수에로의 전부는 부귀이며 그 부귀를 빼면 사람도 명예도 백성도 아무것도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그가 왕후의 문제를 박사들에게 묻는 것은, 결국 가정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현자들에게 조언을 구할만큼 무능하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강건함과 유능함은 부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에서 나옵니다. 사도바울은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갈6:14).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그의 곁에 신실하고 돕는 자를 붙여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도록 하셨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자랑하고 술에 취하며 쉽게 분노하는 것은 자기중심적이며 쾌락을 즐기는 사람의 일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가정을 세워가려는 노력이 지혜로운 자의 모습입니다.

명령을 따르지 않는 왕후에 대하여 아하수에로 왕은 분노합니다. "마음 속이 불 붙는 듯하더라"는 기록은, 그가 스스로 주체할 수 없는 분노 속에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잠14:29). 또한,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잠15:18). 아하수에로 왕의 분노는 결국 그의 어리석음뿐만 아니라 가정의 분열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왕은 현자들에게 명령을 따르지 않는 왕후에 대한 문제를 논의합니다. 왕이 현자들에게 "규례대로 하면 어떻게 처치할까"를 묻는 것은, 왕의 명령을 왕후가 무시할 정도의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그의 가정이 내적으로는 무너져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15). 일곱 명의 현자들은 서로 의논을 하고 그 중 므무간이 왕과 지방관들 앞에서 왕후에 대한 문제를 고합니다(16). 그러나 현자들은 외적으로는 나라의 부강함을 보이고 백성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내적으로는 자신이 가진 것을 자랑거리로 삼아 스스로를 존귀해 보이기를 원하는 왕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왕의 가정사를 왕에게 맡기려하기 보다는 "왕후 와디스가 왕에게만 잘못했을 뿐 아니라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의 관리들과 뭇 백성에게도 잘못하였나이다"라고 하며, 나라 전체의 문제로 확대해석하여 왕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17). 자신의 권위를 모든 나라에 자랑하고 싶었던 왕에게 이처럼 적절한 충성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왕후의 행위가 소문이 나면 모든 나라의 여인들이 남편을 멸시할 것이며, 이는 곧 나라의 기반을 흔들리게 할 것이라는 그들의 말은 충성된 신하의 직언이 아니라 왕의 마음을 잡기 위한 간신의 비약이며 간사한 말입니다(17-18). 이는 오랫동안의 성대한 잔치를 감당할 만큼 부유했고, 그 위세를 자랑할 만큼 넓은 땅이 있었지만 바사 왕 아하수에로가 얼마나 분별력이 없고 결정을 내릴 능력도 없는 사람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왕후라는 존칭을 생략하여 왕에게 고할 정도로 눈치가 빠른 간신들이었습니다(19). 아하수에로 왕은 왕후 와스디를 폐하여 모든 여인들이 그들의 남편을 존경하도록 권위를 세우라는 말을 옳게 여기고 각 지방에 각 백성의 문자와 언어로 "남편이 자기의 집을 주관하게 하고 자기 민족의 언어로 말하게 하라"는 조서를 내립니다(20-22). 왕을 이용해 권력을 잡으려는 간사한 자들의 음모와 술수만 있을 뿐, 어디에서도 왕의 권위를 찾을 수 없습니다. 조서와 명령으로 가정에서 남편의 권위가 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하여도 얻을 수 없는 것은 신뢰입니다. 신뢰는 공동체를 견고하게 세워가는 힘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존경하며 따를 수 있도록 신뢰를 주어야 하고 지혜와 경륜을 겸비하며, 무엇보다 가정에서 하나님의 뜻이 견고하게 세워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고 거짓이 없으신 분이시며 정의와 공평으로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은 지도자가 어떤 모습으로 가정과 공동체를 다스려야 하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 나의 기도
    하나님, 가진 것을 자랑하며 술에 취해 쾌락을 위세로 삼는 어리석은 삶을 버리게 하옵소서. 쉽게 분노하지 않도록 성령의 인도함을 받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의 안식처로 삼고 큰 일을 도모하기 전에 가정을 견고히 세워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