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 덕유산 찾아 가을을 노닐다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합니다.
마치 가상의 풍경처럼~
금요일에 찾은 덕유산리조트는
가을 분위기가 물씬합니다.
정오를 넘지 않은 시간이라서?
아니면 코로나 여파로 발길이 뜸해서일까요,
리조트 사무동은 쥐 죽은 듯 조용했습니다.
사시사철, 주중주말 구분없이 핫플레이스였는데,
코로나는 우리네 일상을 온통 헤집어 놓았습니다.
입실은 3시 이후라 체크인만 한 후
옷가지가 든 가방은 차 안에 두고 등산배낭을 챙겨
곧장 케이블카 승강장으로 이동했습니다.
평소대로라면 길게 줄지어 서 있어야 할
탑승구역인데, 썰렁합니다.
'단체산행을 자제합시다'란 현수막이
공허해 보이네요.
1520m 설천봉까지 케이블카로 단숨에...
설천봉에서 6백미터를 걸어 덕유산 주봉인
향적봉(1614m)까지.
킬힐을 신고도 오른다는 봉우리가 향적봉입니다.
케이블카 덕에 그만큼 접근성이 뛰어난 봉우리죠.
썰렁하기는 설천봉도 향적봉도 매한가지입니다.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기 위해
북새통이어야 정상인데...
끝간데 없는 '코로나'는 산정의 풍경마저
바꿔 놓았습니다.
시리도록 말간 가을 하늘을 우러러 봅니다.
생뚱맞게도 눈물이 찔끔 거립니다.
감성충전 '오바이트' 현상입니다.
아스라이 너울대는 산그리메를 보며 조지훈의 시
'승무' 중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를
되뇌입니다. 첩첩 산능선의 유연함이
곧 승무의 소맷자락입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은
고산을 수호하는 神木이지요.
살아서나 죽어서나 꼿꼿함을 잃지 않는 주목은
고산에 오른 산객들과 무심한 듯 교감합니다.
중봉에서 백련사 방향으로 내려섰습니다.
울긋불긋 산 아래와 달리 산중턱은 일찌감치
겨울옷으로 갈아 입었습니다.
중봉에서 1.4km 내려선 곳에서 상어가 입을 벌린
모양의 암굴이 잠시 발길을 잡습니다.
한겨울, 역고드름으로 유명한 '오수자굴'입니다.
덕유산의 특별한 기운으로 빚어진 역고드름은
이곳을 지나는 겨울 산꾼들의 가슴을
살포시 녹여주는 보너스랍니다.
오늘은 그저 음습한 기운만 감돌아
그냥 스쳐 지납니다.
푸릇푸릇 웃자란 산죽 이파리가 허벅지를 훑습니다.
너덜길에 낙엽이 덮혀 발 딛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아니나다를까, 발을 헛디뎌 발목을 살짝 삐긋 ㅠ.
동행 중인 산우 역시, 발목을 삐어 동병상련을...
조심조심, 백련사 입구에 닿았지요.
조계종 금산사의 말사로 구천동 계곡의 끝부분인
해발 900m 지점에 고즈넉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발목을 삐긋해 가뜩이나 걸음이 늦어진데다가
백련사에서 구천동탐방센터까지 무려 6km가 넘는
구천동 계곡길을 염두에 두지 않은 탓에
날머리에 이르렀을 땐 이미 어둠이 내려앉았습니다.
택시를 이용해 차를 세워둔 덕유산리조트까지,
택시비는 1만원입니다.
스키시즌땐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된답니다.
리조트에 입실, 삼겹살 좀 준비해 갔는데,
리조트 리모델링 후 실내에서 고기를 구을 수
없도록 프라이팬을 아예 없앴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냄비에 몇 점 구어 먹고선
나머진 김치찌개에 탈탈 털어 넣었습니다.
이튿날, 케이블카로 설천봉에 다시 올랐다가 내려와
나제통문으로 향했습니다.
무주구천동 33경은 덕유산 향적봉에서 시작해
구천동 계곡을 지나 나제통문에 이르는
36km 구간에 펼쳐져 있습니다.
나제통문까지 눈도장을 찍었으니
33경 구간을 얼추 접수한 셈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