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태가면 (変態仮面, 2013) - 너무 슬픈 히어로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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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단은 영웅에 대한 이야기

슈퍼 히어로 장르가 극장을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소니의 스파이더맨 3부작이 시작이었죠. 이후 DC의 배트맨 3부작이 성공을 거두고 마블 스튜디오가 어벤져스 프로젝트에 손을 대면서 할리우드는 온통 슈퍼 히어로 천지가 됐습니다. 사람들은 왜 만화책 속 영웅들에게 열광할까요? 슈퍼 히어로 장르의 매력은 대체 무엇일까요?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영웅은 필요에 의해 생깁니다. 사람들이 원할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원하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태평성대에는 영웅이 없지요.

중국의 요 임금은 "먹고사는 일에 아무 문제가 없으니 임금이 나에게 해준 일이 무엇이 있느냐?"며 노래하는 백성을 보고서 비로소 흡족해했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웅을 만드는 건 현실을 바꿀 힘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영웅은 우월합니다.

  • 영웅은 옷을 잘 입는다

영웅이 입는 코스튬이 신중하게 디자인 된 멋스러운 맞춤복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들이 지니고 있는 초인적인 능력(혹은 초현실적인 장비)는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절대적인 비범함이고, 이러한 비범함은 역시 절대적인 매력으로 넘치는 수트 안에 곱게 포장됩니다.

영웅은 항상 다른 사람들을 돕는 영웅적 행위와 그로 인한 딜레마에 고통스러워 하지만, 본인의 능력(장비) 자체에 대한 고민이나 외모 컴플렉스에는 시달리지 않습니다.(엑스맨 시리즈는 조금 다른 관점을 취하죠. 그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에서 했습니다.)

  • 안 입는 영웅도 있다

후쿠다 유이치의 변태가면은 의외로 튼튼하게 슈퍼 히어로 장르의 공식을 따릅니다. 큰 힘에 따르는 큰 책임을 위해 행복한 개인의 일상을 희생시켰던 스파이더맨의 업적과, 가면을 써야만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배트맨의 이중성에 대한 고뇌가 (거짓말 같지만) 변태가면에게도 있지요.

다만 보는 사람을 민망하게 하는 주인공 쿄스케의 압도적인 코스튬이 다른 슈퍼 히어로와의 차이점을 만들어낼 뿐입니다. 변태가면의 저질스러운 외형은 두 가지 관점에서 재미있게 읽힙니다. 첫째는 쿄스케가 본인의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굴욕적인 대가를 치른다는 점. 둘째는 변태가면의 변태 같은 행동에 따르는 의외의 만족감에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는 점.

  • 영웅은 스스로를 멋지다고 생각한다

타인을 돕기 위해 타인의 멸시를 받는 변태가면의 처지는 기존의 슈퍼 히어로 장르가 짚어낸 적이 없는 또다른 영웅적 행보의 모습을 조망합니다. 영웅은 우월합니다. 대부분 그렇습니다. 그러나 만약 전혀 우월하지 않은 - 오히려 저급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끝없이 무시 당하면서도 남을 돕기 위해 나선다면?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나 고담의 유일한 희망 배트맨, 혹은 세계의 구원자 어벤저스 무리는 결국 거물 악당의 위험천만한 계획을 무너뜨리고 정의를 행합니다. 가끔 스스로에게 도취되어 멋진 카메라 앵글 속에 포즈를 잡아도 이상하지 않지요.

  • 안 그런 영웅도 있다

변변치 않은 악당의 아무래도 좋은 계획을 저지하려는 변태가면의 입장은 반대입니다. 쿄스케에게는 변태가면으로서의 자신에게 도취되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입니다. 영웅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영웅으로서 번듯한 다른 작품 속의 주인공들과는 입장이 다르죠.

그런 점에서 영화의 두 케치프라이즈는 내러티브의 핵심을 명쾌하게 짚어냅니다.

"나는 정의의 편인데 정의는 나의 편이 아닌 것 같다."
"아이코, 내가 싸우는 모습을 보지 말아줬으면 해."

  • 한 걸음이 아쉬운 영웅

변태가면(주인공)에 대한 영화 속 사람들의 멸시와 변태가면(영화)에 대한 현실 속 관객들의 선입견은 정확히 일치합니다. 변태가면이라는 주인공과 영화 모두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버리기 너무 쉽죠. 메타적으로 깊이 연구했다면 모든 면에서 범상치 않은 작품이 될 뻔 했습니다.

그러나 후쿠다 유이치 감독의 작품이 대부분 그렇듯 변태가면 역시 의외로 날카롭게 스며든 시선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만 허용하고 있습니다. 나태하게 풀어낼 수 있었던 가벼운 소재를 성의 넘치는 연기와 연출로 무겁게 살려낸 것까지는 좋았지만, 끝까지 밀고 나가지 않았어요. 조금만 더 파고 들었다면 어땠을까요? 지금의 형태로도 충분한 수작이라고 생각하지만 역시 좀 아쉽습니다.

  1. 주인공 쿄스케 역을 맡은 스즈키 료헤이는 변태가면의 근육을 만들기 위해 살인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가면 쓴 인물은 대역이 아니라 본인. (...)
  2. 원작은 궁극! 변태가면이라는 제목의 만화책이지만 영화와는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3. 팟캐스트 방송 밥상 엎고 영화에게 이단옆차기 35회에서 다루었습니다.

4.0/5 변태가면

2017 04 01.
2018 01 04.
"분명, 나는 변태가면이야. 하지만 나는 변태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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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본 영환데 기억이 ...가물 가물 하네요 ㅎㅎㅎ
리뷰보니 다시 생각나네요~
얼마전에 보내주신 스팀 달러 잘 받았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소중히 사용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저런 곳에 꾸준히 후원을 넣고 있지만 스팀잇은 익숙하지 않아서;;; 따뜻한 한 해 되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