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11. 4 (토)
해원의 아침묵상 / 2017. 11. 4 (토)
■ 에베소서 2:1-10
[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
구원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으로 인해 받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물입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향해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증거합니다(1). 이는 과거에는 죄와 허물로 죽은 자였으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새생명의 은혜를 입은 자가 되었음을 말한 것입니다. 죽었다는 것은 육체적인 죽음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죄로 인하여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를 말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도바울의 증거는 우리 삶의 근원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며 또한, 에베소서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이전의 옛사람은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즉 사탄의 길을 따랐습니다(2).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영원한 생명을 얻은 백성은 만왕의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새생명을 얻은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가 아니었다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인 우리는 사망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긍휼과 큰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고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4). 그러한 구원의 역사는 우리의 힘이나 능력과 상관없는 순전한 은혜로 구원받은 것입니다(5).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큰 믿음 작은 믿음, 강한 믿음 약한 믿음이 따로 없으며 구원받은 자의 삶은 언제나 겸손해야 합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는 사람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었습니다. 그것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는 스스로 자랑할 수 없는 타락한 인생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도덕과 법률은 타락한 인생들이 사회의 질서와 이 땅에서의 삶의 가치를 위해 세상에서 세운 최선의 규율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은혜는 도덕이나 법률을 초월한 창조주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벌과 영생의 기준입니다. 도덕적인 가치관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의의 기준을 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인생임을 스스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조건없는 믿음과 순종만이 내 삶을 존귀하게 하는 길입니다.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를 깨달을 때에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목적지를 알면 길을 잡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길을 가도 목적지를 모르는 인생은 결국에는 지치고 상하여 쓰러지기 마련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죄와 사망을 향해 달려가는 삶이었습니다. 구원을 알지 못하는 인생들의 가치관은 "이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백성들의 가치관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는 세상에서 동일한 삶을 살고 있으나 그 추구하는 가치관이나 목적이 근본적으로 다른 삶이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사도바울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하였습니다(3-4). 이는 육체를 입은 모든 인생들이 가진 삶의 형태를 말씀하신 것으로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은혜만이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삶이 될 수 있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주심으로 그 풍성한 은혜를 여러 세대에 나타내기를 원하였습니다(7). 구원받을만한 아무런 자격도 없지만 예수님께서 베푸신 희생과 사랑을 깨달아 이 땅의 모든 완악한 자들이 그 구원의 충만함을 깨닫고 돌아오기를 고대하십니다. 사도바울은 "너희는 그 가운데 행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2). 이는 구원받기 전의 성도들의 삶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으로, 자기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섬기고 추종하는 사람의 본질적인 악함을 잘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악한 사람의 본질을 예수 그리스를 섬기며 그 분의 통치를 받은 인생으로 바꾸어 주심으로서(10), 하나님께서 인생 가운데 두신 약속의 영광을 회복시키신 것입니다. 영원히 죄와 사망가운데 있을 수밖에 없는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은혜의 깊고 깊은 사랑을 깨닫고, 이제 하나님의 그 사랑과 은혜를 전하는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마음 속에서 오는 확신이 믿음의 소리인 것처럼 오해합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생의 마음은 육에 속한 것으로 본질적으로는 타락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속에서 나는 소리를 분별없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확신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마음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나를 죽이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새로운 생명을 얻은 자들의 겸손하고 바른 믿음이며, 사이비와 진리의 차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얻은 새새명은 내 삶의 실제적인 증거를 요구합니다. 사도바울은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증거하였습니다(갈5:19-24). 사도바울이 말한 육체의 일은 곧 옛사람의 모습이며, 성령의 열매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입니다. 옛사람의 습관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죄와 사망과 상관없는 자가 되었다는 것일뿐, 우리 속에 있는 타락한 죄성까지도 소멸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죄성은 구원을 받았으면서도 옹이처럼 남아 끊임없이 어둠을 따라 행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섰다고 자랑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의 믿음없음을 말할 수도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자랑할데가 어디냐 있을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고 말합니다(롬3:27-28).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은 구원"은 "순전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8). 하나님께서 그렇게 나를 지으시고 은혜로 구원하여 주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10). 옛사람의 죄와 허물을 벗어버리고 오직 새롭게 함을 입은 새사람으로 죄와 허물된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로 살기를 결단해야 합니다.
- 나의 기도
하나님, 죄와 사망에 속한 나를 구원하시고 선한 사역을 감당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구원을 위해 내가 한 일이 없듯, 또한 사역을 감당하는 일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감당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 겸손함으로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