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메르켈

in #kr7 years ago

관련 기사: Merkel und die gescheiterten Mä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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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분데스탁 안에서 같이 촬영된 프리드리히 메르츠와 앙겔라 메르켈, 안데스 그룹의 인물인 메르츠도 결국은 추방당한다.

2002년 1월 11일 볼프라트하우스(Wolfratshaus), 이때 메르켈은 총리후보를 에드문트 슈토이버 CSU 당수에게 양보한다. 이 역사적인(?!) 양보(참조 1)에 대해, 난 그저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와 헬무트 콜의 고사(참조 2)를 비유했을 뿐이었는데, 사실 메르켈이 총리감이 된 과정에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헬무트 콜이 처음부터 메르켈을 키운 것은 맞다. 하지만 역시나 볼프강 쇼이블레가 헬무트 콜의 뒤를 이을 정치적인 아들이었는데(참조 3), 기부금 스캔들 당시 메르켈은 콜은 물론 쇼이블레까지 처단(!)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기민당의 총리후보가 될 수 있었느냐, 아니다.

기민당 내 암흑 조직, 안데스 그룹(An­den-Pakt)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그룹의 존재는 야당 시절인 1979년까지 올라간다. 당시 칠레를 방문하고 돌아오던 비행기 안에서 기민당 청년 그룹은 마침 안데스 산맥을 지나니 안데스 조약(직역하면 Pakt는 조약이다)을 맺자고 한다. 그래서 수 명의 사내들이 그룹을 만든다. 자, 파이트 클럽 제1원칙과 제2원칙은?

누구도 파이트 클럽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You do not talk about the Fight Club.

맞다. 안데스 그룹의 원칙도 그것이었다. 다만 이게 정치인들 그룹이기 때문에 다른 원칙도 있었다. 그룹 내 누군가가 경선에 나서면 무조건 그를 지지한다, 동시에 나서지는 않는다...이다. 안데스 그룹의 구성원들은 대체로 독일 남부의 가톨릭 계열 CDU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헬무트 콜께서 영입했으니 봐주긴 할 테지만 동독 출신 개신교 여자는 CDU 전통과 분위기를 "모른다"고 여겼다. 메르켈은 기부금 스캔들 때문에 엉망이 된 CDU의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한 "임시 얼굴 마담"이었다.

안데스 그룹은 당연히 메르켈에게 적대적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2002년 총선 때 에드문트 슈토이버를 지지했다(다시 등장!). 그들은 자신의 힘과 권력에 취해 있었다. 자신들이 정해야 당이 움직인다면서 메르켈에게 지시한다. 볼프라트하우스에 출두해서 후보직을 반납해라. 그리고 우리에게도 와서 머리를 조아려라.

자세히 보시라. 원칙을 어긴 셈이다. 자신들의 존재를 알렸기 때문이다. 이는 안데스 그룹 내에서의 경쟁(주로 Roland Koch와 Chris­ti­an Wul­ff) 때문이었다. 좀 미묘하기는 하지만 크리스티안 불프는 안데스 그룹이라는 게 있는데... 라면서 미리 메르켈에게 그룹의 존재를 알렸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2002년 총선은 슈뢰더의 승리였다.

하지만 그룹의 존재를, 메르켈이 이제는 알게 됐다. 안데스 그룹은 메르켈을 직접 불러놓고서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고 그냥 앉혀 놓았다. 메르켈은 그 순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2005년 총선이 다가왔다.

역시나 안데스 그룹은 누구를 내보내냐를 두고 경쟁을 계속 벌이고 있었고, 메르켈을 여전히 "임시 방편"으로 여겼었다. 그러나 시대는 여론에 따라 후보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시대였고, 커튼 뒤의 그들은 양지에 나설 수가 없었다. 그리고 총리에 오른 메르켈은 한 명, 한 명에게 복수를 시작한다.

당 대표로서, 선거에서 내보내서 전사시킨다든가(...), 브뤼셀로 쫓아낸다던가, 연구소로 보낸다든가 하는 식이다. 다만, 자신에게 안데스 그룹의 실체를 알려줬던 크리스티안 불프는 (많이 봐줘서) 대통령궁으로 쫓아냈다(참조 5).

자... 길게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은 이번 안드레아 날레스의 SPD 총재 취임도 비슷한 맥락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기사 내용이다. 오랫동안 아재들의 정당이었던 SPD도 날레스의 음모로 여럿 날라갔다는 의미다.

마르틴 슐츠가 일단 당 총재에서 물러나게 했고, 슐츠를 외교부장관 후보로 보냈다가 스스로 낙마하게 만들었으며, 그 과정에서 지그마르 가브리엘도 큰 상처를 입었다. 2012년 총선 때 총리 후보가 남아나지 않도록 깨끗이, 혹은 다른 인물들이 자멸하게 놔뒀다는 얘기다.

보면 볼 때마다 느끼건데, 독일 현대정치사는 조선시대 사극만큼 재미있다.


참조

  1. 게르하르트 슈뢰더 자서전(2017년 9월 17일)

  2. CDU와 CSU(2015년 11월 1일)

  3. 헬무트 콜의 서거(2017년 6월 18일)

  4. 안데스 그룹에 대한 폭로는 (역시나) 슈피겔이 했었다. Mutti gegen Goliath(2010년 11월 22일)

  5. 하지만 사채 스캔들로 인해 2년만에 연방 대통령에서 물러난다. (스캔들이 괜히 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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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 대단한 내공이십니다

그냥 본 걸 정리한 것일 뿐이에요 >_<)/